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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누적감염자 1만명 … 만성질환됐지만 인식은 30년전 ‘그대로’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3-09-09 17:46:45
  • 수정 2013-09-12 17: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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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신고된 국내 HIV/AIDS 환자 953명 … 20~40대가 74% 차지

에이즈(AIDS)는 여전히 ‘현대판 주홍글씨’다. 지난해 11월 질병관리본부가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34.6%가 에이즈(AIDS)라는 말에서 ‘죽음·사망·두려움·불치병’ 등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린다고 답했다.

1981년 첫 번째 에이즈 환자가 미국 의학계에 보고된 이후,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뤽 몽타니에 박사가 HIV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국내서 에이즈 환자가 처음 확인된 것은 1985년이다. 약 30년이란 시간이 흐른 현재 누적 감염자 수는 1만명을 넘어섰다. 10년 전엔 한해에 200명 정도였다면 지난해엔 950명이나 될 정도로 최근 들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4일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2 HIV/AIDS 신고 현황 연보’에서는 지난해 신고된 953명의 환자 중 남성이 864명, 여성이 89명으로 9.7대1의 성비를 보였다. 연령별로는 20대에서 286명(30.0%)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30대가 241명(25.3%)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40대 175명(18.4%)으로 20~40대가 73.7%를 차지했다.

HIV바이러스 감염 후 긴 무증상 잠복기 거쳐 면역체계 깨지면 AIDS로 악화

에이즈 환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고 수치스러운 병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하다. 우선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HIV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게 올바른 개념이다.

HIV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로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를 일으키는 원인병원체다. 초기에는 면역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고 에이즈를 추정할 만한 질환인 주폐포자충폐렴이나 카포시육종 등이 발견되지 않는다.
HIV 감염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양호한 건강상태를 보인다. 감염된 후 2~3주 지나면 심한 감기몸살을 앓는 증상이 보이는 사람도 있다고 보고되지만 이 증상도 곧 잠잠해지며 대개 아무렇지도 않다. 일부 감염자는 이 시기에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 림프절이 커지기도 한다. 원인 모르게 3개월 이상 직경 1㎝이상의 림프절이 여러개 만져지는 경우에는 지속성 전신성 림프절비대증의 가능성이 있다.

한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HIV의 가장 큰 특징은 무증상의 긴 잠복기”라며 “대개는 에이즈로 위중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수년간 아무런 증상도 없이 정상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무증상기 동안에도 HIV바이러스에 의해 면역기능은 계속 감소하며, 제대로 관리되지 못할 경우 타인에게 전염력이 있어 문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HIV 감염 이후 관리가 잘 되지 않거나 모르고 지내는 바람에 면역체계가 손상되면 세균, 바이러스, 진균 등에 의한 감염증, 암 등의 질병이 나타나는데 이런 증상을 에이즈라고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HIV에 감염은 됐지만 뚜렷한 증상이 없는 사람을 ‘HIV 감염인’으로 지칭하고 감염 후 질병이 상당히 진행돼 면역체계가 파괴된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칭한다. 이때부터 각종 감염이나 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에이즈 환자는 건강한 인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던 바이러스, 곰팡이, 원충, 기생충, 세균 등이 면역기능이 떨어진 몸에서 병을 유발해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된다. 에이즈 초기 증상으로는 아구창, 구강 백반, 칸디다질염, 골반 내 감염, 다양한 피부질환을 들 수 있다. 피부질환의 경우 지루성 피부염이 가장 빈번하고, 이밖에 진균(곰팡이)에 의한 감염, 대상포진, 만성 모낭염 등이 흔하게 나타난다. 한 교수는 “이런 증상은 HIV에 감염됐다고 해서 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잠복기를 거친 후 면역체계가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면역체계가 파괴돼 림프구 수가 감소되면서 정상인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바이러스·진균·원충·기생충 등에 의한 폐렴, 뇌염, 위장염, 망막염, 패혈증 등이 나타난다. 또 악성림프종, 카포지 육종과 같은 악성종양이 발생한다. 대개 이런 심각한 에이즈 증상이 나타난 후 약 2∼3년이 지나면 이 증상들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에이즈는 곧 ‘죽음’ 불문율 … 의료기술 발전으로 ‘완치의 길’ 엿보여

실제로 예전에는 에이즈에 걸리면 3~5년 안에 사망하는 환자가 많았다. 에이즈 발견 초반에는 에이즈라 하면 그야말로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에이즈가 발견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만성질환으로 분류될 만큼 놀라운 치료 성과를 이뤄왔다. 1990년대 중반 HIV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이 발견된 이후다. 최근엔 심지어 ‘완치’의 길이 열렸다고 볼 정도로 커다란 발전을 이뤘다.

2011년에 이어 지난 4월 미국에서 두 번째 에이즈 환자가 완치 판정을 받았다. 첫 번째 완치 사례는 에이즈 환자 미국인 티머시 브라운(46)으로 백혈병 수술을 위해 골수줄기세포 이식을 받은 뒤 완치돼 화제를 낳았다.
또 지난 4월에는 출산 전까지 자신이 HIV에 감염된 사실을 몰랐던 미시시피 거주 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여아가 2년 6개월의 조기치료 끝에 생후 ‘기능적 완치(functional cure)’ 판정을 받았다. HIV 표준치료만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이번 미시시피 여아가 최초의 사례다. ‘기능적 완치’란 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HIV 억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상태다. 뿐만 아니라 덴마크 오르후스대 병원은 HIV를 떼어내 없애는 새로운 치료제 임상시험에 들어가 이르면 올해 안으로 개발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만성질환화, 최근엔 ‘항레트로바이러스요법’으로 치료

완치가 아니더라도 질환의 진행을 억제시키는 치료제들이 많이 개발되면서 꾸준한 약 복용 등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한다면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30년 이상 일상생활에 무리 없이 사는 게 가능해졌다. 실제로 국내 HIV 감염인 가운데 7000여명이 생존해 있다. 늘어나는 감염인 수에 비해 사망자 수는 최근 몇 년간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는 것이다.

