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은행에 기증않고 대리부와 직접 거래하면 불법, 3년 이하 징역
정자와 난자의 냉동보존은 수분을 제거해 동결억제제에 담가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탱크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 결혼·임신 연령대가 늦어지면서 차후에 빚어질지 모를 불임·난임·항암치료·사고 등에 대비해 젊은 시절에 미리 정자나 난자를 보관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젊은층의 결혼기피, 환경호르몬에 의한 가임능력 저하, 암 발생률 상승, 경제력을 갖춘 골드미스 증가 등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보관서비스를 이용하는 주된 연령층은 기존 40대에서 30대로 확산되고, 심지어 학부모가 자녀의 대입 선물로 정자은행을 함께 찾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결과 환경호르몬 노출, 스트레스 등으로 불임 진료환자는 2008년 16만2000명에서 2012년 19만1000명으로 연평균 4.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 불임환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11.8%로 여성의 2.5%보다 5배 가까이 높았다.
정자와 난자를 보관하는 가장 주된 목적은 불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시험관아기시술, 세포질내 정자주입법 등 불임치료법이 개발되고 동결보존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이런 수요가 늘고 있다.
또 젊은층에서 암 발생이 늘면서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로 인한 생식기능의 저하를 우려한 사람들이 정자·난자 보관에 나서기도 한다.
정자·난자를 포함한 일반적인 세포조직의 동결보존(Cryopreservation)은 조직·기관·세포 등을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탱크에 냉동 보관한 후 해동해 원래 기능을 회복시키는 원리로 이뤄진다. 동결보존의 핵심은 세포의 90%를 차지하는 수분의 처리 여부다. 물이 얼면서 생긴 날카로운 얼음결정이 세포막을 손상시키면 해동 후 세포가 사멸하기 때문이다.
원형재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교수는 “동결보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포내 형성된 얼음결정으로 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최근에는 동결억제제(cryoprotective agent, CPA)로 세포내 수분을 제거하는 방법이 자주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세포를 글리세롤(glycerol), DMSO(demethyl sulfoxide), EG(ethylene glycerol) 등 동결억제제로 처리하면 삼투압현상이 일어나 수분은 밖으로 배출되고 대신 동결억제제가 세포로 들어가게 된다. 동결억제제는 극저온에서도 얼지 않고 젤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세포가 얼음결정으로부터 받는 손상을 최소화한다. 동결억제제로 처리된 세포는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탱크에 담겨 보관된다.
정자는 구조적으로 냉동에 강한 특성을 갖고 있어 동결보존이 한결 쉽다. 다른 세포에 비해 세포내 존재하는 소기관의 수, 세포질 양, 수분 등이 적어 얼린 후 해동해도 생존율이 높다. 또 정자에 들어 있는 ‘프로타민’ 단백질은 구조적으로 안정되고 열이나 냉기에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정자의 냉동 후 생존율은 최소 50%에서 최대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합한 조건에서 냉동할 경우 정자의 형태나 운동성은 크게 변화되지 않는다. 원 교수는 “동결보관을 한다고 해서 정자·난자의 기능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동 후 생존율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자 동결보존법은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안전성이 향상되고 있다. 2010년 윤태기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장팀은 정자를 액체질소에 직접 담그는 것보다 액체질소 증기에 보관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전까지 정자는 영하 196도의 탱크에서 액체질소에 직접 담궈 보존한 후 해동시켜 이용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저장된 정액 안으로 액체질소가 침투하거나 바이러스 및 병원균에 의해 정자가 감염될 수 있었다.
윤 교수팀의 연구결과 정자를 액체질소 증기에 냉동보관할 경우 정자의 형태·생명력·운동성은 기존 방법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며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위험은 감소했다. 당시 미국 로이터통신은 “이번 연구는 액체질소 증기를 이용한 정자보관법이 해동 후 부작용 없이 생물학적 특질을 유지한다는 점을 최초로 규명했다”며 “기존 방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오염 가능성 등의 단점을 극복함으로써 정자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자은행은 냉동시킨 정자를 장기간 보관하는 시설로 불임문제를 예방 및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인터넷카페를 통한 불법적인 정자매매가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정자은행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자은행은 항암치료나 정관수술 전 정자를 보관하거나, 배우자의 정자 생성기능에 문제가 생겨 공여자로부터 정자를 받아야 할 때 이용하게 된다. 정자는 정액검사를 통해 정자의 양과 운동성, 기형 여부 등을 확인받은 후 정자은행에 보관된다.
