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청소년 성형을 규제하려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외모지상주의와 청소년의 빠른 육체적 성숙으로 성형 바람은 오히려 거셀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성모병원 성형외과 의료진이 중국 의사와 합동 수술하는 장면.
무용가 이 모씨(26·여)는 10년 전 중3 여름방학 때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찢어진 눈이 콤플렉스였던 이 씨는 예고 입학을 앞두고 더 나은 외모로 자신감을 찾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이 씨는 지금도 어릴 때 쌍꺼풀수술을 받은 게 살면서 가장 잘한 일 ‘톱5’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박 모씨(25·여)도 고2 때 눈·코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박 씨는 많은 쌍꺼풀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핑계 중 하나인 ‘속눈썹이 눈을 찔러서’ 실제 수술이 필요한 케이스였다. 원래 안과에서 수술받으려고 했지만 ‘이왕 하는 거 예쁘게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성형외과를 찾았다. 내친 김에 코도 높였다.
박 씨는 “성형수술을 한번 계획하면 회복기간이 오래 걸려 직장을 잡고 난 뒤 받는 것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미리 받아놓길 잘한 것 같다, 적어도 손해본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
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듯 많은 19살 고3 학생들은 마지막 겨울방학을 ‘환골탈태의 시기’로 꼽는다. 다이어트부터 피부관리, 성형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 수능시험이 끝난 요즘 서울 압구정역, 강남역 등 성형외과가 밀집된 지역에 교복입은 소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다니거나, 삼삼오오 또래끼리 몰려다닌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어딘가 들떠있다. 한 여학생에게 물어보니 “요새는 예쁜 애들이 너무 많아서 수술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라며 “빨리 수술받고 예뻐져서 캠퍼스를 누비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미 성형수술에 대해 빠삭한 수준이다. 정보를 얻는 곳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인터넷이다.
‘수능성형’은 대학입학, 사회진출을 앞둔 19살 수험생들이 거치는 코스다. 11월말, 12월초는 성형외과들이 가장 바쁠 때다. 수험생 전용 이벤트 등을 마련해 대목을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굳이 이벤트를 벌이지 않더라도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입소문을 듣고 아이들을 모아 ‘단체할인’받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생 이 모씨(24)는 “졸업 후 별로 친하지 않은 5명의 반 친구들끼리 어머니들의 소개로 같은 병원에서 수술받은 적 있다”며 “다섯 명 다 비슷한 얼굴로 변하는 바람에 당황했지만 모두 다른 대학을 가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수능성형을 포함해 미성년자 성형수술 건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기세를 꺾지 못할 사회현상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어른도 많다. 이재영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월 25일 ‘성장이 진행 중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을 제한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의료인이 미용 목적 성형수술을 받으려는 자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성형부위에 따른 연령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성형수술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자는 법안이다. 이른 성형수술의 부작용을 막고 청소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의원에 따르면 선진국은 이미 이런 법안들을 시행하는 곳이 적잖다. 독일에서는 2008년 4월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 의원 30명이 청소년 대상 성형수술 금지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09년 12월 18세 이하 소녀의 가슴성형수술 또는 다른 성형수술 금지법안을 입법화했으나 통과되진 않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는 현재 성형수술을 하려는 18세 미만 청소년에게 △3개월간 숙려기간 △의무적인 상담 △2차 의견 청취 등 3단계 허용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16세 이하 청소년의 보디 피어싱 금지 내용을 담은 법률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타이완 정부도 청소년 정신건강 보호를 이유로 들며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미용성형 수술을 금지했다. 이를 어기면 최고 20만 타이완달러(한국 돈으로 약73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화상흉터 제거 등 치료를 위한 수술은 나이와 관계없이 허용된다.
하지만 올 2월 초 대한의사협회는 이재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의사의 결정권과 미성년자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별 논의 없이 시간은 흘러 다시 11월 수능성형 시즌이 찾아왔다. 본지 확인 결과 이재영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1월 28일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아직 상정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와 관련해 어떠한 논의나 검토, 보고가 이뤄진 적도 없다.
