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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텔’ 공식 허용 … 의료한류 첨병인가, 영리병원 전신인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2-17 02:35:23
  • 수정 2014-02-20 16: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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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립기준 대폭 완화, 공동설립 허용 … 지방환자 숙소 전락, 환자쏠림 현상 가속화 우려

지난 9일 개원한 제주한라병원 WE호텔 전경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도입이 미뤄졌던 의료관광호텔 ‘메디텔(meditel)’이 오는 3월부터 공식 허용된다. 지난해 11월 26일 호텔업내 세부업종에 의료관광호텔업을 추가하는 ‘관광진흥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 3개월간의 공포기간을 거친 후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메디텔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현상과 의료상업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반대의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료관광호텔업 안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관련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메디텔은 ‘메디신(medicine)’과 ‘호텔(hotel)’의 합성어로 의료기관과 숙박시설을 한 건물에 갖춘 시설을 의미한다. 현행 관광진흥법 규정상 호텔 세부업종은 관광호텔업, 수상관광호텔업, 한국전통호텔업, 가족호텔업, 호스텔업으로 등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에 의료관광호텔인 메디텔이 추가된다.

이평수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의료정책포럼에 실린 ‘메디텔, 고부가가치 융·복합형 관광산업이 될 수 있나?’라는 글에서 메디텔의 유형을 세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유형은 호텔이 주체가 돼 내부공간을 성형·피부·치과의원 등에 임대해 주는 방식이다.
두번째는 처음부터 한 건물에 의료기관과 호텔이 계획적으로 입주하는 형태로, 두 주체가 동등한 위치라는 점에서 첫번째 유형과 다르다. 2011년 개원한 부산의 스마트병원 및 이비스엠버스더호텔, 올해 개원 예정인 대구메디센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번째 유형은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오는 3월부터 도입되는 의료관광호텔로, 의료기관이 직접 호텔을 운영한다는 점이 기존 메디텔과의 가장 큰 차이다.

정부는 메디텔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설립조건을 계속 완화했다. 기존에는 연간 3000명 이상의 외국인을 진료한 의료기관이나 연간 1000명 이상 외국인 환자를 유치한 의료관광 관련 업자만이 메디텔을 설립할 수 있었다.

반면 개정안은 연간 1000명 이상(서울은 3000명 이상)을 유치한 의료기관, 연간 실환자 500명 이상을 유치한 유치업자 등으로 설립 자격이 대폭 완화됐다. 유치업자 다수가 공동으로 설립하는 것도 허용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실제로 의료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의료기관이 메디텔의 주체가 되며, 다수의 의료기관 및 유치업자가 설립할 경우에는 실적을 합산할 수 있도록 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용이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총 객실수는 50실 이상에서 20실 이상으로 기준이 낮아졌다. 모든 객실은 환자의 편의를 위해 취사시설을 갖추고 면적은 19㎡보다 넓어야 한다. 이번달 들어서는 메디텔을 의료기관 1㎞내에서만 설립해야 한다는 조항이 삭제됐다. 이에 따라 서울 강남 등 땅값이 고가인 곳에 있는 병원들의 경우 메디텔 설립이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외국인 투숙객이 전체의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일부 병원들이 의료관광객 수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이는 지나친 규제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새 개정안은 투숙객 수가 아닌 객실 수를 기준으로 하는데, 내국인이 사용하는 객실이 전체의 40% 이하면 된다. 즉 객실 100개 중 내국인이 40개 이하를 사용하고 있다면 외국인은 10개를 사용하던 20개를 사용하던 상관없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정부는 외국인 투숙객이 적더라도 메디텔 운영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외환자 유치는 의료산업 분야의 블루오션으로 불리며 의료계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주목받아왔다. 정부는 메디텔이 해외환자 유치를 활성화해 의료관광업의 발전을 이끌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을 방문한 해외환자는 2009년 6만명, 2010년 8만명, 2011년 12만명, 2012년 15만9000명, 지난해 약 20만명 정도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12년 기준 진료 및 관광수익으로 3000억원을 벌어들였으며 약 5000여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2012년 복지부가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으로 등록된 2285개의 의료기관 중 1423곳의 제출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외국인 환자는 27.3%, 진료수입은 3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억원 이상 고액 진료환자는 83명으로 전년 대비 207.4% 늘었다.

