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측두엽 언어중추 자극해 학습효율 급감 … 음악 듣고 싶다면 가사 없는 클래식을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습관은 수학 등 고난도학습에 지장을 줄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
‘공부할 때 음악을 듣는 습관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되는가’에 대한 논란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돼왔다. 이는 학생들이 선생님 혹은 부모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 중 하나다. 학습상담 게시판에도 이와 관련된 문의사항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올해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이모 군(18)은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면 잠이 덜 오고 집중도 잘되는 편”이라며 “이런 장점은 무시한 채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 학부모는 인터넷 게시판에 “방에 들어갈 때마다 이어폰을 낀 채 멍하게 있는 딸을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영어듣기를 하는 게 아닌 이상 굳이 공부하면서까지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음악과 학습능률간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많이 이뤄져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연구마다 결과가 상이해 음악이 주는 실제 효과가 어떤지 아직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달 15일 영국의 임상심리학자인 엠마 그레이 박사는 분당 50~80비트(beat)의 팝송이 뇌의 학습능력을 높여 새로운 내용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미러스’(Mirrors) 등 느리고 잔잔한 노래는 과학·인문학 등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과목을 공부할 때 효과적이었다.
또 케이티 페리의 ‘파이어워크’(Firework) 등은 듣는 이를 흥분상태로 만들어 창의력이 필요한 언어·예술 등을 학습하는 데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과 같이 계산 능력이 필요한 과목을 학습할 때에는 분당 60~70비트의 클래식 음악이 효과적이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같은 곡을 감상하면서 수학공부를 학생들은 성적이 평균 12%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레이 박사는 “공부할 때 음악을 들을 경우 듣지 않을 때보다 학습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음악은 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곡을 선택하면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2006년 로셀 폴드렉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엔젤레스 캠퍼스(UCLA) 심리학과 교수팀은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등 산만한 상태에서 지식을 습득할 경우 나중에 기억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폴드렉 교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지식을 인지할 때 두뇌는 인지방법을 바꾼다”며 “이 때 인지하는 지식은 ‘덜 융통적(less flexible)’이기 때문에 특정 상황(음악 청취)에선 지식이 잘 습득된다하더라도 바뀐 상황(시험)에서는 습득한 지식을 기억하기 힘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공부하면서 듣는 음악이 청취 방법, 가사(歌詞)의 존재 여부, 학습 스타일 등 개인차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소희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음악 자체가 집중력을 저하시킨다고는 볼 수 없다”며 “개인마다 다르지만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을 스피커를 통해 배경음악으로 들으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학습능률를 직접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락·팝·가요 등을 들어온 요즘 세대의 경우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 경우 오히려 집중력이 향상되는 사례가 있긴 하다”며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틀면 기억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도 있다는 점이다. 1982년 미국 노스텍사스대 연구팀은 단어를 암기 중인 학생들에게 헨델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결과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한 군이 대조군(음악 없이 학습)보다 기억력과 암기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학습 난이도나 과목에 따라 음악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금명자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습 난이도가 쉽거나 단순 암기인 경우 음악이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반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거나 학습내용이 복잡해질 때에는 집중력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사를 생각하는 등 행위는 집중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가사가 없거나 익숙한 음악을 듣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보다는 이어폰을 꽂는 습관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면 집중이 더욱 잘 된다’라고 느끼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며 “이는 양쪽 귀 바로 위쪽에 언어중추가 있는 측두엽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측두엽과 가까운 귀에 이어폰을 꽂으면 언어중추가 음악소리에 쉽게 자극받게 되고, 학습내용은 기억에 잘 안 남게 된다”고 조언했다.
대뇌 피질은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 등 크게 4개 영역으로 나뉘는데 측두엽은 기억력과 청각을 담당한다. 같은 뇌 영역을 동시에 쓸 경우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분명 고난도학습에 음악듣기가 방해된다는 게 뇌과학자들의 압도적인 견해다.
이어폰을 자주 쓰는 습관은 학습은 물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지난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소음성 난청을 진단받은 10대 환자수는 2006년 306명에서 2010년 394명으로 28% 증가했다. 이 질환은 소음이나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 과정에서 청각세포가 손상돼 발생한다. 귀가 먹먹해지거나 울림 현상이 나타날 때가 많다.
난청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귀를 자주 쉬게 해야 한다. 문석균 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90데시벨(dB) 이상의 소음에 하루 8시간 이상 또는 105데시벨 이상에 하루 1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소음성 난청이 될 수 있다”며 “세계보건기구 유럽위원회는 난청을 줄이기 위해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사용할 때 들리는 최대음량의 60% 이하로 하루 60분 정도만 듣는 60-60법칙을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1m 거리 앞에서 서로 대화하는 소리가 약65데시벨, 지하철 소음이나 오토바이 소리 90데시벨, 나이트클럽이나 스포츠경기장, 공연장에서의 소리는 110데시벨이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길거리에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지하철 소음보다 큰 100데시벨 정도로 볼륨을 높여 듣는 경우가 많아 쉽게 소음성 난청이 될 수 있다.
잣·밤·호두 등 견과류와 브로콜리·시금치 등 녹황색 채소는 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식물이다. 돼지고지나 고등어도 비타민 B1이 풍부해 귀 신경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금 교수는 “가끔 음악을 듣고 싶은데 공부도 해야 할 때가 있다”며 “이런 경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보다는 음악을 30분 정도 들은 후 공부하거나, 반대로 50분 정도 공부한 후 음악을 20분 듣는 등 방법을 쓰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