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광선각화증’(Actinic Keratosis)에 대한 유병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광선각화증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에 발생한 각화성 병변으로, 표피에 발생하는 가장 흔한 피부암 전 단계 질환으로 꼽힌다. 주로 50대 이상 중·노년층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이는 피부암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국내서 생소한 탓에 인구 노령화 및 야외활동 보편화로 유병률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거의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광선각화증 환자가 2011년엔 7300명이었으나, 2012년엔 9100명으로 약 23% 증가했다는 통계를 발표한 바 있다. 2010~2012년 3년간 광선각화증으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는 총 2만2600명이다.
광선각화증은 만성적인 일광 노출이 각질형성세포에 영향을 끼쳐 세포 크기 및 모양을 변형시키면서 발생된다. 한개 또는 수십개의 붉거나 갈색의 병변이 피부에 나타난다. 표면에 덮인 인설 탓에 까칠까칠하며 습진이나 검버섯으로 오인해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피부과 의사라면 대개 모양만 보고 진단을 내릴 수 있지만, 다른 피부암 전구증상과 감별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증상은 얼굴에서 80% 이상 나타나며, 두피나 아랫입술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밖에 팔·다리 등 햇빛에 노출되는 부위에서는 다 나타날 수 있다.
이 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으로는 유전, 기후, 연령 등을 꼽을 수 있다. 유전적으로 황인·흑인에 비해 백인에서 가장 흔하다. 백인은 햇빛을 1차적으로 막는 멜라닌색소가 적어 자외선의 영향을 그대로 받기 쉽다. 미국(11~26%)·영국(남성 15%, 여성5%)·호주 등에서 흔히 발생한다. 호주의 경우 40세 이상의 40~50%에서 증상이 나타나며, 한명의 환자에서 6~8개 병변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엔 기후적 요인이 더 크다는 주장이 일기도 한다. 브라질에 거주한 일본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자외선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에서는 인종에 상관없이 광선각화증이 나타나기 쉬웠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광선각화증 발현에는 자외선 노출 시간·빈도·강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자외선에 의한 p53유전자(암억제 유전자) 변이가 질환 발생기전에 1차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환자, 면역억제제를 투여자 등 면역계에 결손이 있는 사람에서도 발병하기 쉬웠다.
연령도 발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대부분 연구에서는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발생 빈도가 높아졌다는 결과를 보인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태양광선에 노출된 누적시간이 늘어나며, 환자의 대부분이 50대 이상 장·노년층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영한다.
한국에서도 50대 이상 환자가 80% 이상을 차지하며 자외선 노출이 많은 농·어업 종사자에서 흔하다. 해외에서는 남성에 많지만 한국은 여성 환자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여성이 피부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빈도가 높아서가 아닐까 하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이 질환은 조기발견 및 치료가 관건이다. 편평세포암의 전구증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선각화증의 0.1~20%는 대개 2년 내외로 걸쳐 암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편평세포암 중 약 60%가 광선각화증으로부터 악화되는데, 국내 편평세포암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광선각화증 동반 비율이 88%에 달했다. 또 1999년 1월~2008년 12월 10년간 강원지역 피부암전구증환자 23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광선각화증이 전체 피부암전구증의 74.68%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단순히 미용적 문제의 피부질환이 아님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우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교수는 “국내 광선각화증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이는 계속 방치할 경우 편평세포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고, 다른 노인성 질환과 달리 방치하면 증상이 악화되고 지속되기 쉽다”고 말했다.
이 질환은 눈에 보이는 병변을 직접 제거하는 ‘병변의 직접적 치료법’(lesion directed therapy)과,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는 잠재적인 병변까지 치료하는 ‘필드치료법’(field therapy)으로 분류된다.
직접치료로는 냉동요법, 전기소작술, 외과 절제, 화학적박피 등을 시행한다. 냉동요법은 액체질소를 사용해 병소를 냉각시키는 방법으로 가장 흔히 사용된다. 치료 후 즉각적으로 작고 붉은 물집이 생겨 냉각된 조직은 회복과정에서 정상조직으로 바뀐다. 시술이 간편하고 빠르며 즉각적인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일부 환자에서 물집, 색소침착, 통증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레이저요법은 이산화탄소레이저를 이용해 손상된 피부를 태워 병변을 치료한다.
다만 여러 부위에 걸쳐 나타나는 다발성 병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 병변의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 병변 면적이 넓거나 10개 혹은 그 이상의 다발성 병변이 나타난다면 필드치료법을 선택하는 게 효과적이다. 인게놀 메부테이트(ingenol mebutate)·이미퀴모드(imiquimod) 등 바르는 연고치료, 광역동요법(photodynamic therapy)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우 교수는 “직접치료의 경우 냉동요법을 이용한 치료가 가장 많이 시행된다”며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잠재적 병변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치료할 수 있는 필드치료와 치료패턴의 변화(field-directed therapy)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심각성에 따라 대한피부암학회와 레오파마는 21일 서울 조서웨스틴호텔에서 ‘광선각화증의 치료 패러다임’을 주제로 질환의 증상 및 위험성 등에 대해 지견을 나누는 자릴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광선각화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호주 피부과 전문의 다이아나 루벨(Diana Rubel) 교수가 참가해 호주의 광선각화증 현황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다이아나 교수는 “호주에서는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질환으로 인한 재정적인 문제가 있다”며 “광선각화증은 호주 피부과 전문의가 가장 흔히 치료하는 질환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호주는 백인 인구가 많고 야외활동이 잦으며, 인구고령화로 인해 광선각화증 환자가 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광선각화층 유병률을 보유하고 있다.
다이아나 교수는 “호주에서는 오래 전부터 홍보가 이뤄지고 있다”며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호주 국민들은 자외선의 위험성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방문해 관리하는 게 습관화됐다”고 설명했다.
호주의 경우 흑색종 발병률도 높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피부과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 편인데, 주로 이때 광선각화증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김일환 대한피부암학회 회장(고려대 안산병원 피부과 교수)은 “광선각화증은 편평세포암과 연관이 큰 전암단계 질환으로 심각성이 제고돼야 한다”며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잠재병변에 대한 위험성을 고려해 야외활동이 많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방문해 규칙적으로 피부상태를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