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육류에서 나오는 보툴리눔 독소를 순수하게 정제해 원하는 부위에 주입하면 주름, 근육경련, 다한증, 사각턱, 안검경련 등을 개선할 수 있다.
보톡스는 누구나 한번쯤 시술을 고려해 봤을 만큼 흔해졌다. 쁘띠성형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이 시술은 정확한 위치에 주사하면 해당 부위의 근육만 선택적으로 마비시켜 사각턱은 갸름하게, 눈가나 이마의 주름은 옅게, 인중을 내려서 지나치게 드러나는 잇몸은 안보이게 만드는 등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다.
주로 근육과 말단신경전달체계에 작용, 아세틸콜린이란 신경물질의 분비를 억제해 근육을 일시적으로 마비·이완시키는 작용이 각 신체부위에서 다양한 미용 또는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보톡스는 ‘클로스트리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박테리아의 독소를 정제한 천연단백질이다. 이 세균의 독소는 1g으로도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하다. 보툴리눔톡신 제품 중 미국 엘러간사의 상품명이 ‘보톡스’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세계 최초로 공인받았다. 상품명이므로 이 제품 외의 보툴리눔톡신을 ‘보톡스’라 부르는 것은 틀린 이야기다. 다만 워낙 유명하다보니 상품명이 일반명이자 시술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보툴리눔톡신은 대개 상한 통조림, 썩은 고기 및 소시지 등에서 발견된다. 고대 유럽엔 ‘보툴리즘’이라는 식중독 증상으로 시력저하, 입마름, 현기증, 구역질을 호소하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처럼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게 어렵다보니 썩은 소시지를 먹은 뒤 이런 증상들이 나타난 것이다.
시간이 흘러 1895년 벨기에의 엘레젤레스라는 작은 마을에도 보툴리즘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에밀 피에르 반 에르멘젬(Emile Pierre van Ermengem) 교수가 이런 상황에 대해 연구하다가 보툴리눔이라는 병원균이 보툴리즘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
2년 뒤 에르멘젬 교수는 보툴리즘으로 사망한 사람의 사체와 소금에 절여진 돼지고기로부터 세균을 발견·분리해내고, 실험실 동물에 독소를 주사해 중독증상을 재현시켜 보툴리즘은 감염되는 게 아니라 중독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여기서 현재의 A형 보툴리눔톡신(Botulinum toxin type-A)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보톡스 시술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게 바로 A형 보툴리눔톡신이다.
하지만 보툴리눔톡신이 질병 치료에 이용되기까지 1세기가 더 걸렸다. 두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의 의학기술은 놀라울 만큼 발전하게 된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 헤르맨 솜머(Herman Sommer) 교수가 A형 보툴리눔톡신을 처음으로 분리해냈다.
전시 상황에서 솜머 박사 말고도 이 균을 세균학적 무기로 개발하려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보툴리눔 독소 분리기술이 발전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정부는 보툴리눔톡신이 무기로 활용됐을 때를 대비해 치료법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독소를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연구 끝에 분리된 독소가 근육이 과도하게 위축되는 것을 이완시키는데 유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1946년 미국 에드워드 샨츠(Edward J. Schantz) 박사가 미용산업의 황금알을 낳는 닭이 될 보툴리눔톡신 결정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3년 뒤에는 보툴리눔톡신이 신경전달을 차단하는 사실이 증명됐다.
이런 보툴리눔톡신이 질병치료제로 이용되기 시작된 것은 1973년 미국 스미스-케틀웰 안과연구재단(Smith-Kettlewell Eye Research Foundation)의 의사 앨런 스콧(Alan B. Scott)이 원숭이 실험 중,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지나치게 수축된 것(사시)을 보툴리눔톡신으로 완화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1978년에 스콧은 FDA로부터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A형 보툴리눔톡신의 인간 임상시험을 실시한다. 4년 뒤 A형 보툴리눔 독소는 인간의 사시교정에 처음 사용됐다. 세균이 발견된 지 86년만에, 독소가 정제된 지 37년만에 의료 목적으로 사람에게 쓰인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엔 보툴리눔톡신의 일시적 근육마비 증상을 이용해 눈꺼풀(안검) 경련, 목 주변 근육의 긴장이상으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거나 떨리는 연축사경, 후두근육이 긴장해 나타나는 발성장애, 뇌졸중 등으로 인해 다리근육이 강직되면서 정상적인 자세를 유지하거나 걷기 어려운 경우 등에도 보톡스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눈꺼풀 떨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거나 깜빡이는 현상이다. 심하면 눈이 완전히 감기기도 한다.
