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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홀릭’ 권하는 한국사회 … 직장인들이 병들고 있다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1-20 01:42:53
  • 수정 2014-01-23 17: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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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도한 경쟁사회 산물, 우울증·소화기질환 위험 증가 … 대인관계 악영향, 자가인식 중요

일중독은 단순한 심리적 이상 문제일 수도, 정신질환으로 볼 수도 있는 경계선상의 정신건강 문제다. 다만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에서 비자발적으로 일에 대한 압박감이 지속된다면 정신건강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김모 씨(31·여)는 올해부터 자발적으로 주말 근무를 하고 있다. 다가오는 상반기 인사평가에서 점수가 낮은 사원은 지방발령을 낸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입사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야근과 주말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는 “일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불안하고 남에게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하루종일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끼니를 거르거나 잠을 설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중소 규모의 전자부품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씨(57)는 집보다 회사가 좋은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다. 그는 휴일이나 주말에도 출근해 일을 하고 직원들에게 수시로 전화해 업무를 지시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직원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예정에 없던 회의가 갑자기 주말에 잡히거나 휴가를 반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 씨가 요구하는 업무량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직원들에 대한 짜증과 호통이 잦아지자 업무 분위기는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매출 200% 상승이라는 성과를 달성했지만 이 씨는 어느새 직장내 왕따가 돼 있었다.

워커홀릭(일중독, Workaholic)은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 또는 오직 일만이 정신적으로 지탱할 힘이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과잉적응증후군’으로도 불린다. 보통 1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웨인 오츠(Wayne Oates)는 1980년대 출판된 저서 ‘워커홀릭’을 통해 이 단어를 처음 언급했다. 그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자신의 모든 가치 기준을 일에 두는 업무제일주의는 성격이 아니라 일종의 병이라고 비판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저서 ‘일중독 벗어나기’에서 “일중독(워커홀릭)은 삶의 내면이 공허할 때 그 허기를 일로 채우려는 일종의 질병”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중독이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 에후다 바루크 프랑스 루엥 경영대학원 교수는 ‘국제경력개발(Career Development International)’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워커홀릭은 탈진과 냉소주의 대신 활기와 헌신을 보여준다”며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지 않는다면 원하는 만큼 일하도록 놔두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친 한국 사회는 일중독을 대단한 장점이나 미덕으로 여기고, 이를 권장해왔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 인사가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이들의 부지런함과 끈기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원동력이기에 현재 시점에서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일중독을 과도한 경쟁사회 및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부산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브라이언 로빈슨 노스캐롤라이나 샬롯대학 교수는 “일중독은 아마도 가장 잘 포장된 정신건강 문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일본과 같이 직장인들이 엄청나게 많은 시간 일을 하고 과로사(karoshi)라는 말이 창시된 나라에서 일중독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법원은 과로사를 ‘(근로시간을 초과한) 불법행위에 의한 사망’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도한 일중독은 알코올·약물중독처럼 헤어나오기 어렵고,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며, 대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하라연 서울시 북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업무성과로 자존감을 확인하는 습관이 반복될수록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며 “이런 경우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끼니를 거르거나 일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동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중독증은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나타나는 심리증후군 중 하나”라며 “술에 집착해 알코올중독이 되듯 성공만을 목표로 지나치게 일에 매달리면 일중독이 된다”고 설명했다.

의학적으로는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 워커홀릭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보통 일을 하고 목표한 성과를 이뤘을 때 흥분하게 되는데 이 때 뇌에서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교감신경계를 자극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과다 분비될 경우 각성이나 흥분을 일으킨다. 이는 마약, 모르핀, 헤로인 등이 인체에 작용하는 원리와 거의 비슷하다. 즉 일중독자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쾌감을 맛보기 위해 계속 일에 몰두하게 된다.

해외 유명 만화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가 공개한 세계지도. 각국의 특징·강점을 나타낸 이 지도에서 한국은 워커홀릭으로 표시돼 있다.

