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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진상’ 환자 천태만상 … 의사도 호신술 배워야 하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3-11-25 01:38:18
  • 수정 2013-11-28 1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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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의사 극단적 스트레스, 치료기대치 미흡, 환자권리 강화, 의료정보과잉이 ‘진상’ 유발요인

국내 한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사를 구타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대한민국 사회 곳곳이 ‘진상’들의 횡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건 발생 후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포스코 ‘라면상무’부터 신문지를 말아 공항직원을 때린 ‘신문지회장’에 이르기까지 진상들의 횡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진상(進上)은 원래 국가의 절일(節日)이나 경사 때 중앙·지방 관리자가 왕에게 진귀한 물품이나 토산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등의 폐단이 부각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최근 진상들의 횡포로 감정노동자가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병원은 사람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곳이라는 특성 때문에 환자·의사·보호자 모두 정신적·육체적으로 심신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병원내 진상들의 횡포가 단순한 진료비 시비 등을 넘어 폭력이나 살인 등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다만 병원 진상 환자들은 의사들의 고압적·일방적 진료 방식에 의해 유발되는 측면이 있음도 인정할 측면이 있다.

간호사, 행정직원, 간병인 등 병원 종사들은 진상 환자들의 주요 타깃이다. 지난 8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병원 노동자의 54.4%가 환자로부터, 46.2%는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로부터 언어적 폭력을 당한 경험자도 24.1%나 됐다.
또 11.7%는 물리적인 폭행을, 10.1%는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간호사의 경우 13.4%가 환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김모 씨(29·여)는 “일부 환자는 간호사를 의사의 말단 부하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생각한다”며 “손으로 살짝 만지거나 수치심을 들게 하는 말을 하는 등 성희롱을 당하는 간호사들이 종종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진상 환자에게 복수하려다 망신살이 뻗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수원의 한 30대 치과의사 이모 씨는 두 번이나 폭행사건에 연루돼 언론과 네티즌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 씨는 60대 여성환자를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여성환자는 자신과 상의 없이 치아를 뽑았다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먼저 이 씨의 뺨을 때렸다. 이에 격분한 의사도 환자의 뺨을 때린 후 일방적인 폭행을 가했다.

이 씨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자 장문의 해명글을 포털사이트에 올려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해명글에서 “환자는 임플란트수술을 받은 후 ‘치아가 변기처럼 생겼다’ 등 말도 안되는 항의를 하면서 1년여간 저를 괴롭혔다”며 “치료비 전액을 돌려줄테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길 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최근 얼마전 받은 쌍꺼풀수술과 양악수술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서 먼저 안면을 맞아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씨의 해명글로 동정여론이 확산되던 상황에서 폭행당한 환자의 딸도 포털사이트에 반박글을 올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치과의사는 진료비를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계산할 것을 강요했고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금니 세개를 한꺼번에 발치하기도 했다. 또 의사가 항의하는 환자에게 반말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이를 참지 못한 환자가 뺨을 때렸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심적 부담을 이기진 못한 이 씨는 지난 8월 자신의 치과건물 3층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빨랫줄을 목에 감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머리를 크게 다쳐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건 발생 1년 후인 지난 10월 이 씨는 또 한번 폭행사건에 휘말렸다. 이번 상대는 환자의 가족이었다. 그는 진료비 환불 문제로 병원을 찾은 환자 김모 씨(26·여)와 말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옆에 서 있던 환자 오빠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뺨을 맞은 김 씨 오빠도 폭력을 행사하는 등 맞대응해 두 사람 모두 폭행혐의로 입건됐다. 이 씨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 네티즌들은 “치과의사가 도가 지나쳤다”, “처음에는 이해했는데 두번씩이나 그런 것은 의사에게도 문제가 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치과는 다른 진료과보다 상대적으로 환자-의사간 분쟁이 흔하다보니 이같은 ‘진상’ 환자도 많은 편이다. 치과진료는 비보험진료 비중이 높고 예컨대 무리한 발치, 임플란트 후 잦은 치아빠짐 또는 부정확한 치아맞물림, 틀니 또는 보철치료에 대한 환자불만이 비용 대비 치료기대치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에서는 환자가 원하는 형태로 용모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터치(필러나 보톡스의 보완수술) 또는 재수술(성형수술 등)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경우가 5~10%에 이른다. 수술비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잇따른 불만 제기에 의사들은 리터치 또는 간단한 눈·코 성형의 재수술은 별다른 비용 없이 해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환자들의 과민함과 무리한 수술 요구를 핑계로 거부하게 된다.
내과에서는 내시경검사 후 사소한 출혈이나 원인 불명의 소화불량에 대한 미흡한 치료효과, 남성수술 전문 비뇨기과에서는 원하는 만큼의 사이즈 확대 미비나 성신경 손상으로 인한 성감저하 등을 주된 불만으로 내세우는 진상 고객이 속출한다. 암 관련 분야에서는 암 관련 오진과 수술·방사선·항암약물치료 선택을 놓고 환자와 의사가 갈등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말기암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냉랭한 말투나 응대가 진상 환자를 촉발하기도 한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진상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로 저수가시대를 맞아 심화되는 병원간 경쟁구도, 인력감축으로 인한 의료진의 과도한 업무스트레스, 의료정보 습득을 통한 환자의 권리 향상 등을 꼽고 있다.
한 관절전문병원 관계자는 “인터넷으로 의학정보를 쉽게 습득하게 되면서 사전에 자가진단해온 진단명과 치료법이 의사가 추천해주는 방식과 틀릴 경우 의사를 의심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욕설을 하는 환자가 꽤 있다”며 “수술기술의 발전으로 치료결과에 대한 불만은 크게 줄어든 대신 수술전후 관리, 친절도, 서비스상태, 긴 대기시간에 대한 불만 표출은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 병원친절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 P 씨는 “병원간 경쟁구도가 심화되고 진료수가가 낮아지면서 최소한의 인력으로 수익을 내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의사 개인의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오는 스트레스로 의료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환자의 불만은 쌓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공의 K 씨는 “요즘 TV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의사의 멱살을 잡거나 폭언·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한다”며 “이는 무의식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존중감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를 상대로 한 진상들의 폭력행위는 중국에서도 큰 문제다. 중국병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의사가 환자에게 폭행당한 사건은 병원당 평균 27건이나 발생했다. 중국의 경우 의대 졸업생의 평균 월급이 40만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처우가 열약해 의료사고가 흔하다. 또 엄청난 인구 탓에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환자들의 불만도 극에 달한다. 이는 병원내 폭력행위가 끊이질 않고 발생하는 주요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의사들은 쿵푸 등 호신술을 배워 자기방어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쓴웃음을 짓게 하고 있다.

이처럼 병원내 진상들의 폭력행위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이학영 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해 12월 의료인에 대한 폭력행위를 가중처벌하는 조항을 둔 의료법개정안, 이른바 ‘의료인폭행방지법안’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환자의 권리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각종 시민환자단체에 반대에 부딪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법안을 공동발의한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은 “국내 의료기관 종사자는 100만명 이상이지만 이들을 위한 신변보호 차원의 안전장치는 여전히 마련돼 있지 않다”며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진료권 및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의료행위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이사는 “대전협이 준비 중인 ‘폭력대응방침’이 완성 단계에 있다”며 “이를 통해 전공의들이 폭력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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