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남성화장품 시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해마다 7% 이상 성장해 올해는 2008년(5700억원)의 두 배에 이를 것이라는 게 LG생활건강의 추정자료다. 그 중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남녀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BB크림(비비크림)을 사용한다는 남성 비율은 23%에 달했다.
‘외모가 곧 능력이자 자기관리의 척도’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리면서 남성도 외모관리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추세다. 상공회의소 설문에서 응답자의 63.9%가 이같이 답했다. 남성화장품 시장은 기존 애프터쉐이브, 면도크림, 기초화장품 등에서 요즘 기능성화장품에 색조화장품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BB크림은 한 때 여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각광받던 색조화장품이다. 기능성화장품의 영양적 효과, 파운데이션의 커버력, 자외선차단제 세가지 제품이 합쳐진 ‘올인원’ 화장품의 시초다. 아직까지도 번거로운 베이스메이크업 과정이 싫은 여성은 BB크림을 찾고 있다. 한듯 안한듯한 피부결로 바꿔주는 특징으로 항간에서는 ‘생얼(민낯)화장’의 필수품으로 불릴 정도다.
남성들도 피부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여동생, 누나, 여자친구 등 주위 여성의 BB크림을 발라보기 시작하면서 베이스메이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가 많다. 물론 뷰티 자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직접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고르기도 한다.
처음 남성들이 BB크림을 바르고 돌아다니자 때 ‘남자가 주책없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등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관리 잘 하는 남자’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BB크림 정도야’ 하는 것이다.
남성 스킨케어 브랜드 랩시리즈는 2011년 프리미엄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중 처음으로 남성 전용 BB크림인 ‘BB틴티드 모이스처라이저’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이 브랜드의 연구개발(R&D)부문장인 마이클 인그라시아 박사는 “한국 남성들은 세계 어떤 남성들보다 실험정신이 왕성해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도 쉽게 받아들인다”며 “한국 남성들의 요구를 수용해 BB크림을 중심으로 한 신제품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그라시아 박사는 “인구 규모를 고려했을 때 한국이 랩시리즈의 전 세계 1위 시장이 된 것은 무척 이례적”이라며 “앞서가는 소비자들 덕에 끊임없이 진화된 제품을 내놓게 된 것도과학자로서 무척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랩시리즈뿐만 아니라 다양한 화장품브랜드에서 남성을 타깃으로 한 BB크림 등 색조화장품을 내놓는 추세다. 글로벌 브랜드에서 한국을 뷰티강국으로 보듯 BB크림을 쓰는 남성은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유학생 배 모씨(20)는 사촌누나로부터 대학입학 선물로 BB크림을 선물받아 1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배 씨는 또래 남성처럼 가끔씩 트러블이 올라오는 약한 지성피부다. 평소에 전혀 BB크림은 쓰지 않았지만 처음 써 본 결과 “나쁘지 않다”고 답했다.
배 씨는 “스킨·로션 정도의 기초화장품 정도만 썼었는데 우연찮게 BB크림을 접하게 돼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며 “매일매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면접 등을 앞두고 좋은 이미지를 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패션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김 모씨(24)는 “여초(女超) 학과에 다니다보니 소개팅이 있거나 면접이 잡힌 날에는 친구들이 비비크림을 챙겨줘 발라본 적이 있다”며 “생각보다 주위 반응이 괜찮아 선크림을 사용할 겸해서 자외선차단 기능이 있는 BB크림을 구입해 사용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쉬운 점은 여성용 화장품에 비해 남성용 화장품은 피부톤에 상관 없이 한가지 컬러로만 나오는 게 대부분”이라며 “발림성 등이 좋아도 피부톤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난감해 딱 맞는 제품 한가지만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BB크림을 사용하는 남성은 ‘깨끗한 피부톤’을 얻는 게 목표다. 여성처럼 화장한 티를 낸다기보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부분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여성화장품과 달리 브랜드별로 보통 한가지 색깔의 비비크림만 출시돼 선택에 제한을 받게 된다. 김 씨는 “브랜드 매장별로 돌아보며 내 피부에 맞는 비비크림을 골라야 했다”며 “내 피부톤에 맞지 않는 BB크림을 바르면 들뜨는 현상이 일어나 얼굴과 목의 경계가 심하게 져 동기들이 ‘선보러 가냐’며 놀리곤 했다”고 토로했다.