김우경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과거엔 안검경련에 눈 주위 근육을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했지만 현재는 거의 하지 않고 대신에 간단한 보톡스 시술로 교정한다”며 “양쪽 눈 주위의 각각 4곳 정도에 보톡스를 주사하는데 구체적인 부위는 개인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하루 이틀은 일시적으로 눈꺼풀에 힘이 없어져 눈꺼풀이 약간 처지기도 한다”며 “먼지가 평소보다 눈에 잘 끼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럴 땐 잠시 안경을 착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뭐니뭐니해도 보톡스 등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영역은 역시 미용치료 분야다. 미용 목적의 보톡스는 1987년 캐나다 밴쿠버의 안과의사인 진 캐루더스(Jean Carruthers) 박사가 안검경련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 환자의 눈가에 주름이 사라지는 희한한 부작용(?)을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진 박사는 남편인 피부과 의사 앨러스테어 캐루더스(Alastair Carruthers)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앨러스테어는 병원의 안내원에게 보톡스를 주사해 주름을 효과적으로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뉴욕 신경학연구소의 미첼 브린과 그의 동료 앤드루 블리처도 보톡스가 가진 주름제거 효과를 발견했다.
1990년대 보톡스의 주름 제거 효과는 피부과 및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보톡스 붐’이 일어났고, 200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미용 목적의 주름치료제로 보톡스의 안전성을 승인했다.
임이석 신사테마피부과 원장은 “보톡스는 나아가 2005년부터 피부를 타이트하게 당겨주는 효과로 얼굴도 작게 해주는 시술로도 용도가 넓어졌다”며 “피부 진피층에 주사하는 ‘더마톡신’ 시술은 진피층에 주입된 미약한 독소가 피부를 움츠리게 하는 성향을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톡스를 근육 부분에 주사하면 주름이 펴지는 데 그치지만 진피층에 주사하면 피부조직이 수축되고 콜라겐 형성을 촉진하면서 얼굴도 탱탱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은 “피부에 생긴 주름의 80% 이상은 습관적인 근육 운동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눈웃음을 자주 짓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등의 버릇은 주름이 쉽게 지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톡스는 이런 습관으로 형성된 주름을 만드는 근육을 국소적으로 마비시켜 피부상태를 개선한다”며 “효과는 4∼6개월 정도 유지되지만, 이후 주름이 진해지는 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각진 얼굴은 자칫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보툴리눔톡신 제제를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교근(씹는 근육)에 주사해 이완시켜주면 얼굴이 갸름해질 수 있다.시술 시간은 5∼10분 정도로 짧으나 한 달이 지나면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두 달 후면 확연히 갸름해진다. 성장기 어린이에게 이 주사를 놓으면 자라면서 주걱턱이 되는 것을 상당히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논문도 나와 있다.
다한증 환자에게도 보톡스는 유용하다. 겨드랑이 등에 보톡스를 주사하면 땀샘의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차단함으로써 땀 분비를 억제할 수 있다. 치료 시 손바닥, 발바닥, 겨드랑이, 사타구니, 회음부, 이마, 코끝 등에 놓지만 가장 적합한 부위는 겨드랑이이다. 한번 시술로 약 6개월간 효과가 지속되므로 늦봄이나 초여름에 보톡스를 맞으면 땀이 줄줄 흐르는 괴로움을 덜 수 있다.
배뇨관련 질환에도 이용된다. 자주 화장실에 가는 빈뇨나 갑작스레 소변이 마려워 참을 수 없는 절박뇨는 방광이 조절되지 않고 갑작스레 수축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럴 경우 회음부나 하복부에 보톡스를 주사하면 증상이 개선된다. 습관적인 이갈이와 수면 중 이악물기는 두통이나 턱관절장애, 사각턱을 유발시킨다. 이때 보톡스를 턱근육에 주사하면 이런 습관이 완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보톡스는 효과가 빠르고 통증이 거의 없으며 시술 흔적이 남지 않아 많은 사람이 선호한다. 효과는 시술일로부터 대략 4∼6개월 유지되므로 반복적인 시술이 필요한 게 단점이다.
간혹 두통, 현기증, 안검하수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발생빈도가 매우 낮고 일시적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히 좋아진다.
알레르기 체질이거나 근무력증 환자, 다른 약제를 복용 중인 사람은 시술 전 전문의와 상담한 뒤 시술을 결정하는 게 좋다. 고농도로 맞으면 드물게 호흡곤란이 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약효가 사라지면 주름이 더 심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근육이 약간 줄어든 상태를 유지하거나 본래 상태로 돌아갈 뿐인데 착시효과로 이렇게 느낄 수 있다.
특이체질의 경우 보톡스를 맞아도 효과가 없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보톡스에 대한 항체를 선천적으로 보유한 경우다. 드물지만 단기간에 너무 자주 적정량을 초과하는 보톡스를 맞을 경우에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입술 주변에 놓으면 입술 근육을 마비시켜 식사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