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비뇨기과 전공의 지원 부족 및 의료수가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는 비뇨기과 수가 조정, 가산금 지원, 전립선암 국가암검진 지정, 요양병원 전문의 가산과 지정 등의 필요성이 논의됐다.
한때 인기 진료과로 꼽혔던 비뇨기과가 올해 전공의 확보율 25.3%에 그치며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는 기피 진료과로 알려진 외과(60%), 산부인과(78.3%), 흉부외과(58.7%)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지역별 확보율은 수도권 30%, 비수도권 18.7%에 불과했다. 특히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는 지원자가 한 명에 그쳤으며, 충청권의 경우 단 한명도 없었다.
비뇨기과의 위기는 2010년 전공의 확보율이 급감하면서부터 이미 예견됐다. 2009년 90.2%에 달했던 전공의 확보율은 2010년 82.6%, 2011년 54.9%, 2012년 47%, 2013년 44.8%, 올해 25.3%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또 지난해 전체 의대생 중 희망 전공과목으로 비뇨기과를 꼽은 비율은 11.4%에 그쳤다. 반면 피부과는 186.6%, 내과 143.1%, 안과 119.8%, 신경과 113.7%, 정신건강의학과는 180.1%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개원가의 상황도 좋지 않다. 비뇨기과 폐업률(신규 개원 대비 폐업 병원 비율)은 2009년 51%에서 2012년 127.6%로 약 2.5배 높아졌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드는 현재 시점에서 비뇨기과 의사의 부족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비뇨기질환자의 약 80%가 노인환자이기 때문이다. 한상원 대한비뇨기과학회장(연세대 의대 교수)은 지난 14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비뇨기과 전공의 지원 부족 및 의료수가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전공의 미달 문제는 수년 전부터 예상됐지만 진행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비뇨기과 환자는 대부분 배뇨장애 등을 호소하는 고령환자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책없이 고령인구가 증가할 경우 인력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비뇨기과 인력이 급감하는 이유로 △근무강도에 비해 낮은 수가 △다른 진료과의 진료영역 침해 △비뇨기과에 대한 저평가 및 부정적 인식 등을 꼽고 있다. 이상돈 대한비뇨기과학회 수련이사(양산부산대병원 소아비뇨기과 교수)는 “비뇨기과는 업무강도가 센 편이지만 수입이 적고 미래가 불투명해 지원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0년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의원급 비뇨기과의 월평균 요양급여비는 1993만원으로 전체 평균인 2888만원보다 훨씬 낮았다. 특히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정형외과(5390만원)와는 3배 가까이 차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사는 “비뇨기과는 행위의 종류가 226개로 많고 복잡하지만 빈도와 수가가 낮아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수익성이 높은 것은 요로결석치료법인 체외충격파쇄석술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진료과와 진료영역이 겹치는 문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뇨기과에서 다루는 질환은 요실금·전립선질환·발기부전·방광염·요로결석 등인데, 이들 질환을 앓는 환자는 비뇨기과가 아닌 내과(신장내과) 등을 찾을 때가 많다. 특히 노화로 인한 발기부전 등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과 동반될 때가 많아 상당수의 환자가 내과(순환기·내분비내과)를 먼저 찾는다.
