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두뇌’. 뉴로사이언스러닝 제공
2002년 출판된 후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얻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는 두뇌의 위대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 방대한 과학적 이론의 집합체인 이 소설은 독자에게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인간의 두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뇌는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 중 하나지만 정작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렇다보니 ‘뇌가 크고 무거울수록 지능이 높다’거나 ‘인간은 평생 뇌의 10%만 사용한다’ 등 근거없는 속설을 믿고 있는 사람이 아직 많다.
뇌에 대한 무지는 2만년 전 원시인의 뇌가 현대인보다 크다는 연구결과를 보고 ‘현대인은 원시인보다 지능이 낮은가?’라는 다소 황당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넋을 놓고 있으면 뇌의 특정 부위가 자극, 창의적인 사고가 더 수월해진다는 사실도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뇌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으로 척수와 함께 중추신경계를 구성한다. 크게 3층으로 구분되는데 1층(후뇌)은 약 5억년 전, 2층(중뇌)은 2억~3억년 전, 3층(대뇌)은 400만년전에 생기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가장 밑바닥 1층에 위치한 후뇌는 가장 오래된 부위로 뇌줄기(뇌간)와 소뇌로 구성돼 있다. 뇌줄기는 연수(숨뇌)와 뇌교로 구성돼 있으며 호흡, 심장박동, 혈압조절 등 가장 기본적인 생명유지기능을 담당하는 중추다. 이 부위가 손상돼 혼자 힘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를 뇌사라고 한다.
소뇌는 뇌줄기 뒤쪽에 붙어 있으며 균형감각과 공간운동을 조절한다. 인체의 레이더 역할을 하는 운동중추로 간단한 학습법을 기억하는 기능도 한다. 자전거타기·수영·스키·스케이팅 같은 운동을 배우고, 한번 익히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잘할 수 있는 이유도 소뇌의 기능 때문이다. 이 부위가 손상될 경우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질 수 있다.
2층 중뇌는 호르몬·기억·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로서 정보를 위아래로 전달하는 중간 정거장 역할을 한다. 포유동물이 다른 종보다 감정 표현을 잘하는 이유는 이 부위가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포유류의 변연계에 있는 해마와 편도핵은 학습 및 기억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해마는 기억의 일시적인 저장고로 여러번 반복 학습하면 대뇌에 장기기억을 남긴다. 평소 머리를 쓰지 않으면 해마가 퇴화해 인지기능장애가 빨리 온다. 폭음으로 기억을 잃는 ‘블랙아웃’은 해마의 기능이 마비된 것으로, 이 같은 현상이 잦아질 경우 50대 이후 치매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
이밖에 변연계에는 호르몬조절부인 시상하부와 뇌하수체가 자리잡고 있다. 콩알 크기의 시상하부는 음식을 섭취하고 체온과 수면을 조절한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수분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아 소변을 자주 보는 요붕증에 걸리게 된다. 또 뇌하수체에 이상이 생기면 성욕을 잃고 성불구자가 될 수 있다.
3층에 있는 대뇌(전뇌)는 가장 나중에 진화된 부위로 고도의 정신기능과 창조기능을 관할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간은 대뇌피질부의 표면적이 신문지 한 면 크기로 다른 모든 동물보다 크고 주름이 많다. 이 때문에 말하거나, 문자를 사용하거나, 사고하거나,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등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뇌피질은 대뇌의 가장 윗부분 껍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표면이 주름져 있어 작은 두개골 안에 많은 뇌신경세포를 담을 수 있다. 이 같은 특성은 뇌 크기를 작게 유지함으로써 아이를 낳는 데 도움을 준다. 서유헌 한국뇌연구원장(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는 “머리가 좋다 나쁘다는 대뇌피질의 각 영역이 어떻게 얼마나 잘 발달했는가로 결정된다”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는 대뇌피질이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뇌피질은 전체 뇌 무게의 40% 정도를 차지하며 두께는 약 2~3㎜, 면적은 평균 2200㎠로 신문지 한 면 크기와 비슷하다. 이 부위에는 140억개에 달하는 뇌신경세포(뉴런, neuron)가 모여 있다. 이들 세포는 20세가 되는 시점에 가장 잘 발달했다가 이후 매일 10만개씩 감소한다. 일본 대뇌생리학의 대가인 시나카와 요시야 박사는 하루에 약 8만6000개의 뇌신경세포가 죽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뇌신경세포가 죽는다고 해서 뇌가 무조건 퇴화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훈련으로 뇌에 자극을 주면 세포간 연결체인 시냅스(synapse)가 증가해 뇌기능이 향상될 수 있다.
