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원더걸스 멤버 선예(본명 민선예)가 ‘홈벌쓰’(Home-Birth)로 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이 출산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캐나다 교포 선교사와 결혼했다. 이후 4월 허니문 베이비로 임신 사실을 알리며 태교에 전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연분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카페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가운데 병원에서 겪는 ‘출산굴욕 3종세트’에 대한 불쾌감으로 첫째를 낳은 뒤 둘째 때 홈벌쓰를 선택하겠다는 산모도 적잖았다.
출산 굴욕 3종세트는 출산에 앞서 감염을 우려해 시행되는 음모제모, 관장,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하는 내진을 일컫는다. 한 온라인설문조사 결과 이 3종세트가 불쾌했다는 산모가 무려 68.7%에 달했다.
특히 선예처럼 캐나다에 사는 주부들은 직 자연출산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나라에 비해 이 제도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이다. 또 ‘미드와이프(mid-wife) 제도’가 있는데 한국으로 따지면 조산사 내지 산파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들은 의사 등 전문직은 아니지만 출산에 대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의사 대신 미드와이프만 불러 출산하는 경우도 적잖다. 물론 의사를 부르면 엄청난 의료비가 지출되기 때문에 경제적 이유로도 미드와이프를 주로 찾게 된다. 산모들은 미드와이프와 함께 출산과정을 준비하며, 준비물 리스트를 짜는 등 출산 전반에 도움을 준다.이들은 출산과정 내내 일종의 인간 진통제 역할을 한다.
정환욱 메디플라워여성의원 원장은 “연예인이니까 특별한 출산을 해보고 싶어서 위험한 가정출산을 하는 게 아니냐, 가정분만은 감염 위험이 높은데 무모한 일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며 “그동안의 임상경험으로 볼 때 가정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산모는 자신이 건강하고,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신감이 충만할 때 가정분만이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선예씨의 경우 아기 아빠가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해서 가정출산 선택이 더 쉬었을 것”이라며 “국내 캐나다 여성 산모와 함께 자택이나 자연출산센터에서 출산을 도운 적이 있는데 캐나다는 병원-의사-조산사-둘라(출산 보조 여성)의 연계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안전한 출산환경이 조성돼 있고, 이유없이 큰 돈 들여 병원서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출산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벌쓰를 진행한 30대 주부는 온라인 카페에서 “홈벌쓰에 필요했던 준비물은 커다란 샤워커튼(침대에 이물질이 묻는 것 방지), 커다란 쿠션, 진통을 버티게 해 준 짐볼, 커다란 이온음료 5펫트병과 미드와이프였다”고 말했다.
보통 제왕절개가 아니면 다 자연분만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자연분만과 자연출산은 다른 개념이다. 이는 출산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분만(分娩)은 영어로 ‘delivery’라고 하고 기본적으로 산모의 몸에서 아이를 나눈다는 의미가 강하다. 당연히 주체는 의사다. 의사가 안전하게 산모의 몸에서 아이를 빼낸다는 의미다. 반면 출산(出産)은 영어로 ‘birth’라고 하고 산모와 남편이 주체가 돼 그들만의 자주적인 출산 준비로 아이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
이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분만대’다. 자연출산의 경우 산모는 자신이 가장 편한 어떤 자세든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분만대에서는 오로지 천장을 보고 눕는 한 가지 자세만 허용된다. 이 자세는 기본적으로 의료진이 아기가 나오는 모습을 잘 보고, 아이를 받을 수 있는 자세로 이 상황에서 회음절개 및 태반처치 등 사전의료행위를 한다. 정환욱 원장은 “분만에서의 주체는 의료진이지만, 자연출산의 주체는 철저히 아기와 엄마”라며 “자연출산 시 아기가 나오는 방법과 시간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과 방법을 존중해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홈벌쓰 등 자연출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전검사 및 사전교육이다. 이 과정에서 둘라(Doula, 출산 보조를 하는 여성)와 협력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진통이 시작되면 둘라나 조산사와 통화하며 진통 상황을 체크하고 될 수 있으면 집에서 오래 있다가 병원을 찾도록 한다. 정 원장은 “다른 어느 곳보다 집이 편안하게 진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며 “진통 시 남편 혹은 둘라가 진통을 경감할 수 있는 마사지나 걷기 방법을 해 줄 수 있도록 미리 교육한다”고 말했다.
때가 돼 병원에 도착하면 영양보급을 위한 정맥주사를 맞지 않고, 관장·제모 등도 하지 않는다. 태동검사 후 내진하며 이후 불필요한 내진은 생략한다. 진통 시 산모가 원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특히 산전검사 단계에서 문제가 없었음에도 진통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의사가 대기한다. 문제가 생기면 주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과 협조해 가까운 상급 의료기관으로 후송한 뒤 의료처치를 받거나 제왕정개술로 분만하게 된다.
아기가 나오는 단계가 되면 회음절개과정은 대부분 생략한다. 아기 머리가 보여도 인위적으로 빼지 않고 진통 흐름에 따라 아기가 스스로 나올 수 있게 기다린다. 아기가 나오면 엄마 뱃속에 올려 엄마와 결속(bonding)시간을 갖도록 한다. 태맥이 사라지기 전에 탯줄을 자르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아빠가 자른다. 자른 직후 아이의 부모는 상의를 탈의하고 살을 대며 아이를 안아 정서적 교감을 높인다.
