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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네로 행복 나뉘는 시대 … 제도개혁보다 인식전환이 먼저
  • 정종호 헬스오 편집국장
  • 등록 2014-02-25 23:09:39
  • 수정 2021-07-20 20: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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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수촉진·서비스산업발전보다 시민의식 함양, 교육사다리 복원이 행복국가에 더 다가가는 길

서울이 커지면서 어디에 사느냐도 계급인 시대가 됐다. 지난해 3월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내놓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울에서도 서초·용산·동작구민의 행복지수가 각각 72,72,71점으로 높고 강서·강북·마포구민은 각각 60,61,62점으로 바닥권이었다.

가장 윤택하다고 알려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는 1990년대 이후 부동산 가치나 경제력이 급격히 상승했지만 강남구나 송파구는 행복지수가 각각 65점, 66점으로 서울 평균(66.5)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서초구는 강남역 인근을 제외하면 주택가, 아파트, 녹지가 많고 고루 잘 사는 반면 강남구나 송파구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유흥가·상업지역이 넓어 범죄 발생이나 소음, 환경오염 등에서 삶의 질이 떨어지게 때문이란 분석이다.

전통 도심 3구(종로구·중구·용산구) 중 용산구는 한동안 큰 바람이 불었던 용산역 서부이촌동 개발 이슈와 한남동·이태원동·이촌동·서빙고동 일부지역에 거주하는 부유층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행복지수가 높다. 용산구는 가운데 미군기지가 약 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면적으로 자리잡고 있어 사실상 기지가 녹지대 역할을 하고 교통량이 한강로나 한남대로를 제외하면 한산한 편이다. 그래서 서초·강남·용산구를 일컬어 ‘SKY구’라 칭하기도 한다. 국내 톱3대학을 SKY이라 부르는 것의 패러디랄까.

행복이란 상대적이다. 내가 비록 잘 살아도 나보다 훨씬 잘 사는 사람이 많다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썩 잘 사는 지역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강동구, 금천구, 구로구(이상 69점) 등과 양천구, 은평구, 영등포구(이상 68점)처럼 상대적으로 경제적 균질성이 높은 곳이 서울 평균 행복지수를 웃도는 곳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강동구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죽 들어선 중소형 아파트가 거주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안정적인 직장인이나 자영업자가 많이 살아 경제적 균질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서울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소득은 많을수록 행복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증진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행복과 불행의 기준선은 대략 월급이 300만원이상이냐 아니냐로 나뉘는 것 같다.


나이가 어릴수록 행복지수가 높았다. 10~20대는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돈을 벌지 않고 부모님으로부 받아쓰기 때문에 돈벌이에 대한 압박감도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경제능력에 좌우되고 다시 건강상태로 직결된다. 속칭 ‘잘 사는 지역’의 주민들이 건강관리도 잘하고 오래 살기 마련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내놓은 2012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가장 낮은 곳이 경기도 과천시(33.3%),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34.7%), 서울 서초구(35.3%) 등이다. 반대로 흡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충북 음성군(60.4%), 강원 태백시(58.4%), 강원도 양양군(57.7%)였다. 또 고위험 음주율(한번 술자리에서 남성 7잔 이상, 여성 5잔 이상 주 2회 이상 마시는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강원도 속초시(28.7%), 영월군(28.4%), 홍천군(26.7%)였다.

 
시골에서 살면 공기도 깨끗하고 물도 맑아 더 건강해야 하는데 그렇질 않다. 아무래도 농어촌에서 육체적 과로, 낮은 소득에 따른 시름, 마땅한 여가선용 거리가 없는 농한기 등이 술과 담배를 찾게 하지 않느냐고 짐작해볼 뿐이다.

