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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해도해도 요요현상 반복되면 ‘탄수화물중독’ 의심해봐야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2-20 14:14:57
  • 수정 2014-02-26 16: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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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케이크·떡 등 ‘먹어도 물리지 않고 중독성 가져’ … 식탐자극·과식 유발, 성인병 주범

탄수화물 위주의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포만감을 쉽게 느끼게 되지만 위장에서 소화·흡수되는 시간이 짧아 금세 혈당치가 상승한다.

보험영업사원 류모 씨(37·여)는 다이어트라고는 안 해본 것이 없는 자타공인 다이어트 박사다. 유행하는 다이어트부터 병원 등의 도움을 받은 새로이 시도하는 것까지 어느 정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심지어 지방흡입수술까지 받아봤지만 역시 몇 개월도 안 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됐다.

‘올해는 기필코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결심에 안전한 ‘정석 다이어트’에 돌입한지 2주일 째.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게 느껴진다. 그는 “아무래도 나이탓인 것 같다”며 “쌀이나 빵을 먹지 않으면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느낌이고, 심지어 밤에 자기 전 몸이 덜덜 떨리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아주 심한 비만은 아니지만 또래에 비해 통통한 수준으로 평소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다만 떡, 빵, 쌀밥 등 정제된 ‘흰 탄수화물’을 즐긴다. 지금은 아침·점심엔 음식을 반 정도로 양을 줄이고 저녁엔 아예 채소 말고는 탄수화물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서 허기짐이 점점 심해지고 ‘기운이 딸리는 느낌’에 결국 병원의 도움을 받기로 한 그는 의사로부터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즐기는 게 문제인 것 같다”며 “아무래도 탄수화물중독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탄수화물은 ‘3대 영양소’에 포함될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나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탄수화물이기도 하다. 뭐든 지나치면 해가 되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을 과잉 섭취하면 중독성 탓에 음식을 계속 찾게 되고, 잉여 성분은 지방으로 저장돼 살찌기 쉬운 체질로 변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상식이다.

탄수화물은 인체의 주된 에너지원으로 이용된다.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을 깜빡이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근육수축에 의한 것이고 이를 관여하는 게 탄수화물이다. 아울러 탄수화물은 단백질의 급격한 감소를 막아 ‘단백질 절약’ 기능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탄수화물을 과잉 섭취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독까지 일으킨다고 경고한다. 일일 요구 탄수화물 최소량인 약 100g의 탄수화물을 섭취하고도 계속해서 케이크, 쿠키 등 고당질 음식을 억제하지 못하고 계속 먹는 증상을 ‘탄수화물중독’이라 하기도 한다.

탄수화물중독은 엄밀히 질병으로 지칭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가 중독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의가 명확치 않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탄수화물 중독 증상을 호소한다. 성인 기준 탄수화물 섭취 일일 권장량은 330g이다.

하지만 이런 피상적 기준을 떠나 자기도 모르게 계속 고당질의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허기를 느낀다면 탄수화물중독을 의심해볼 만하다. 이들은 일일 섭취 칼로리의 65% 이상의 탄수화물을 반복해 섭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인들은 보통 일일 칼로리 섭취량의 70~75% 이상에 해당하는 탄수화물을 섭취해 생각보다 중독이 심한 편이다. 지방·단백질 요리는 포만감을 크게 불러 일정 수준 이상 먹는 게 어렵다. 하지만 탄수화물은 그렇지 않다.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식사 한 끼를 제대로 먹고 나서도 ‘케이크랑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는 여성이 많은 이유다. 남자들의 ‘밥 배, 술배 따로 있다’는 말처럼 여성에겐 ‘식사 배,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다.

탄수화물중독은 당뇨병·고지혈증·고혈압·만성피로·동맥경화·지방간 등 성인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탄수화물은 과도하게 섭취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다. 특히 빵·떡·케이크·국수·음료수 등은 탄수화물 외에 다른 영양소가 거의 포함돼 있지 않아 영양소불균형이 우려된다. 탄수화물중독이 위험한 것은 술, 담배, 마약과 달리 경계심을 갖지 않고 누구나 주위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어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데 있다.

탄수화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과체중으로 이어지기도 쉽지만 감량도 어렵다는 게 문제다. 단맛이 강해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운 것은 물론 섭취 직후 혈당치가 상승하고 이를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된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작용을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면 체내 지방축적을 유도해 비만으로 이어지기에 딱 좋다.