정자 기증을 원하는 사람은 바이러스검사, 혈액검사, 항원항체검사, 에이즈검사 등 15개 항목의 검사를 2~3개월에 걸쳐 받아야 한다. 에이즈 등 성병은 잠복기가 3개월 이상이기 때문에 첫 검사 3개월 후 재검사를 받게 된다. 이밖에 정자를 공여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30세 미만의 젊고 혈기왕성한 남성 △대졸 이상 학력 △최소 170㎝ 이상, 최대 190㎝ 이하의 키 등이 요구된다. 특별한 신체적 결함이 있거나, 눈이 너무 나쁘거나, 기타 질병이 있는 등의 조건에 해당되면 공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보관 비용은 병원별로 차이나며 1년에 10만~25만원선이다. 동결시킨 정자를 녹일 때 15만~20만원을 추가 납부해야 한다. 보관기간은 보통 1년으로 1년 연장할 때마다 5만원의 추가비용이 든다.
혼기를 놓친 골드미스들이 관심을 갖는 난자보관은 정자에 비해 냉동과정이 까다롭고 생존율도 훨씬 낮다. 크기가 120~150㎛로 일반세포보다 5만배 이상 크고 세포내 수분이 많기 때문이다. 또 성숙한 난자는 핵막이 없어 얼음결정에 의해 세포가 손상될 위험이 크다.
그러나 최근 의학기술의 발달로 유리화동결법 도입 이후 난자의 생존율은 최대 89.4%로 향상됐다. 그 전에 널리 쓰이던 완만동결법은 40~60% 수준에 불과했다.
완만동결법(slow-cooling)은 냉동기로 불리는 기계내 센서로 액체질소의 공급량과 메탄올 농도 등을 조절하면서 온도를 천천히 낮추는 방법이다. 1986년 첸 박사는 완만동결법으로 난자를 냉동보관한 후 이를 이용해 시험관아기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장비의 가격이 비싸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단점이었다. 난자의 생존율이 낮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약점으로 꼽혔다.
이에 비해 최근 많이 활용되고 있는 유리화동결법(Vitrification)은 고농도의 동결억제제로 세포내 수분을 제거한 후 액체질소에 바로 담그는 초급속냉동법이다. 초기에는 고농도의 동결억제제에서 나온 독성으로 세포가 손상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1985년 윌리엄 랄(William F. Rall)과 그레그 페이(Greg Fahy) 박사가 동결억제제의 농도와 처리시간을 조절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동결난자의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켰다.
유리화동결법은 얼음결정이 형성되지 않아 세포손상이 거의 없고, 소요시간이 완만동결법보다 훨씬 짧으며, 고가의 장비가 필요없다는 게 장점이다. 초급속냉동법으로 세포를 동결시키는 과정에서 세포질내 동결억제제와 물 성분이 녹아있는 유리처럼 변한다는 의미로 유리화동결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동결난자의 보관기간은 보통 5~7년으로 기간이 연장될수록 임신 성공률이 떨어진다. 난자 초기 동결 비용은 10만원이며, 보관비용은 3개월에 30만~35만원 수준이다.
난자 보관은 보통 △과배란유도에 의한 심한 난소과자극증후군 위험이 우려되거나 △자궁내막이 배아를 이식하기에 부적절하거나 △자궁경부의 심한 협착 등 해부학적 이유로 배아이식에 실패하거나 △발열 등으로 환자의 건강이 나쁠 때 실시한다. 원 교수는 “난자 기증은 최근 병력이 없는 건강한 기혼 여성 또는 출산력이 있고 추가 임신계획이 없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는다”며 “현행법상 6개월 이상 간격으로 생애 최대 3번까지 공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자·난자은행을 통하지 않는 당사자간 직거래는 불법이다. 예컨대 은행을 거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정자나 난자를 매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게 된다. 문제는 불임 환자 수는 급증하는 반면 은행에 보관 중인 정자와 난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06년 복지부 조사결과 국내 22개 기관이 3897개의 난자를, 64개 기관이 5544명분의 정자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주태 제일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정자·난자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돼 기증만 받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홍보가 부족해 기증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자·난자를 보관하는 행위에 대해 보수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터넷을 통해 정자·난자를 불법 거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자은행의 경우 공여자의 정확한 외모나 스펙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부 불임환자는 직접 대리부를 만나 매매 혹은 성관계를 통해 정자를 얻는다. 심지어 거액의 사례비를 받고 기증자를 알선해주는 전문브로커까지 등장했다. 2011년 국정감사에서는 부부간 불임시술이 아닌 경우 국내 정자은행에 기증된 정자 수보다 더 많은 시술이 이뤄져 이런 의혹이 사실임이 입증됐다. 이는 불임부부들이 학벌이나 신체조건을 따져 고액의 사례금을 지불하고 정자를 직접 사오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난자는 1인당 평생 3회로 기증 횟수가 제한돼 있다. 그러나 정자는 기증 횟수를 제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관련 시민단체 및 전문가와 논의해 불법적인 정자거래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했지만 아직 효과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영익 미체원여성의원 원장은 “불임부부들이 우월한 유전자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음성적인 정자거래는 지속될 것”이라며 “이런 경우 결함있는 정자로 인한 희귀·유전성질환이 초래될 우려가 커 정자거래를 양성화하고 보상비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