남성들도 여성처럼 이미지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까지는 막상 방법을 잘 몰라 어색하게 보이거나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BB크림을 바르는 방법에서 세안하는 법까지 전문가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각질 부각되면 피부화장 도루묵, 수분관리에 신경써야
하얗게 들뜬 각질만큼 피부를 망치는 것은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엔 남녀를 불문하고 피부가 건조해져 화장이 들뜨기 쉽다. 건조한 상태에서 피부 메이크업에 들어가면 각질이 부각돼 매끈한 피부는커녕 지저분한 인상만 심어주기 십상이다. 평소 물을 자주 섭취하고 추가로 수분크림을 바르는 등 수분보충에 더 세심할 필요가 있다.
엄혜진 메이크업아티스트는 “피부결이 좋지 못하면 하얀 피부를 가졌다고 해서 동안이 되기는 어렵다”며 “피부탄력과 유·수분 밸런스를 맞춰 촉촉한 피부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BB크림은 특히 파운데이션보다 유분기가 더 많기 때문에 남성은 자칫 피부가 번들거리기 쉽다”며 “그렇기에 기초제품을 무조건 과도하게 바르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제품을 콩알만큼 덜어 꼼꼼히 바른 뒤 피부타입에 맞는 선크림이 포함된 BB크림을 쓰면 된다”며 “중요한 날에만 BB크림을 쓰는 남성이라면 크림을 바르기 전 마스크팩을 15분 정도 올려두면 각질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경계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바르는 스킬 중요, 무조건 하얀 톤은 얼굴만 들떠 낭패
엄혜진 메이크업아티스트는 “비비크림을 콩알 크기정도로 덜어낸 뒤 얼굴 중심, 즉 코·볼 부위를 시작으로 조금씩 바깥방향으로 펴바른다”며 “톡톡 두드리듯이 펴발라 얼굴과 목의 경계가 지지 않도록 하는 게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특히 ‘턱 밑까지 BB크림을 바르지 말 것’을 강조했다. BB크림은 보통 자신의 피부톤보다 살짝 밝기 마련으로, 과도하게 많이 바르게 되면 얼굴이 떠보이고 심하면 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는 “턱 라인까지 세심하게 제품을 바르지 말고 남은 양으로 그라데이션(gradation)하는 느낌으로 연결시키면 자연스러운 얼굴 셰이딩(shading) 효과가 생겨 오히려 얼굴이 더 작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부 트러블 감추려고 시작한 화장, 클렌징 제대로 안하면 트러블만 악화돼
어떤 화장이든 마지막 빠져서는 안 될 단계가 ‘클렌징’이다. 남성은 평소에도 단순 물세안이나 비누세안 정도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BB크림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BB크림은 분명 색조화장품으로 꼼꼼하게 닦아내지 않으면 오히려 모공을 막는 등 피부트러블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피부가 좋아 보이려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보험영업사원 박 모씨(35)도 깔끔한 이미지를 위해 BB크림을 바르기 시작했지만 평소처럼 물세안만 하는 바람에 오히려 트러블이 일어나 고생하고 있다. 클렌징을 소홀히 한 나머지 사춘기에도 잘 나지 않았던 여드름이 생긴 것이다.
박 씨는 “와이프가 클렌징 제품을 권하기도 했지만 번거로워 사용을 안한 탓인지 트러블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엄혜진 메이크업아티스트는 “요즘엔 이중세안을 할 필요 없이 가까운 화장품매장을 찾아가면 BB전용 클렌징폼도 나와있을 정도”라며 “가장 좋은 것은 클렌징오일·크림 등을 이용해 1차로 잔여물을 닦아낸 뒤 클렌징폼·비누 등으로 물세안을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이 때 콧볼 옆까지 꼼꼼하게 닦아내야 노폐물이 모공을 막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규광 세련피부과 원장은 “모공·여드름은 청결한 피부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핵심”이라며 “특히 남성들은 귀찮다는 이유로 선크림이나 BB크림을 바르면서도 물 세안으로 대충하는 경우가 많아 세안습관을 바꾸고 클렌징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