탄수화물 위주의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포만감을 쉽게 느끼게 되지만 위장에서 소화·흡수되는 시간이 짧아 금세 혈당치가 상승한다. 인슐린이 과잉 분비되는 과정에서 혈당치가 빠르게 내려가면 무기력해지나 예민해지는 등 ‘슈가 크래시’가 나타나기 쉽다. 이어 혈당이 떨어진 만큼 비슷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돼 체중이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현대인이 탄수화물에 중독된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한몫했다. 김상만 차움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렵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정신적인 활동보다 육체적으로 많이 움직이는 생활을 했다”며 “음식을 저장하는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항상 사냥한 뒤 그 자리에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당시엔 에너지를 오래 저장할 수 있는 기름진 육류가 가장 좋은 음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육체적인 활동보다 정신적인 활동을 많이 해 뇌를 많이 쓴다. 김 교수는 “뇌는 단백질이나 지방을 직접 에너지로 사용하지 못한다”며 “단지 탄수화물만이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므로 현대인이 탄수화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만성스트레스나 우울감도 이를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나 우울감에 시달리면 뇌에서 분비되는 우울증 극복 호르몬 ‘세로토닌’(serotonin)의 생성이 감소한다. 뇌는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기 위해 탄수화물 섭취 욕구를 증가시킨다.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세로토닌이 많이 생성돼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김상만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코티졸은 강력한 식욕촉진물질 생성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만든다”며 “코티졸과 인슐린이 만나면 과식으로 이어져 결국엔 지방축적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스트레스를 조절해야 탄수화물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석정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마약을 복용할 때처럼 쾌락과 행복감에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된다”며 “도파민 분비가 늘수록 내성이 생기고 이는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식탐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인슐린이 주도하는 ‘포만·허기 사이클’을 촉진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한 경우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손이 떨리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등 금단증상까지 유발한다”고 덧붙였다.

탄수화물중독도 ‘중독’인 만큼 끊어내는 게 생각보다 만만찮다.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맘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어 ‘유혹’을 떨쳐내는 게 어렵다.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단호한 마음가짐’이 기본적으로 장착돼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지만 평소 식사할 때 밀가루·흰쌀 등 정제 탄수화물을 피해야 한다. 이들은 당지수(GI, Glycemic Index)가 높아 소화·흡수가 빨라 혈당을 급격히 높였다 낮추는 등 널뛰기를 한다. 반면 통밀빵·잡곡밥·현미밥 등 정제과정을 거치지 않은 거친 탄수화물음식은 당지수가 낮다. 탄수화물 이외의 영양소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소화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과식을 줄일 수 있다.

석정호 교수는 “탄수화물중독을 피하기 위해 당지수가 55 이하인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지수는 인체가 얼마나 빨리 50g의 탄수화물에 분해해 혈당으로 변화시키는지 그 양과 속도를 계수화한 것이다. 포도당 50g의 GI값을 100, 흰빵 50g의 GI값을 70으로 잡고 나머지 탄수화물 음식의 혈당 전환비율을 상대값으로 매긴 게 GI 수치다.

GI값이 높을수록 소화·흡수되는 속도가 빠르고 식품 섭취 후 혈당치가 빠르게 높아진다. 반면 GI가 낮은 식품은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인슐린 분비량을 많이 요구하지 않으며 잉여열량이 지방으로 저장되지도 않는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비만클리닉 교수는 “전체 열량 섭취량 가운데 탄수화물이 65%나 되는 국내 실정에서 요령 있는 탄수화물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며 “쌀밥보다는 현미밥을, 흰 소면보다는 메밀국수를, 흰빵보다는 호밀빵을, 당분이 첨가된 가공식품보다는 천연식품을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조금씩 자주 식사하는 게 좋고,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식사 때마다 기름기를 제거한 고기·콩·두부 등 단백질 음식과 채소·나물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적절하게 배합하면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를 조금 줄일 수 있다. 간식 생각이 간절하다면 단백질이 주를 이루는 음식인 우유·달걀·땅콩·호두 등이 바람직하다. 식사 후 배가 부른데도 식욕을 억누르기 힘들고 달달한 후식에 대한 욕구를 참기 어렵다면 신맛의 레몬을 먹거나 양치질을 하면 도움이 된다.

술이나 카페인을 줄이면 혈당이 낮아져 탄수화물 음식을 덜 찾게 된다. 섬유소가 제거된 주스보다는 과일을 섭취하고 탄산음료나 청량음료 등은 가급적 줄이는 등 생활습관을 하나하나 바꿔나간다면 탄수화물 중독에서 서서히 멀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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