한국인의 워커홀릭은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해외 유명 만화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는 각 국가의 특징이나 강점을 키워드로 표시한 세계지도를 공개했다. 이 지도에서 한국은 ‘워커홀릭’으로 표시돼 있었다. 이밖에 북한은 ‘검열’, 중국은 ‘이산화탄소’, 인도 ‘영화’, 스페인은 ‘코카인 사용’, 프랑스 ‘관광’, 일본은 ‘로봇’ 등으로 표현됐다.
CNN도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로 ‘일중독’을 꼽았다. CNN은 “한국인은 너무 열심히 공부한 나머지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며 “한국 어느 도시에서든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2012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3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38.1%가 스스로를 일중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인구의 10%가 일중독자일 수 있고, 변호사·의사·심리학자들은 그 비율을 23%로 높여잡고 있다. 실제로 일중독자가 아닌 사람도 자신을 일중독자라고 단정해버린다. 1998년에 캐나다의 일반사회조사에서 캐나다 사람들의 27%가 자신을 일중독이라고 규정했다. 연소득이 8만달러 이상인 경우 자신을 일중독이라고 규정한 사람의 비율은 38%였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는 사람도 22%가 자신을 일중독자로 여긴다는 우스꽝스러운 외국 조사도 있다.

문제는 모든 워커홀릭들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업무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온라인교육포털 에듀스파와 잡스터디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의 66.1%가 사내 워커홀릭으로부터 과다업무를 강요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듀스파 관계자는 “조기퇴직이나 과도한 경쟁으로 강박관념을 갖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일에 몰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쉽다”며 “이 조사결과로 직원들에게 잦은 야근과 과다한 업무를 강요하는 사내 워커홀릭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인은 다른 국가 사람보다 일을 더 많이 할까. 2012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OECD 국가 주요 고용지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4.6시간으로 OECD 평균인 32.8시간과 큰 차이를 보였다.
스마트해진 업무환경도 일중독자 양산에 일조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으로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워커홀릭들은 여행을 가거나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업무를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일중독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경제력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고 있거나, 권위적인 성격이거나,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거나, 배우자로부터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에서 잘 나타난다. 이들은 우울증이나 강박관념에 쉽게 사로잡히고, 과로 및 스트레스를 달고 살며, 일이 없거나 줄어들면 불안해지는 일종의 금단현상을 겪는다.

일중독자는 생리적으로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면 교감신경이 지속적으로 자극받아 장기능이 저하되고 각종 소화기질환에 쉽게 노출된다. 끼니를 거르는 등 불규칙한 식습관도 소화기장애를 잘 유발한다. 아울러 장시간 앉아서 업무를 볼 때가 많아 하지정맥류나 각종 심혈관질환의 발병률도 높아진다.

일중독은 단기적인 업무성과를 높이는 데에는 도움될 수 있다. 그러나 일중독자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매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아 직원들의 사기와 업무 분위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또 이직에 대한 욕구가 커 이를 실행할 경우 회사에 업무공백을 가져온다. 게다가 어릴적부터 일중독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는 일중독이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일중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업무시간과 여가시간을 확실히 구분하고, 쉴 때에는 일 걱정을 하지 말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또 가족이나 친구와 있는 시간과 대화를 늘리도록 한다. 눈앞의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앞날을 계획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일중독증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일 5분 정도 명상을 하고 최소 6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는 게 좋다. 또 1년에 1주일 정도는 여행 등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줘야 한다. 이 교수는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하거나 대결지향적인 자세는 버리는 게 좋다”며 “눈앞의 일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습관을 갖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직장상사가 워커홀릭이라면 대화로 해결점을 찾는 게 효과적이다. 상사를 따라 야근을 반복하거나 비현실적인 업무기한을 억지로 맞추려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서로간 관계가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재 상황을 솔직히 얘기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라연 과장은 “일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해지거나 강박증이 나타날 경우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상담받아야 한다”며 “과도한 일중독은 정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과로, 스트레스, 다양한 질환 등을 발생 및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운동이나 여행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미국 일중독자협회가 제공하는 일중독 자가진단법. 이 중 3개 이상에 해당된다면 일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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