출산 후 태반이 나오는 후산도 서두르지 않고 진행한다. 태반은 대개 1~2시간 내로 나오지만 하루 이상 걸려서 나올 수도 있다. 될 수 있으면 태반을 뺀다거나 손으로 누르는 등 인위적인 방법은 피한다. 출산 후 아기 체중 등을 측정한 뒤 엄마와 아기에게 이상이 없으면 모자동실(母子同室)하고 대부분 다음날 퇴원한다.
그렇다고 모든 산모들이 자연출산법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신중독증이나 전치태반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경우엔 자연출산이 힘들다. 만성질환 등으로 합병증 우려가 있거나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37주 이전에 아기가 조산하게 되는 경우에는 이 방법을 선택할 수 없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고 둘째를 질식분만하는 브이백(VBAC, Vaginal Birth After Cesarean Section)이나 태아가 거꾸로 들어선 둔위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산전검사를 통해 미리 판별·관리될 수 있는 문제다. 정 원장은 “아기 머리가 너무 크거나 엄마 골반이 작고, 아기가 거꾸로 있는 상황(breech)은 자연출산의 장애요소로 보기 어렵다”며 “출산 시 산모의 몸에서 나오는 릴랙신·옥시토신 등 호르몬은 신체적인 여건이 좋지 못한 산모도 건강한 출산을 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불필요한 개입이 없다면 대부분의 아기는 심박동이 떨어지는 등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일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옥시토신은 출산시 아기를 낳을 때 자궁의 민무늬근을 수축시켜 진통을 유발하고 분만이 쉽게 이뤄지게 하며 젖의 분비를 촉진시켜 수유를 준비하게 하는 호르몬이다. 행복감을 고조시키고 성욕에도 관여한다.
릴랙신은 출산시 골반 인대를 이완시켜 자궁경부가 열리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그는 “노산은 자연출산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다”며 “최근엔 사회적으로 만혼이 흔해 30대 후반의 초산에서도 자연 출산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대부분 자연출산에 성공했다”며 “산모의 물리적인 나이보다 자궁·난소의 나이가 중요하고, 산전검사를 통해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는 산모라면 대부분 자연출산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조언했다.
자연출산의 장점으로는 우선 산모의 신체나 정신적인 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연출산에서는 불필요한 약물 사용이나 회음절개와 같은 시술을 하지 않기 때문에 회복 속도가 빠르다. 무엇보다도 ‘산후풍’이 거의 없다. 산후풍은 현대의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병으로 산전·출산 당시·출산 후 산모의 스트레스로 인한 분비계통이나 혈액순환계통 이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정 원장은 “산모는 진통·출산 시 옥시토신이라는 행복호르몬이 분비돼 엄청난 성취감과 모성애를 갖게 된다”며 “최근 심각하게 대두되는 산후우울증도 자연출산을 한 산모들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기에게도 유익하다는 게 자연출산을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아기는 평화로운 출산을 경험하게 된다. 프랑스의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는 저서 ‘폭력없는 출산’에서 분만실의 소음, 밝은 조명, 성급한 의료행위 등이 아이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자연출산으로 태어나는 아기는 대부분 출산 후 엄마 품에 안겨 자궁 속과 같은 환경을 유지하게 돼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엄마와의 결속이 강해져 이후 양육과정에서 ‘안정애착’(secure attachment)을 쉽게 형성하게 된다. 정 원장은 “부모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연출산처럼 평화로운 출산(gentle birth)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남편과의 관계도 더욱 긍정적으로 변한다. 정 원장은 “우리 병원에서는 남편이 함께하는 출산을 권장하고 산전교육을 남편이 같이 받는다”며 “남편이 출산의 동반자로 아내를 격려해주고, 진통에서 출산까지의 전 과정을 함께하며부부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출생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은 자신의 탄생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감동의 눈믈을 흘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와 함께 아기를 낳았다는 ‘전우애’가 느껴지고 이후 양육 및 육아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건강한 산모는 자연출산을 잘 해낼 수 있지만, 혹시 어려운 점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철저한 산전검사가 뒷받침돼야 한다. 출산 전까지 영양보충, 규칙적인 운동, 호흡·이완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한다. 특히 아직 자연출산이 보편화되지 못한 만큼 주변의 걱정이나 염려가 심할 수 있어 출산 메카니즘을 숙지하고 자연출산 경험이 많은 병원에서 교육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편과의 관계형성이다. 아무리 미술·음악 태교를 많이 한다고 해도 남편과 싸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기에게 해롭고, 자신의 출산도 길고 긴 고통의 시간으로 변한다. 남편과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하는 대화를 하며, 남편도 동반자로서 충분히 아내를 지지하고 아껴줘야 한다.
정 원장은 “한번 자연출산을 결정했다면 흔들림 없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며 “부정적인 주변의 이야기나 생각은 뒤로 하고 무조건 긍정적인 마음을 갖추고 두려움을 극복해야 편안하고 안정된 출산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