대뇌는 전두엽(이마엽), 측두엽(관자엽), 두정엽(마루엽), 후두엽(뒤통수엽)으로 구분된다. 이들 부위는 성장시기와 패턴에서 차이를 보이며, 앞쪽의 전두엽에서 뒤쪽의 후두엽으로 이동하면서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서 원장은 “3~6세 유아기에는 맨 앞쪽에 있는 전두엽이, 6~12세 초등학교 시기에는 가운데 부위에 있는 측두엽과 두정엽이, 12세 이후부터 후두엽 부위가 빠르게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중 전두엽은 크기가 가장 큰 부위로 감정 및 행동 조절, 성격, 계획, 주의집중력 등에 관여한다. 또 옳고 그름을 가리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는 이 부위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발생하게 된다.
측두엽은 인지기능과 단기기억을 담당하며, 우표 크기만한 청각조절중추(청각피질)가 있어 청각기능에 관여한다.
두정엽은 외부정보를 조합하는 역할을 하는 부위로 사지의 감각 및 운동, 공간지각력, 계산 등을 담당한다. 후두부와의 연결 부위는 말하기 등 언어능력에 관여한다.
후두엽은 시각중추가 있어 시각피질로도 불리며 눈으로 들어온 시각정보를 토대로 사물의 위치·운동·모양 등을 파악한다. 이 부위가 손상될 경우 다른 부위에 이상이 없어도 장님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뇌가 크고 무거울수록 지능이 높은 고등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남들보다 두상이 큰 이른바 ‘대두’인 사람은 무조건 머리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뇌 크기가 지능 혹은 뇌의 복잡성과 비례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향유고래의 뇌 무게는 9000g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가장 무거우며, 보통 성인의 뇌 무게인 1300~1500g과 6배 가량 차이난다. 그러나 무게와 상관없이 인간의 뇌는 향유고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
상대성이론 등으로 인류 과학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뇌 무게가 1230g으로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작았다. 또 흔히 대뇌피질에 주름이 많으면 머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뇌 주름은 구조가 단순했고 길이도 짧았다. 반면 수리력과 연상력 등을 관장하는 두정엽 하단부가 일반인보다 15% 가량 넓었으며, 신경세포 간 교신활동을 돕는 아교세포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뇌 크기보다 뇌 속의 신경세포수나 배열구조가 지능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인의 두뇌 크기가 2만년 전 인류보다 오히려 작아졌다는 사실이다. 2009년 미국 위스콘신대와 듀크대 등의 고고인류학 연구팀이 중국, 남아프리카, 호주, 유럽 등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현대인은 2만년 전 인류보다 뇌 크기가 평균 150㏄(10%)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6월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진화 전문가인 마르타 라르 박사가 인류의 체구와 뇌 크기가 선사시대보다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영국 왕립협회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선사시대 원시인보다 두뇌기능이 떨어지는가.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라르 박사는 “뇌 크기가 줄어드는 것도 진화의 일부분으로 봐야 한다”며 “문명이 점차 발달되고 분업화되면서 인간의 뇌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쓰도록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즉 개발 초기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던 컴퓨터의 크기가 성능이 업그레이드될수록 오히려 작아진 것과 같은 원리다.