요실금의 경우 환자의 80~90%가 산부인과로 흡수됐으며, 포경수술 환자도 저렴한 비용을 내세우는 외과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비뇨기과 의사들은 최근 전공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 등을 예로 들며 낮은 수가의 현실화 및 정부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 진료과는 수가가산 및 조정, 전공의 수련보조수당 지급 등의 조치가 실시된 후 전공의 지원율이 증가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공의 확보율은 2010년 64.2%, 2011년 65.6%, 2012년 70%, 2013년 73.6%, 2014년 78.4%를 기록했다. 흉부외과도 2011년 36.8%, 2012년 41.7%, 2013년 46.7%, 2014년 58.7%로 상승 추세를 보였다. 보건당국의 정책적 배려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요양병원 전문의 가산과 지정, 타과의 약물 장기처방 제한, 상담료 인정 등 조치가 취해진 후 전공의 지원자가 증가했다.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정부가 비뇨기과를 요양병원 가산과로 지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요양병원에서는 외과, 내과, 신경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 8개과만 가산 대상이 된다. 이영구 대한비뇨기과학회 보험이사(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는 “비뇨기과수술은 외과수술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편이지만 정작 수술료는 낮은 편”이라며 “비뇨기과도 수가 조정, 가산금 지원, 전립선암 국가암검진 지정, 요양병원 전문의 가산과 지정, 비뇨기과 전문약물의 처방 우선권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비뇨기과 전문 약물의 우선 처방권을 주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비뇨기과 전문약물은 과민성방광치료제(항콜린제), 발기부전치료제(비아그라), 전립선비대증치료제(5알파환원효소억제제) 등이다. 비뇨기과학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비뇨기과약물을 처방한 진료과 비율은 비뇨기과 60.3%, 내과 19.3%, 가정의학과 2.3%, 신경과 1.7%, 피부과 및 산부인과 1%로 나타났다. 즉 비뇨기과 약물의 40%가 다른 진료과에서 처방되고 있었다.
다른 진료과에서 비뇨기과약물을 처방하다보니 약제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약물 오남용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비뇨기과학회 조사결과 2012년 전립선비대증 약제비는 2006년보다 약 2.99배 늘었다. 비뇨기과학회 관계자는 “비뇨기과 전문약물은 비뇨기과 전문의의 검진 및 진단이나 방광기능 평가를 거친 후 처방하도록 해야 한다”며 “경구용 발기부전치료제의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처럼 의약분업 예외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치 성병 진료만 전담하는 듯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비뇨기과 인기 하락의 원인이다. 이 때문에 비뇨기과학회는 기존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개명작업을 추진했지만 적절한 명칭을 찾는 데 실패했다. 비뇨기과만큼 진료과의 특징을 함축할 만한 명칭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뇨기과학회가 이메일과 우편으로 비뇨기과의 새 명칭을 공모한 결과 요로생식의학과, 비뇨건강의학과, 남성건강증진과, 성생리과, 성의학과 등 148개가 제출됐지만 결국 아무것도 채택되지 못했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수가 가산의 경우 합당한 근거가 필요하고 의료계 내부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고득영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지난 14일 열린 토론회에서 “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계 자체적으로 학술적인 근거가 축적돼야 한다”며 “흉부외과 및 외과 전공의 수가 인상 및 가산금 지급 등으로 증가한 때문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공급되는 비뇨기과 인력이 수요보다 많다”며 “의료수요 변화에 따라 적정 수준의 전문의를 양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원한 비뇨기과 의사들의 수익성이 떨어진 것은 자초한 측면도 강하다. 이른바 일반 비뇨기과질환인 전립선비대증 요실금 요로결석 방광염 신장질환 등을 팽개치고 상당수 비뇨기과 의사들이 수익성 좋은 피부미용, 성형수술, 하지정맥류수술, 남성수술 등에 나서면서 이들 질환이 관련성이 있는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들에게 넘어가는 양상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개원가에서는 비뇨기과 전문의들의 약 절반이 피부·성형 쪽으로, 5분의 1 가량이 남성수술(왜소음경·발기부전·조루증 등)을 전업 또는 겸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비뇨기과 의사는 “비뇨기과질환의 진료수가가 꼭 낮다고만도 할 수 없다”며 “비뇨기과 본연의 진료를 하지 않아 환자를 빼앗기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지금 젊은 의사들이 비뇨기과를 선택해 본연의 진료에 매달린다면 수년 후 빛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비뇨기과학회는 이 같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젊은 비뇨기과 전문의의 연수 및 학술대회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해외연수 중이거나 예정인 만 45세 미만 정회원 2인에게 1인당 5000달러를, 해외학술대회의 경우에는 전문의 2인 및 전공의 3인 기준으로 1인당 2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