2012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 15만5672명 중 외래환자는 12만5450명(80.6%), 건강검진 환자는 1만5593명(10.0%), 입원환자는 1만4629명(9.4%)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54만원으로 내국인의 1인당 연간 진료비(비급여 제외)인 104만원보다 48.1% 많았다. 전체 환자 중 외국인 환자 비율은 0.05%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메디텔 등이 본격 도입되는 2014년을 ‘2020년 해외환자 100만명 유치’를 위한 원년으로 삼고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계획대로 2020년에 100만명의 해외환자가 한국을 찾을 경우 진료 및 관광수익으로 2조9000억원을 벌어들이고, 5만4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법인 한라재단이 지난 9일 개원한 제주한라병원 WE호텔은 한 단계 진보한 메디텔의 모습을 보여준다. 2011년 3월 시행된 보건의료 특례조항은 특별자치구역인 제주도에 한해 의료법인이 의료법상 부대사항 외에도 여행업이나 숙박업 등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WE호텔은 의료기관이 직접 호텔을 운영하는 첫 사례가 됐다. 

600억원의 예산과 3년간의 공사기간이 소요된 이 메디컬리조트는 총 대지면적 2만9980㎡에 병실 30병상, 호텔객실 86실, 산후조리센터, 수(水)치료센터, 건강증진센터, 미용성형센터 등을 갖췄다. 당뇨병이나 관절염 등 만성질환 환자가 주요 유치 대상이며, 수치료를 포함한 2박3일 기본코스 비용은 약 120만원이다. 객실료는 2인실 기준 36만원선으로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의 상급병실료보다 다소 비싼 편이다.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경우 1인실 사용료는 평균 32만원, 2인실은 15만원 정도다.

메디텔의 본격적인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히 많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들은 메디텔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의료상업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통해 “개정된 관광진흥법 시행령은 메디텔의 내국인 환자 숙박 비율을 전체 객실의 40%까지 허용하고 있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지방 외래환자를 위한 대형병원의 숙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관광호텔의 객실 가동률이 65% 정도임을 감안할 때 ‘전체 객실의 40%’라는 기준은 사실상 내국인 투숙객이 객실의 60% 이상을 점유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료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 건강이 아닌 경제적 논리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주도로 추진 중인 의료관광정책은 국민 건강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수익 창출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메디텔 허용은 대형병원의 환자 독식을 심화시키고 상업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우회적 방식의 의료민영화”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저수가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디텔이 도입되면 성형·미용 등 특정 분야와 수도권 대형병원 중심으로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이는 의료기관간 불균형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해외환자 유치라는 원래 목표와 달리 지방 외래환자를 위한 숙박시설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메디텔은 네트워크·대형병원에 유리한 제도”라며 “이들이 앞다퉈 메디텔을 지으면 지방 병·의원과 동네의원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현상은 심화돼 1차의료기관의 고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디텔 건립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학병원 포함 상급종합병원들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의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히는 삼성서울병원도 마찬가지다. 이 병원은 2011년 외국인 환자 유치를 목표로 일원역 근처에 호텔 건립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메디텔에 대해 병원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사항은 없으며, 아직 논의할 단계도 아니다”고 말을 삼갔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재정상황이 그나마 나은 대형병원이라 하더라도 의료민영화 논란, 원격진료, 3대 비급여제도 개선 등 현안이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메디텔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 환자를 위한 병상이 필요하다면 위험부담이 큰 메디텔보다는 병원 증축을 택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평수 연구위원은 “메디텔은 관광산업을 집중 육성할 목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환자편의 제고와 의료비 절감이라는 의료기관의 측면보다는 호텔기능이 강조될 가능성이 높다”며 “호텔기능이 강조된 메디텔은 대형병원들의 환자유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질병의 진단 및 치료보다는 수익성이 높으면서 자원 투입이 적은 미용이나 성형 등에 집중될 것”이라며 “메디텔을 유치하기 위한 과잉경쟁은 국내 의료시장을 교란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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