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반인 폭행으로 체포돼 구설수에 오른 가수 크리스 브라운(24)이 지난달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재활시설에 입소했다. 브라운은 과거부터 최근까지 행동들을 돌아보며 집중력과 통찰력을 기를 목적으로 입소를 택했다.
‘화나는 세상’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드러내는 빈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비단 크리스 브라운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실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을 살해하고, 라면이 제대로 끓지 않았다고 비행기 승무원에게 모욕감을 주고, 술에 취해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묻지마’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헤어지자는 여자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른다. 지난 9월 워싱턴 총기난사범도 9·11테러 뒤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
분노는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렬하게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가슴속에 화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쌓이면 이것이 잠재돼 있다가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이 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폭발한다. 성장과정에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이 있을 경우 분노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분노조절장애(Anger disorder)는 분노를 올바르게 드러내고 숨기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병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과거 한국인에겐 지나친 분노 억압으로 인한 울화병이 많았다. ‘내가 참아야지’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한(恨)’의 민족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지나친 분노 폭발로 인한 사건사고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최석현 경기개발연구원 사회경제센터 연구위원은 지난 4월 ‘분노사회의 진단과 관리 전략’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인들의 문제에 대한 사회 이슈화 방식이 대화보다는 분노 표출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문제해결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분노조절장애로 보기는 어렵다. 급한 성격에 화를 남들보다 더 내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 쾌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성격적 결함’으로 인한 인격장애일 가능성이 더 높다.
전문가들은 평범한 사람들도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분노사회’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처방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지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분노조절장애 등 충동조절장애는 감정을 일으키고 받아들이는 뇌내 중심 부위의 ‘변연계’와 감정을 조절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뇌 앞쪽의 ‘전두엽’ 중 한쪽 혹은 두 부위 간 신호전달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며 “지속적으로 큰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엔 변연계에, 한꺼번에 심한 충격 또는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전두엽에 과부하가 걸려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자기도 모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두엽 기능은 뇌를 다칠 경우 손상되기 쉽다. 가령 뇌중풍(뇌졸중)에 걸리면 뇌혈관이 막히거나 출혈이 일어나 뇌조직이 손상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병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더라도 성격 변화 및 우울증이 초래될 수 있다. 불면증, 식욕부진, 불안, 비관, 짜증, 분노, 감정기복이 동반되기도 한다.
강지인 교수는 “뇌를 다쳐 뇌 앞쪽에서 출혈이 생기면 전두엽이 망가지기 쉽다”며 “이럴 경우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느끼고 생각한 대로 말이 나오고, 화가 나는 대로 행동에 옮기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뇌출혈·뇌경색이 대표적이고 파킨슨병도 이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유전적으로 분노조절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인 ‘세로토닌’은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어떤 유전자는 세로토닌 분비량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 그 결과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거나 급한 성격이 심해지면서 화를 잘 내게 된다.
강 교수는 “평소 온화하던 사람이 갑자기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평소 조금이라도 욱하는 기미가 있거나 조울증을 앓고, 폭식증 및 거식증 등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인 아이나 성인, 알코올중독자 등이 고위험군”이라고 말했다.
화를 잘 내고 걸핏하면 분노해 주위사람들까지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사람은 그냥 방치하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자기가 제일 힘들겠지’하고 내버려뒀다간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평소 분노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을 인정하고 분노가 폭발하기 전 잠시 자리를 이동해 심호흡하며 분노를 가라앉히거나,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런 방법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사람은 전문가를 찾아 상담치료 및 인지치료를 받아야 한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상담을 받으며 분노조절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 근본 원인을 밝히고 심리치료를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담·인지치료는 환자 스스로 자신이 부적절하게 화를 내는 상황에 대해 당시의 생각이나 감정을 인식하도록 한다. 의사는 이때 환자들이 비합리적인 생각을 버리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기존에 화를 냈던 상황에서 새로운 반응을 보이도록 훈련시킨다.
하지만 너무 심한 분노조절을 겪는 사람을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변연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됐다면 이를 가라앉히는 약물을 쓴다. 세로토닌 분비가 부족하면 긍정적인 기분이 들도록 이를 끌어올리는 약물을 복용토록 한다. 혈액검사·뇌파검사·뇌영상진단(MRI) 등을 통해 뇌조절 능력의 균형을 잡는 약물이 처방되기도 한다.
김창윤 교수는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일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돼야 한다고 전제한다”며 “이런 사람들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원하는 것은 화를 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자기주장을 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며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분노를 분출하는 동안 망가진 인간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할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병원 치료 못지 않게 평소 생활습관을 바꿔 분노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까지 병원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식사를 해야 분노조절이 쉬워진다고 말한다. 몸은 생체리듬이 일정해야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뇌의 호르몬 분비와 변연계·전두엽 간 신호전달도 생활이 규칙적일 때 가장 활성화된다. 세 끼를 시간 맞춰 골고루 먹는 습관이 뇌건강에 도움 된다. 강지인 교수는 “생선·견과류 등에 풍부한 오메가3지방산은 불안을 가라앉혀 뇌충동 작용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며 “꾸준한 운동도 에너지를 분산시켜 분노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