현재 HIV를 치료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이 일반적이다.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은 HIV 감염인에게 항HIV 약제를 3가지 이상 동시에 투여하는 방식의 치료법이다. 몸속에 있는 HIV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시키고 면역기능을 유지시켜주며 기회감염(면역이 떨어져 생기는 감염)의 예방 및 치료를 도와 환자가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약을 꾸준히 먹으면 바이러스 수치는 물론 전염력도 떨어뜨리는 것이다.

한 교수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많은 단체의 치료 가이드라인은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을 통한 조기치료를 권고한다”며 “HIV 감염 초기에 치료를 시작할 경우 바이러스를 조기에 억제하고 면역기능을 보존시키며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위험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한번 치료를 시작한 환자는 평생 동안 약을 복용해야 하므로 약제 선택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러운 병’ 인식은 그대로 … 동성애 전유물 아니다

하지만 아직 HIV 감염인이나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은 치료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에이즈는 더러운 병, 문란한 병’이란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 환자가 있는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 ‘에이즈 환자는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 등 환자에 대해 과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의 경우 99%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다는 점이 HIV 감염인 또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가장 큰 이유다. 사실 막상 HIV 감염인과 한 번의 성관계로 감염될 확률은 0.1~1% 정도다. 반면 감염된 혈액으로 수혈을 받았을 때 감염될 확률은 90%나 된다. 문제는 실제로 성관계로 인해 감염되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국내 감염자의 99%가 성관계에 의해 감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감염자와의 성관계는 에이즈’라는 연상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확률은 낮지만 감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성관계시에는 반드시 콘돔을 착용하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

HIV 감염인와 함께 생활한다고 해서 무조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도 아니다. HIV바이러스는 감염자의 혈액, 정액, 질 분비액, 타액, 모유, 소변, 눈물 등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실제 감염원으로서 중요한 것은 혈액, 정액, 질 분비액이다. 따라서 HIV는 주로 성행위 및 혈액을 매개로 전파되고, 드물게는 어머니로부터 태아로의 수직 모자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침, 눈물, 땀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 곤충 매개에 의한 감염도 없다. 또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아 함께 생활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와 악수하거나,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거나, 같은 그릇의 음식을 먹거나, 말할 때 침방울이 튀더라도 감염되지 않는다. 한 교수는 “좌변기 사용에 의해서 감염된 경우는 없으며 수영장·목욕탕·학교를 같이 다녀도 전염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는 ‘동성애의 전유물’로 인식돼 더욱 차가운 시선을 받는다. 국내 감염자 대부분이 ‘남성’이며 ‘성관계’를 통한 감염이 대부분이라 남성 동성연애자는 대부분 에이즈환자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동성애보다 이성 간 성관계로 감염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이미 10년 전부터 에이즈는 보통 사람들도 걸릴 수 있는 성병”이라고 지적했다.

동성애자로 예술업에 종사하는 김 모씨(28)는 “성관계에 매우 신중한 편”이라며 “게이가 무조건 에이즈와 관련됐다고 생각하는 시선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에이즈가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처럼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은 꾸준한 검사를 통해 관리하는 게 권장된다. 그는 “처음엔 보건소 검사를 이용했는데, 기간도 오래 걸리고 어쩐지 시선이 불편해 일반 병원으로 옮겼다”며 “하지만 일반 병원에서도 ‘HIV 검사를 받으러 왔다’는 말을 하면 안내 데스크에서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결과가 천천히 나오는 보건소보다 구강 점막을 이용한 검사 방법을 이용해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는 병원을 선호한다”며 “비용을 지불하고 검사를 해서 몸관리를 하는데 왜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픈 몸보다 주위 시선이 두려워 … 건강 이상 없어도 사회적 시선에 좌절

HIV 감염인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몸이 아픈 것 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두렵다”는 글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인연을 끊어버리거나,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는 사연도 어렵잖게 목격된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에게 수치스럽기도 하지만 ‘에이즈 환자’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씌우고 싶지 않았다는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양성 판정’ 직후 그들이 느낀 것은 “죽어버릴까”였다. HIV 감염 후 ‘감염 사실이 알려질까봐 아파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넘친다.

단 한 번의 실수로, 혹은 운이 나빠서 평생을 편견과 차별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면 너무나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제25회 세계 에이즈의 날의 주제는 ‘Getting to Zero’로 차별 제로, 감염 제로, 사망 제로를 주장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의 슬로건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에이즈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

HIV감염 예방 수칙
- 성생활 시 남성은 콘돔을, 여성은 질내 살정제(spermicide)를 사용한다.
- 건전한 성생활을 영위하며 제3자, 잘 모르는 사람과의 성생활은 신중히 한다.
- 불필요한 수혈, 빈번한 정맥 주사를 피한다.

HIV 감염 고위험군
- 성생활이 자유롭고 활발한 사람
- 성생활 파트너가 다수인 사람
-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
- 성생활 시 항문을 이용하는 사람
- 고위험군의 사람과 성생활하는 사람
- 마약 등 정맥주사를 자주 맞는 사람
- 빈번히 수혈을 받는 사람
- 성병이 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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