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동제약 “지분 매입전 어떤 협의도 없어” … 지주회사 전환 무산 우려에 ‘분개’
녹십자와 일동제약이 적대적 인수·합병(M&A) 여부를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일동제약의 지주회사 전환을 논의할 예정인 임시주총을 앞두고 녹십자가 이 회사 지분을 대거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라선 데 따른 것이다.
일동제약은 21일 녹십자의 자사 지분 인수와 관련 “녹십자의 명분 없는 적대적 행위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녹십자의 지분 확보가 적대적 M&A를 위한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동제약은 또 “녹십자의 선언에 대해 합의 없는 시너지는 어불성설”이라며 “지분 매입 전에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고 밝혔다.
녹십자는 지난 16일 개인투자자 이호찬 씨의 일동제약 주식 12.57%를 인수해 보유지분이 27.49%로 늘었다고 공시했다. 또 특수관계자인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셀도 각각 0.88%, 0.99%의 지분을 취득해 녹십자의 총 지분율은 기존 15.35%에서 29.36%로 증가했다. 이로써 녹십자는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등 최대주주(34.16%)에 이어 2대 주주로 단숨에 올라섰다.
특히 녹십자는 주식 매입에 쓴 436억원 가운데 374억원을 외환은행과 씨티은행에서 차입했다. 이 때문에 녹십자가 단순한 투자가 아닌 적대적 M&A를 위해 주식 확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녹십자는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하며 이 같은 속내를 드러냈다.
일동제약 측은 “이번 지분 매입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간의 주식 매입 과정에서도 사전 정보공유는 없었으며, 보유목적은 단순 투자임을 공시를 통해 밝혀왔다”며 “그러나 임시주총을 앞둔 시점에 경영참여로 그 목적을 기습적으로 변경하며, 그 의도를 의심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필요한 분쟁은 오히려 글로벌 제약기업 실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동제약은 “최근 5년간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을 위해 적극적인 R&D투자와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위해 자금 지출을 늘리고 경영역량을 집중하는 시기를 틈타, 녹십자는 일동제약 지분 늘리기에 주력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백신 등에서 독과점적 시장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녹십자가 의약품 사업에 매진하며 성장해온 일동제약에 대해 사실상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행위가 제약산업 구조개편의 바람직한 모습인지 심히 의문이 간다”며 “녹십자의 시너지나 우호관계 등의 일방적인 주장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포장일 뿐”이라고 일침을 놨다.
일동제약은 녹십자의 지분확대로 지주사 전환이 불투명해지자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기업분할(지주회사 분할)을 통해 다양한 중장기 전략들을 더욱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하고, 경영책임과 효율을 제고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녹십자도 2000년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때 일동제약의 기업분할과 대동소이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며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기업분할에 반대한다면 스스로의 경영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동제약은 오는 24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임시주총을 갖고 지주사 전환을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녹십자가 일동제약 지분 9.99%를 보유한 피델리티와 손을 잡을 경우 지주사 전환이 무산될 수 있다. 지주사 전환이 통과되려면 참석 주주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이에 대해 피델리티 관계자는 “일동제약과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발언을 자제했다.
이와 관련해 녹십자 관계자는 “일동제약의 지분을 매수한 것은 희귀질환, 백신 등에 특화돼 있는 녹십자의 장점과 일동제약의 일반약사업 등으로 시너지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다”며 “제약산업 발전을 위한 동반자관계에서 긴밀히 협력하기 위해서지 적대적 M&A는 아니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적대적 M&A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녹십자는 2010년 삼천리제약 인수를 추진했으나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지난해에는 동아제약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녹십자는 비타민 제품 위주의 경남제약과 파스류 및 단방류 중심의 상아제약을 인수했으나 경남제약의 경우 제품군이 단조롭고 시너지가 나지 않아 재매각했고, 상아제약은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