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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비’ 없는 병원, 실현 가능할까 … 간호인력 충원이 급선무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1-28 16:24:29
  • 수정 2014-02-05 17: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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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사 지방근무 기피, 안동의료원 13%만 운영 … 업무 과중, 법적 수당은 없어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된 삼육서울병원 병상에서 환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비급여 항목 중 가정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간병비’ 문제는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정부는 2015년까지 간병비를 급여화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원격의료, 영리병원, 의료민영화 논란 등 각종 이슈가 산적한 현 상황에서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에게 간병인은 꼭 필요한 존재지만 하루에 6만~7만원, 한달에 200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는 크게 부담될 수밖에 없다. 간병비를 아끼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서 병수발을 들고 밤새 환자 곁을 지켜보지만 직장생활이나 학업과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과중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가족들이 몸져 눕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7월 100억원을 투입, 전국 13개 병원을 대상으로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병원별 차이는 있었지만 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간호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보호자 없는 병원’은 병원 소속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가 간병인 대신 환자를 돌보고, 여기에 필요한 임금과 운영비는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와 병원이 간병비 전액을 부담하기 때문에 환자 및 보호자의 부담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병원은 인하대병원, 동국대 일산병원, 서울의료원, 삼육서울병원, 부천세종병원, 청주의료원(충북), 목포중앙병원(전남), 순천한국병원(전남), 안동의료원(경북), 온종합병원(부산), 좋은삼선병원(부산), 목동힘찬병원(서울), 윌스기념병원(경기) 등 13개 의료기관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간호인력의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 결과 일산병원, 온종합병원, 좋은삼선병원 등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은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업을 시행해야 했다. 조사 결과 전체 간호사 채용률은 81.8%, 간호조무사 채용률은 83.8%에 그쳤다.

사업이 시작된 지 6개월 지났지만 지방에 위치한 병원들은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는 교통 및 주거상황의 불편함과 과도한 업무에 비해 급여가 적다는 간호사들의 인식 때문이다.
안동의료원의 경우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간호인력이 부족해 당초 계획했던 100병상 중 13병상만을 운영 중이다. 부산 좋은삼선병원도 기존 84병상에서 44병상만 간호인력을 투입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서울 및 수도권에 위치한 병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하대병원은 지난해부터 총 191병상을 ‘우리가족 돌봄병동’이라는 명칭으로 운영 중이다. 기존 간호인력 77명에 간호사 47명과 간호조무사 28명을 충원, 총 152명의 간호인력이 간병인 대신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삼육서울병원은 시범사업 초기 간호사 채용률 65.0%, 간호조무사 채용률 53.90%로 저조한 성적을 냈지만 현재는 당초 계획했던 154병상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초기에는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지원자가 몰려 하루종일 면접을 본 적도 있다”며 “전문간호사가 항상 동행하면서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환자만족도가 높고 진료 및 치료과정이 원활히 진행된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간호인력의 과중한 업무부담도 고려해 볼 문제다. 담당 간호사들은 환자의 식사 수발, 운동 보조, 대소변 치우기 등 기본적인 간호행위 외에도 환자의 개인적인 심부름까지 떠맡는 경우가 많다. 2년째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 씨(29)는 “몇몇 환자는 간호사를 의사의 부하직원, 아르바이트생, 가정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수건을 가려다주거나 물을 따라달라는 등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간호사에게 시킬 때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시범사업 대상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 간호사는 인터넷카페를 통해 “환자를 직접 관리하다보니 작은 문제라도 생길 경우 모든 책임이 간호사에게 향한다”며 “간호사로서 부끄러운 점 하나 없이 환자 간호에 최선을 다했는데, 보호자들로부터 삿대질 당하면서 욕을 들을 때에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보호자 없는 병원에 해당되는 병상을 담당한다고 해서 수당이 따로 지급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번 사업으로 충원된 간호인력은 모두 6개월 계약직이기 때문에 사업이 종료되면 병원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현재 일부 병원은 자체 인건비로 병상 담당 간호사에게 수당을 지급하거나, 사업 종료 후에는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시범사업을 운영 중인 한 병원 관계자는 “사업기간 동안 병상 담당 간호사에 한해 총 3차례 수당을 지급했다”며 “계약기간이 종료된 간호인력은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법적으로 규정한 게 아니기에 간호사들은 계약만료 때까지 숨 죽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간호수가 지불보상체계를 벤치마킹해 병원 전체 간호관리료에서 병동 중심 간호관리료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 같은 간호수가 개선 및 개발은 간호인력 수급 균형화를 이뤄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민의 간병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충분한 간호인력이다. 또 이들이 더욱 괜찮은 조건에서, 자부심을 갖고, 환자 간호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물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정형록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가 간호사 한 명당 환자 8명(장기요양병원 제외)을 기준으로 추계한 결과 연간 최대 2조6221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신경림 새누리당 의원 주최로 열린 ‘보호자 없는 병원 제도화 방향 모색과 전망’ 토론회에서 안형식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간병을 포함한 국내 입원서비스의 근본적인 문제는 간호사 인력의 부족”이라며 “국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최대 30명으로 미국(5명)이나 일본(7명)보다 현저히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족한 간호인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근무환경 개선, 입원료 현실화, 야간간호에 대한 보상체계 등이 검토돼야 한다”며 “특히 중소병원의 간호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보호자 없는 병원이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간 명확한 업무 구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간호사와 조무사가 팀을 구성해 환자를 간호하는 과정에서 비전문 인력에 의한 의료행위가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간호사는 의료법에 규정된 업무인 환자 병세 관찰 및 보고, 투약 및 주사 등 진료업무 보조, 검체 채취 및 측정 등을 담당하게 된다. 반면 간호조무사는 환자 생활보조, 기본적인 처치, 생활환경 등 비전문적인 업무만을 맡아야 한다.

현재 재원으로는 보호자 없는 병원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드니 별도의 보험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은 “적정 수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통해 포괄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모델을 적용할 경우 1년에 약 2조4000억~5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현재의 건강보험재정이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막대한 비용이 들고 가정에 큰 부담이 되는 간병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간병보험료’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무적인 부분은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예산이 정부안보다 100% 상승한 185억6000만원으로 증액됐다는 점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시범사업 대상인 일산병원을 현장 시찰한 자리에서 “보호자 없는 병원 모델은 간병비 부담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청년·여성 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된다”며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도 이 제도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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