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 진행될수록 요즘 젊은이들에겐 지금의 기성세대보다 ‘디지털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지 못하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지인들 심지어 가족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하는 게 전형적인 디지털치매의 모습이다.
급속한 정보화로 인해 기괴한(WEIRD) 세상이 돼 버렸다. 기억할 용량은 태산처럼 늘었지만 실제 기억하는 양은 과거보다 훨씬 줄었다. 정보의 양에 반비례해 우리의 정서는 더 메마르고 있다.
연말연시에 하는 초·중·고 동창회도 요즘 젊은이들에겐 기성세대만큼 애틋하지 못할 것이다. 휴대전화는 누구가 갖고 있고, 번호가 바뀌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돼 있기에 언제든지 만나고 싶은 동창은 맘만 먹으면 어렵잖게 찾아낼 수 있다. 지금 기성세대처럼 졸업 후 수년만에, 수십년만에 수소문 끝에 만나 가슴벅찰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잊고 싶은 친구나 군대 선임병이 연락오는 게 두려울 정도로 잊혀지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다.
1970~1980년대 영화나 가요가사 내용을 보면 비 오는 날 기약도 없이 학교 앞에서, 직장 앞에서, 그 사람이 지나갈 만한 길목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순수성은 어리석음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요즘의 날렵한 정보화가 그 놀라운 속도로 인간의 애틋함마저 증발시켜버리는 형국이다.
최근 국사교과서의 검정 문제로 좌파·우파간 대립이 첨예하다. 그 가운데 중학교 때에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집중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고교때 이를 다시 배울 필요가 논리가 어처구니가 없다.
2010년까지 고교 신입생에게 지급된 국정 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은 25% 정도였으나 지금은 50~80%에 달한다고 한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수업 부담을 줄이겠다며 중학교에서 배운 근대(近代) 이전의 역사를 대폭 축소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5000년이 넘는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에서 불과 100년 정도의 역사를 절반 이상으로 다뤘다니 문제다.
역사의식이 생기려면 고교때 중학교때 배운 근대 이전의 역사라도 되새김질 하듯 복습하고 그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다시 디지털치매를 우려하는 관점에서 청소년들의 학습량이 많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 뇌는 쓰면 쓸쑤록 뇌세포 수가 늘고 뇌기능도 좋아지고 뇌 용적도 커지게 돼 있다. 결국 지금 부모 세대들의 과보호가 학생들의 학습권리마저 상실케하는 셈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어떤 스마트폰이든 손앞에 쥐여주면 몇분도 안돼 능숙해질 정도로 컴퓨터화된 지능은 발달돼 있다. 기우일지 모르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한 수동적 정보 및 지식의 습득과 기계적 반응 태세는 인류의 지능을 퇴화시킬 수 있다.
학문이란 특정 개념의 정의, 각 개념의 유사점 찾기 비교분석, 해결 대안 제시 등으로 기본 구성을 이룬다고 할 때 기본적인 암기능력이나 이를 응용해 풀어내는 능력은 사람이 주도해야 하는데 거의 모든 것을 IT에 의존하다보면 분명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요즘 학습과정은 기본적으로 외우는 양이 너무 적고, 모국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필요한 한자공부를 소홀히 한다. 한자실력이 약하니 한국화된 지식의 확장에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뇌는 매우 유연하다. 지금의 한국교육은 주입식 교육의 장점은 따오지 못하고 뭔가 잘못된 학습방법을 창의학습이라고 포장하면서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 문제 출제로 학생들을 피곤하게 하고 지력(知力)도 갉아먹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의 공통점은 단기기억능력이 우수하고 이를 응용한 재창조능력이 우수하다. 대뇌 측두엽에 위치해 단기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5~10분전에 기억한 단어나 숫자가 장기기억으로 굳어지게 하는 임시 저장고 역할을 한다. 50대 넘어 단기기억력이 급속하게 떨어지면 뇌의 노화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요즘 젊은이들이 50대에 이르면 지금보다 해마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수초전 또는 수분전의 내용을 기억하는 단기기억능력은 IT기기 사용으로 감퇴될 수 있다. IT기기는 깊은 몰입을 방해하고 피상적인 생각에 그치게 한다.