국회 관계자는 “현재 해당 상임위에 계류 중”이라며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 지연되는 것은 아니고 쌓여 있는 법안이 많다 보니 절차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단언할 수 없지만 이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의학적 근거 부족, 의사들의 반대, 청소년 및 부모들의 문제의식 결여 등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재영 의원이 주장한 내용 중 ‘신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말도 다소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물론 신체적 성장이 덜 된 나이에 무리하게 미용수술을 받으면 드물게 뼈가 휘거나 잘못 자라 기형이 유발되고, 더 자라야 할 뼈·눈·코·결합조직 등의 성장이 멈추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나 임상현장에서는 개연성이 낮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은석찬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예전에 비해 아이들의 성장 정도가 달라졌다”며 “요즘 18살, 19살 청소년은 체격이 좋고 성장을 마친 상태여서 사실상 성형수술로 인한 육체적인 부작용은 거의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수술 중 가장 많이 시행되는 눈·코 성형이다. 대개 눈은 15세 이상, 코는 17세 이상일 때 받는 것은 건강문제나 부작용 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게 성형외과 의사들의 견해다. 레이저시력교정수술인 라식은 보통 만 18세 이후에 받아야 한다. 안구성장이 이 때에 멈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눈성형(쌍꺼풀수술)은 얼굴뼈나 안구를 건드리지는 않지만 얼굴골격 성장에 따라 눈(안구)의 사이즈가 달라질 수 있어 의사의 견해를 한번쯤 청취할 필요는 있다. 이와 관련, 은 교수는 “수능을 치르고 난 뒤에는 육체적 성장 여지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의사가 진단해 본 뒤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면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성형을 받으라는 말이 아니다”며 “콤플렉스가 지나쳐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면 수술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은 교수도 실제 중3 학생을 수술한 적이 있다. 눈이 너무 작아 우울감을 느끼던 여학생은 수술 후 자신감을 회복해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있다. 이와 상반되게 코의 경우엔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은 교수의 결론은 딱 어느 나이대의 학생 성형을 무조건적으로 금지할만한 의학적 근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은 일면 학생들에게 긍정적이다. 다만 은 교수는 “학생들은 아직 사회경험도 없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어른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육체적 성장보다 정신적 성숙이 이뤄진 뒤 수술받는 게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친구따라 강남가는’ 형태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 교수는 “의외로 부모님께 비밀로 한 뒤 성형수술을 받으려는 학생이 많다”며 “성형외과학 교과서에서도 남편, 부모님 등께 비밀로 하는 수술은 막아야 한다고 나와있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뒤 해방감, 어른이 된 것같은 막연한 설렘 등은 무분별한 성형수술을 받기에 딱맞는 상황이다. 은 교수는 “분위기에 휩싸여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성형을 받게 되면 재수술을 유발하게 된다”며 “심지어 ‘잘못되면 또 고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만 낭패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은 교수는 “환자에게도 역할이 있다”며 “의사들이 설명해주는 부작용,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제대로 숙지한 뒤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게 환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성년자의 경우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간과하고 무조건 성형만 하면 예뻐질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며 “기본적으로 워너비(wanna be)인 연예인처럼 성형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에게 맞는 성형은 따로 있고 성형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처럼 변하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은 교수는 특히 “무분별한 성형수술에 현혹돼 부모님을 졸라서까지 성형을 받고야 마는 학생들도 적잖이 봐왔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성년자는 꼭 필요한 경우, 어른들과 충분히 상의한 뒤 의사의 정확한 판단을 바탕으로 수술받으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단순히 부작용이 생긴다는 우려에서 ‘무조건 미성년자 성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청소년조차 성형으로 이끄는 외모지상주의 풍토는 그대로인데 이들의 성형을 막으면 외모에 가장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의 자존감은 어떻게 다루느냐는 견해도 있다. 어른들은 ‘청소년시기야말로 가장 예쁘고 빛나는 시절’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말은 현 기성세대들의 순수했던 청소년시절을 회상하는 것일 뿐, 막상 심한 외모콤플렉스를 가진 청소년들은 전혀 납득하지 못한다. 불합리한 판단에 의한 성형은 지양돼야 하지만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불법성형 등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은 교수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인류가 출현한 뒤 이어져 온 당연한 마음”이라며 “이재영 의원이 내놓은 법안은 성형을 통해 외모콤플렉스를 없애는 동시에 자신감을 얻으려 하는 행복추구권과 의사의 진료결정권까지 침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