암사망률도 2007~2011년 중 강남·서초구는 최저권인 반면 강북구는 줄곧 상위권(5위 이내)이었다. 경제력이 있어야 검진 등 예방도 가능하고 더 많은 치료비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비만율이 소득이 반비례한다는 것은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라 국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론이 됐다. 건강에 유익하면서도 열량이 낮은 음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면 아무래도 돈과 시간이 든다.
미국의 경우 빈자들은 값싼 패스트푸드나 맥주를 즐기는 반면 부자들은 질 좋은 슬로우프드와 비싼 와인(또는 위스키)을 엄선해 마시면서 빈부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월 글로벌 비즈니스맨과 유력 정치인들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가졌다. 포럼은 ‘2014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소득 불평등이 세계 경제의 핵심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젊은층의 취업과 창업은 갈수록 부진해져 한창 일할 나이에 빈둥거리고 놀고 있다. 이는 세계적 현상이며 장차 세대갈등의 불씨가 될지 모른다. 게다가 기성세대들은 55~60세인 정년을 5년 정도 더 늘이려 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현실화되면 지금 50~55세인 부모들의 자녀는 취업난이 더욱 심해져 결국엔 그 피해가 기성세대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던 다보스포럼이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주는 듯한’, ‘지극히 정치적인 화장’의 언사가 불편하게 들린다.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은 전원이 부유층이거나 권력실세가 아닌가.

 
기업회원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려면 평균 참가비가 4만달러(약 42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럼 참가비 2만 달러에 항공료·호텔비·식대 등이 포함된 비용이다. 결국 바가지로 유명한 ‘스위스 관광사업’에 일조하면서 그들만의 결속을 다지는 게 다보스포럼의 본얼굴이다.

다보스포럼에서 결의할 것은 오히려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어떤 CEO도 직원 평균 연봉의 ○○배 이상의 연봉을 받으면 안된다” 같은 선언 말이다. 미국 금융위기를 불러온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의 CEO들이 수십억원의 연봉 및 성과급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스톡옵션까지 행사해 수십억~수백억원을 보장받는 것은 분명 부조리다.

이런 CEO들은 그렇다고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지도 않다. 대주주들을 대표하는 이사회에서 CEO로 선임된 게 합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근거의 전부다. 그러나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망하거나 흔들리면 세계 어느나라든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통화팽창이 뒷받침되면서 금융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놓고, 이를 세금으로 보전해주지 않는가.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같은 경영잡지에서는 월가 CEO들이 아침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하루 일과 중 80%를 비즈니스에 쏟아내며 홀로있는 시간이 15분도 안된다고 옹호한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창의적인 일을 하기에 일반 직장인의 수백배, 수천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대우를 받아도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중산층은 줄어들고 있다. 성장과 기업가정신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이들은 그나마 재벌, 권력가로부터 ‘은전’이라도 받는 축에 속한다. 이미 활기를 잃은 취업포기자, 자영업자들에겐 성장의 중요성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이른바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가 단절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행복 및 양극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50대 이상, 남성, 자영업자, 저소득, 저학력자가 불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조적으로 30대 이하, 여성, 공무원, 고소득, 고학력자가 행복한 사람의 키워드가 된다.

 
고소득층이 월 평균 24만1000원을 더 소비하면 연간 16만8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긴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하지만 명품백, 외제차를 두루 갖고 있는 부자는 돈 쓸 일이 없다. 부동산 임대료·안정적 사업체·기득권으로 ‘지대(地代)’만 챙긴다. 그나마 중산층도 미래가 불안해 돈을 안 쓰려하고, 오히려 고소득자가 로또복권을 더 많이 산다고도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는 내수를 유발하고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 돈의 흐름을 늘리자는 얘기겠지만 어떤 수로 질좋은 소비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지 막막하다. 한마디로 답이 안 보인다.

요즘 선행학습을 막아 사교육비 줄이고,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을 ‘문화의 날’로 정해 문화소비를 늘리자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학생이 공부하겠다는 것을 법으로 막는 게 우습다. 문화의 날 제정이나 재정지원을 통해 여름휴가 분산을 유도하는 정책이 자칫 온 국민을 ‘놀자판’에 빠지게 하지 않을지도 걱정이다.

온 국민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제도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인식의 전환이 더 시급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하지만 자신의 학창시절 대입전쟁, 입사후 사내경쟁, 결혼후 재테크전쟁도 못자라 자식의 학벌까지 경쟁하는 40~50대 기성세대의 인식이 전환되지 않고서야 마음의 태평성대가 찾아올까. 행복해지려면 모든 것을 떠나 ‘시민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자제심, 그 어떤 이도 노력하면 경제력과 상관없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교육사다리’만 복원돼도 한층 행복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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