뇌에는 알통이 있다.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우듯 정신체육관에서 뇌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를 방해하는 거대한 장애물이 IT기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추천되는 게 운동이다. 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학업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교우관계를 강화할 수 있으며, 협동과 리더십도 함양할 수 있다. 뇌에 피가 돌고 운동신경이 발달하면 머리도 좋아질 수 있는데 IT기기는 학생들의 발을 방안이나 게임방에 묶어버린다.
운동은 대뇌피질과 해마조직을 두꺼워지게 함으로써 머리가 좋아지게 할 수 있다. 이는 나이들어 치매가 찾아오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치매 증상을 약화시키는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임상적 기준으로 보면 치매로 진단될 경우 해마의 용적이 20% 이상 감소되는 등 뇌의 전반적 위축이 나타난다. 반면 기억력이 잘 보존된 사람들이 뇌 속 해마의 영역이 평균치보다 10% 가량 더 크며, 전체 뇌 용적도 더 크다.
운동은 또 혈중 지질을 감소시켜 치매를 일으키는 베타아밀로이드 독성단백질(Aβ-42)의 축적량을 감소시키고 뇌내 신경세포를 리뉴얼하고 더 촘촘하게 연결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운동 다음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게 손을 이용한 취미생활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연필도 무조건 기계에 넣어 깎아야 할만큼 손이 무뎌졌다. 칼로 연필을 깎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다. 심지어 사과도 제손으로 깎지 못하고 어른들이 깎아 준 것을 냉큼 받아먹기만 할 정도다.
서예 같은 경우 예민한 손놀림의 과정에서 뇌내 운동신경 발달, 정서 안정, 교양 쌓기 등 나름 미덕이 있는 취미이지만 요즘엔 컴퓨터로 인쇄하면 될 것을 무슨 그런 헛수고를 하느냐고 비아냥이다. 이밖에 DIY(do-it-yourself) 가구제작이나 인테리어·그림그리기·악기연주·종이접기·바느질 등은 손을 쓰게 하고 뇌의 퇴화를 막는 좋은 취미다.
청소년기부터 형성된 부단한 탐구정신은 디지털치매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TV시청 같은 수동적인 정보습득보다는 독서 등 능동적인 학습이 치매에 훨씬 유익하다. 다양한 단어를 접하고, 문맥의 논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단기기억 및 장기기억 훈련효과를 볼 수 있다. 고스톱이나 바둑 등도 노인의 기억장애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독서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이들어도 외국어 공부를 놓지 않는 것은 아주 유익한 습관이다. 아울러 운전은 내비게이션 사용을 자제하고, 지도 숙지를 통해 목적지를 찾는 습관을 유지토록 하자.
청소년기의 이른 음주는 해마가 완성되기도 전에 해마를 갉아먹는 유해한 행동이다. 폭음은 해마를 위축시켜 단기기억부터 약화시킨다. 아울러 스트레스 및 과로와 함께 뇌에 독성·염증물질(유해활성산소나 베타아밀로이드)이 쌓이게 해 치매를 유발하는 단초로 작용한다. 치매는 해마조직의 손상으로 시작해 대뇌피질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청소년의 인터넷·스마트폰·SNS 중독은 굳건한 자아확립 방해, 긍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과의 단절, 감정의 건조화, 불안증·우울증·충동조절장애의 심화, 뇌기능의 퇴화 등을 초래한다. 스트레스를 운동이나 교우관계로 풀지 못하고 폭력적 게임이나 자극적인 성인물에 빠질 경우 충동성과 공격성이 더욱 강화돼 범죄나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청소년기에 IT기기와의 적정한 간격유지는 ‘지적 인간’으로서의 자기 부가가치를 높이고, 30년 후에 찾아올지 모를 ‘디지털치매’와 멀어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