뇌와 관련된 가장 잘못된 속설 중 하나는 ‘인간은 평생동안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뇌가 전체 에너지의 10~20% 가량을 소비한다는 연구결과를 잘못 해석해 나온 오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뇌 무게는 우리 몸의 2%에 불과하지만 총 에너지의 20%, 흡입한 산소량의 25%, 일일 칼로리의 30%, 탄수화물의 65%를 소모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한다. 심지어 잠을 자거나 멍청히 앉아 TV를 볼 때에도 뇌는 쉬지 않는다. 왕성한 활동량만큼 사용범위도 광범위하다. 현대의학에서는 인간이 평생 동안 뇌의 구석구석을 사용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뇌를 어느 정도의 비율로 사용했는지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 정확한 사용비율은 알 수 없다.
남녀간 기본적인 행동패턴의 차이도 뇌 구조가 다른 데에서 비롯된다. 여성은 언어·청각과 관련된 뇌 부위의 신경세포가 남성보다 10% 가량 많아 언어능력이 뛰어나고 말을 더 잘 한다. 변연계의 한 부위인 해마의 크기도 남성보다 커 감정을 감지하고 표현하는 능력과 기억력이 더 우수하다. 연인 사이의 말싸움에서 항상 남성이 여성에게 밀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호르몬 분비로 인해 남녀간 뇌 구조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서 원장은 “남성은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능력을 관장하는 좌뇌가 우위인 반면 여성은 남성보다 좌·우 양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남녀간 행동과 성격이 다른 이유가 뇌 연결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 라지니 베르마(Ragini Verma) 미국 펜실베니아대 교수팀이 8~22세 남성 428명과 여성 521명의 뇌를 확산텐서영상(DTI, Diffusion tensor imaging)으로 분석한 결과 남성의 대뇌는 대뇌반구의 내부 연결성이, 여성은 좌뇌와 우뇌간의 연결성이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소뇌의 경우 남성은 좌우반구를 오가는 연결구조가, 여성은 각 반구의 내부연결이 더 발달됐다.
이 같은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남성은 즉각적인 행동과 수행이 필요한 일에, 여성은 논리와 직관이 동시에 관여하는 일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즉 여성은 남성과 달리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 한결 우월하다.
머리 좋은 여성과 결혼해야 자식의 지능이 높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지능이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X염색체에는 지능을 결정하는 주요 유전자들이 들어있는데 아들은 엄마로부터 한 개의 X염색체를, 딸은 아빠와 엄마로부터 각각 한 개씩의 X염색체를 물려 받게 된다. 아들이 딸보다 엄마로부터 지능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최근 과학자들이 일란성쌍둥이와 이란성쌍둥이를 조사한 결과 지능의 유전적 영향은 약 60%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능은 선천적인 요인보다 후천적인 노력과 환경적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뇌를 젊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뇌에 휴식 주기 △뇌 적절하게 사용하기 △일의 순서 바꾸기 △유산소운동 하기 등을 제시했다. 뇌를 편히 쉬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는 일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 등을 없애야 한다. 따뜻한 해변을 거닐거나 푸른 초원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뇌는 한층 젊어진다.
뇌 전문가들이 꼽는 최고의 뇌 휴식법은 ‘무념무상’이다. 신동원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저서 ‘멍 때려라’에서 두뇌는 ‘집중’과 ‘휴식’이 번갈아가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현대인은 휴식 없이 집중 상태만 지속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경우 뇌에 과부하가 걸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 행위도 뇌 입장에서는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뇌가 쉬지 못하면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멍하게 넋을 놓거나 공상에 빠져 있는 행동은 측두엽, 두정엽, 전두엽 앞쪽 깊은 곳을 의미하는 ‘디폴트네트워크(외부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동하는 뇌 영역, default network)’를 활성화시켜 창의적인 사고를 한결 수월하게 한다. 디폴트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르는 ‘유레카 모멘트(깨달음의 순간)’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유레카 모멘트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앉아 있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를 외쳤다는 일화에서 따왔다.
등산, 낚시, 유산소운동 등 새로운 취미생활에 도전하는 것은 뇌를 젊게 만들고 삶의 활기를 불어넣는 데 효과적이다. 그동안 다뤄보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면 뇌의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뇌는 손놀림이 많을수록 더욱 잘 발달한다. 뇌에서 손을 관할하는 영역이 전체의 3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감정표현에 솔직한 성격도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