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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만 끊으면 살 빠진다는데’ … 채식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2-13 15:54:29
  • 수정 2014-02-17 17: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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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탕·가공식품 등 간과한 ‘불량채식’ 탓… ‘다이어트만을 위한 수단’의 채식, 지속 어려워

고기 섭취를 끊으면 채식이라 여기고 다이어트효과를 기대하지만 가공식품 섭취, 불규칙한 수면과 배변 등을 개선하지 않으면 헛수고가 될 수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채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한 모씨(26·여)는 아직까지도 전혀 몸에 변화가 없어 고민이다. 고기요리를 완전히 끊었다. 여자가 많은 회사라 회식도 거의 없고 ‘굳이 먹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마음 편히 ‘채식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하면 몸매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먼저 채식을 시작한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채식은 사실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며 “코끼리도 초식동물인데 몸이 크지 않느냐”는 당연하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답만 돌아왔다.
 
수년 전부터 ‘채식’이 웰빙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채식=건강’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특히 가수 이효리 씨,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이하늬 씨 등이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채식이 재부각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인구는 전체 국민의 약 1% 정도이며, 채식을 할 의향이 있다는 ‘잠재적 채식인구’까지 합치면 20%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채식하는 여성 가운데 ‘이렇게 먹는 나는 관리하는 여자’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힌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고기만 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본격적인 채식과는 차이가 크다.

한 씨도 “고기요리는 다 끊었는데 왜 전혀 변화가 없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바로 우유, 버터, 계란, 설탕 등 동물성 지단백과 당류다. 

채식은 ‘어디까지 먹는 것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완전채식(Vegan, 비건), 우유·계란채식(Lacto-Ovo,락토 오보 베지테리언), 생선채식(Pesco, 페스코), 붉은 살코기만을 먹지 않는(닭고기 오리고기 등 가금류까지 허용) 폴로채식(Pollo) 등으로 나뉜다.
완전채식을 하는 사람은 고기, 생선, 우유, 계란 등 일체의 동물성을 배제한 식단을 유지한다.  우유채식을 하는 사람은 고기, 생선, 계란 등은 먹지 않지만 우유나 유제품은 섭취한다. 계란채식은 고기·생선은 먹지 않고 우유나 계란은 먹는다. 생선채식은 고기는 먹지 않지만 우유, 계란, 생선 등은 섭취한다.
요즘엔 ‘자신의 신념과 규칙에 따라’ 채식 정도를 조절하는 세미베지테리언(Semi-Vegetarian)도 있다.

한 씨는 채식을 선언하고 육류는 모두 끊어냈지만 평소 좋아하던 탄산음료, 케이크, 빵, 떡볶이, 커피, 과자 등은 여전히 즐기고 있다. 케이크 반죽에는 흰 밀가루와 버터반죽이 들어간다. 생크림은 우유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동물성 재료가 꽤 들어 있다. 탄산음료에 들어간 설탕도 문제가 된다. 그녀가 아침, 식후에 즐겨 마시는 커피에도 분명 설탕과 우유가 들어간다.
한 씨가 좁은 범주의 채식을 하고 있지만 가공식품 위주의 음식섭취는 다이어트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고기만 안 먹으면 살이 빠지겠지’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채식을 하더라도 ‘건강채식’과 ‘불량채식’을 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사실 많은 채식인이 건강채식을 한다고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라며 “설탕, 흰쌀, 튀김류, 식물성기름, 통조림, 과일주스 등 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채식을 해도 몸을 망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흰쌀, 밀가루 등 이미 도정이 끝난 곡식에서는 다양한 영양소를 얻기 어려운 만큼 피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닌 식품이라면 흰쌀조차도 가공음식이며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이 대표는 “채식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 다이어트·건강증진 목적 외에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삼아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며 “다이어트 등 특정 목적에 집착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5년 가까이 완전채식주의자로 생활하고 있다. 이 대표는 “환경보호 등 자신의 신념이 채식으로 이끌었다”며 “다이어트 효과는 채식이 주는 보너스”라고 강조했다. 이어 “처음부터 완전채식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며 “채식도 6개월 이상 지속해야 슬슬 적응이 되는 만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작해야 하며, 영양소 밸런스를 고려해 식단을 구성해야 원하는 채식을 실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제철 채소와 과일 등으로 메뉴를 구성해 계획적인 채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원복 대표는 “채식을 지속하면 무엇보다 식탐·식욕을 조절능력이 향상된다”며 “입맛이 바뀌는 만큼 나중엔 자극적인 가공식품을 먹기만 하면 속이 부대끼는 등 거북한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가공식품을 끊지 못하는 ‘불량채식’ 외에도 잘못된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제대로 된 다이어트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역효과가 난다. 미국 공인영양사 애슐리 코프는 미국 건강정보지 ‘프리벤션’과의 인터뷰에서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짜고 난 뒤 오히려 살이 쪘다는 사람도 있다”며 “이들은 식이요법을 제외한 다른 조건들이 예전과 같은데도 살이 찐다고 불평한다”고 말했다.
코프는 “음식 외에도 수면의 양이나 질이 떨어지거나, 배변이 불규칙하거나, 채소·과일 섭취량을 늘렸다고 방심해 실질적으로 평소보다 더 많이 먹는 등 잘못된 생활습관이 유지된다면 살이 더 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원복 대표는 “채식만으로도 얼마든지 영양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며 “식단을 꼼꼼하게 챙기는 게 건강한 채식의 기본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채식을 한다고 무작정 따라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식습관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며, 완전채식인 ‘비건’을 추천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채식의 범주를 점점 넓혀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최재경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굳이 고기만 끊는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며 “‘체중감량’이라는 목적에서 중요한 것은 무얼 먹느냐가 아닌 ‘얼마나 먹느냐’다”고 강조했다.

근육·지방·뼈 등을 구성하는 체성분은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특정 성분의 구성비가 늘거나 주는 것은 아니다. 몸에 들어온 칼로리가 많을 때 에너지로 방출되지 못한 잉여칼로리가 살을 찌우는 주범이다. 즉 고기를 끊었다고 하더라도 과자·빵·튀김류 등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면 살이 더 찔 수도 있다.

최 교수는 “만약 운동·활동량 등 모두 같은 상황에서 단순히 고기만을 끊고 평소처럼 가공음식 등 고탄수화물 음식을 먹는다면 크게 체중이 감량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고기를 아주 즐겨먹던 사람이 채식을 했을 때 살이 빠지는 것은 고기보다 채소가 칼로리가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야채 자체의 열량이 적어서 살이 빠지는 것이지, 야채가 살을 빠지게 만드는 마법의 식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는 다만 “체중 감량을 목표로 삼았더라도 영양소를 고루 챙겨야 영양불균형 등을 막을 수 있다”며 “고기 섭취를 끊으면 필수아미노산, 철분, 비타민B 등의 섭취량이 떨어지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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