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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출연녀 자살 … 리얼리티쇼의 허구성을 직시해야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3-12 10:09:43
  • 수정 2014-03-17 18: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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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인 아닌 일반인 출연자, 가상을 실제로 인식하는 과도한 몰입 후유증으로 정신적 타격 커

SBS ‘짝’ 로고

처음 본 남녀가 ‘연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주간의 과정을 리얼하게 그린 SBS의 인기 교양프로그램 ‘짝’은 2011년 신년특집 ‘SBS스페셜 짝’ 3부작으로 처음 출발했다. 한국인의 짝에 대한 마음지도 연구를 앞세워 인류학적 성찰에 나선다는 거대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하지만 프로가 인기를 끌고, 정규 편성이 결정되면서 ‘청춘남녀의 짝짓기’ 공식에 그치고 말았다.

출연자들은 연인을 찾기 위해 말 그대로 ‘올인’했다. 괜찮은 스펙과 외모를 가진 남녀들은 자신의 모든 일상을 던지고 일주일간 짝 찾기에 전념한다. 이들은 이름도 없이 ‘남자1호’·‘여자1호’ 등으로 불리며 스펙과 성별로 구분됐다. 처음 본 남녀가 1주일만에 신파극 주인공처럼 집착하고 울기까지 했다. 이들의 자극적인 행동들은 시청자의 관음증(觀淫症, voyeurism)을 만족시키면서 인기는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지나친 왜곡방송, 출연자들의 거짓 신상 등은 점점 ‘인연찾기’가 아닌 ‘개인사업·개인PR용’으로 굳어진다는 비난이 커졌다.
 
이런 와중에 제주도 특집 녹화가 마무리돼가던 지난 5일 새벽 ‘여자4호’ 전모 씨(29)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작진의 인권침해 부분에 대한 경찰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강압적 촬영방식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뒤늦게 ‘짝’을 종방하라는 목소리도 높아지면서 폐지가 확정됐다.

언론들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짝 제작진의 강압적인 촬영방식, ‘교양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예능’에 가까운 방송내용, 자극성을 높이기 위한 ‘악마의 편집’ 등에 대해 무자비한 비난을 퍼부었다.

언제부턴가 리얼리티를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짝처럼 연인관계의 내밀함을 보여주는 것을 비롯해 스타 자녀들의 성장과정, 고부관계에 대한 까발리기, 가수 또는 취업 오디션 등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리얼리티’가 대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9년 국내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장 초기 ‘투시안경 해프닝 통해 본 인간의 관음증(觀淫症)’이란 글로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의 등장 배경과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곽 교수는 당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인간의 ‘호기심’을 반영한 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반인은 연예인들과 달리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에게만 쏠린다고 여기고, 큰 심리적 중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리얼리티쇼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중압감으로 인한 출연진 자살이 종종 이슈가 되기도 했다. 2010년 요리사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에 출연했던 조세르니 글리아나는 조지워싱턴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2007년에도 고든 램지의 ‘헬스키친’에 출연했던 일반인 레이철 브라운이 혹평 속에 자택에서 자살하기도 했다. 램지는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평가도 내리는 역할을 해왔는데 굉장한 독설로 유명하다. 이밖에 ‘틴 맘’ ‘슈퍼내니’ ‘아메리칸 아이돌’ ‘러브 서바이벌’ 등의 프로그램에 나왔던 다수의 출연자들이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짝’의 전 씨처럼 촬영 현장에서 사망한 경우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일은 세계적으로도 몹시 드물고 끔찍한 일로 간주된다. 자살의 원인은 리얼리티쇼의 특성을 아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짝의 경우 각 남녀 출연자의 캐릭터 중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측면을 과대하게 증폭해 브라운관에 투사했다. 예컨대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얄밉게 보이는 부분을 풍자만화처럼 일러스트레이션하거나, 특정 출연자를 ‘왕따’시키는 게 모습을 보여준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출연자들의 사소한 약점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무런 것도 아닌데도 진짜로 자신이 못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이런 착각에 빠지면 비참과 우울감에 파묻히게 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베테랑 연예인도 특정 드라마나 영화에 몰입하면 종영 후에도 한참 동안 캐릭터에 대한 인식이 깊게 박혀 우울증에 걸리고 심리상담을 받기도 한다”며 “하물며 이런 훈련이 안 된 일반인이 리얼리티쇼에 노출되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리얼리티 출연자의 몰입의 강도가 높을수록 전 씨 같은 비극적 상황에 빠질 위험이 큰데, 출연자나 시청자나 리얼리티쇼가 결국은 가공(架空)이며 실제 상황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리얼리티쇼에 몰입하는 것은 진짜라고 생각하고, 나와 출연자를 동일시하기 때문인데 실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흉보고 있다는 생각 △자신의 명성과 명예가 모두 실추됐다는 생각 △경제적으로 어려워 주변 사람에게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대한 절망감 등 어쩌면 사소한 것으로부터 초래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전 씨도 ‘방송되면 한국에서 살기가 싫을 것 같다’는 카톡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와 비슷한 세간의 이목 집중에 큰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라면 순간을 이기지 ‘욱’할 성향이 높아진다.

출연자들은 6박7일 동안 외출과 사적인 전화를 통제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 도중 그만두거나, 출연 여부가 결정되면 이를 번복할 수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방송에 출연한 한 남성은 ‘맘에 드는 사람이 없다’며 촬영장을 떠난 적도 있었다. 고인이 된 여성도 출발 전 출연을 고사하려했지만 비행기표 예약 등이 끝나 취소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아 울며 겨자먹기로 방송에 출연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강압적인 방송 분위기도 문제지만, 주체적으로 출연 여부를 결단하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미성숙한 자유의지의 표현능력’도 바뀔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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