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가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섭취하면 오히려 폐암 발생이 증가할 수 있어 합성한 비타민 보충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웬만한 사람은 종합비타민제 하나쯤은 챙겨먹고, 가까운 병원에서도 ‘비타민주사’나 ‘마늘주사’ 같은 원기회복용 주사를 맞으라며 환자에게 들이댄다. 비타민 만능주의에 비타민은 의약품은 물론 식품이나 시술, 심지어 사료에도 첨가되며 홍수를 이루고 있다.
요즘엔 비타민의 미용적 효능에 주목해 미백·항산화효과를 노리는 ‘비욘세주사(세계적인 흑인 가수 비욘세가 정기적으로 맞아 미백효과를 봤다는데서 붙여진 이름)’나 ‘신데렐라주사’가 인기다.
일명 ‘백옥주사’로 불리는 비욘세 주사는 피부 속 멜라닌색소를 만드는 타이로시나제 활성을 억제하는 ‘글루타치온(Glutathione)’을 정맥에 주사해 밝고 환한 피부를 만들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신데렐라주사는 ‘리포아란(알파리포익산,alpha lipoic acid·치옥트산,Thioctic acid)’과 비타민B군 복합제를 함께 주사하는 요법으로 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대사에 관여한다. 치옥트산은 본래 당뇨병 합병증으로 인한 말초신경염을 완화하는 약으로 쓰여왔으나 일부 의사들은 지방분해효과도 있다며 미용주사로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부터인가 비타민이 만병통치약이 되버렸고 이를 과신한 나머지 비타민 보조제 등을 꾸준히 복용하는 사람은 자신이 건강관리를 잘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 박사는 1969년 몸에 정상적으로 존재하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질을 이용하면 누구나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물질인 비타민C로서 감기도 예방하고 암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다양한 연구에 의해 그의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영향력은 대단했다.
국내서 비타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그러던 2000년 12월께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이왕재 서울대 의대 교수(해부학교실)는 비타민C의 효능을 언급했다.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교수가 발행인으로 있는 ‘인간과 생명’ 사무실은 전화문의 폭주로 아수라장이 됐고, 며칠 새 우리나라에서 팔고 있는 비타민C가 모두 동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고혈압 환자는 혈압약을 비타민C로 바꿔달라고 말할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비타민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버렸다. 요즘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비타민은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고, 피부미용에도 탁월하며, 암까지 예방한다고 철석 같이 믿는 사람이 많다. 장수건강을 위해 비타민을 불로초인 양 섭취하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다. 비타민 회사도 비타민C에 국한되지 않고 A,B,D,E 등 다양한 비타민의 효능을 부각시키면서 시장을 넓혀가는 양상이다.
최근 들어 이런 비타민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연구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고용량의 비타민C를 매일 꾸준히 섭취하면 쉽게 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암도 피할 수 있다는 폴링 박사의 메가비타민 요법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유행하는 ‘비타민 메가요법’ 괜찮을까?
198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이름을 알린 ‘비타민 고용량요법’(메가비타민 요법)은 비타민C의 경우 하루 섭취권장량보다 100배에서 200배 이상 많은 양을 주사로 혈관에 직접 투여하거나 섭취하는 방식이다.
이왕재 교수는 이같은 메가요법으로 비타민C 6000㎎이상을 섭취할 것을 권한다. 이를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다량의 비타민C가 혈관을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암을 예방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진행할 때 고용량 비타민C 주사를 보조치료법으로 사용한다.
이들은 적정량을 훨씬 초과해 고용량의 비타민C를 섭취하거나 주사하는 이유로 ‘비타민C를 받아들이는 양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7월 종합편성 케이블방송인 채널A의 ‘이영돈PD 논리로 풀다’에서는 고용량 비타민C 치료를 받은 뒤부터 발톱이 다시 자라고 벗겨진 피부가 재생되는 등 효과를 보고 있다는 사람들이 출연했다. 이들은 초반에 설사나 가벼운 복통 등 부작용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부작용은 사라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국내 비타민C 섭취량, 남성 119㎎·여성 108㎎으로 권고량보다 높아 하지만 이런 고용량 비타민요법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있다. 비타민C의 경우 하루 권장섭취량(단위 ㎎)은 세계보건기구 45, 미국 60~95, EU 80, 영국 40, 우리나라 100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비타민C 섭취량은 기준치를 웃도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한국인 섭취량은 남자 119, 여자 108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국민의 섭취량은 비타민 A, B1(티아민), B2(리보플라빈), B3(나이아신), C의 경우 영양기준보다 높았다. 오히려 칼슘섭취가 부족하고 비타민D 혈중농도가 낮았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암정보교육과장(가정의학과 의학박사)은 이에 “칼슘의 경우 보충제 섭취는 심근경색 위험성을 높이기 때문에 우유, 멸치 등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며 “비타민D(영양권장량 없고 혈액검사로 수치를 알아냄)도 햇볕을 20분 정도 쬐면 되기 때문에 따로 보충제로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명 과장은 비타민의 과도한 섭취는 자제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항산화효과나 피로회복, 암 예방을 위해 먹는 비타민C를 과도히 섭취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비타민 주사를 맞고 피로가 풀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생리식염수만 맞아도 똑같은 반응을 보일 정도로 비타민 주사요법엔 강한 플라시보(위약효과)가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비타민보충제, 암 예방 위해 섭취하라는 권고 찾아보기 힘들어
암 예방에 비타민C가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수십년 전부터 암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려면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으라는 연구에서 비롯됐다. 이들 음식에 많이 포함된 게 비타민C이다보니 이 물질이 암 예방에 효험이 있는 게 아닐까 추정하게 됐다. 하지만 20년 이상 임상시험해 온 결과 합성비타민을 섭취한다고 해서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암 예방을 위해 비타민C를 섭취하라는 권고는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금해야 한다는 사항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세계암연구기금·미국암연구협회(WCRF·AICR)의 암 예방 10가지 권고안 중 8번째 항목으로 ‘암 예방 목적으로 보충제를 사용하지 말 것’을 들고 있다.
미국질병예방서비스위원회(USPSTF)는 종합비타민제나 항산화보충제는 암이나 심혈관질환 예방관 관련해 근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암협회에서도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가 영양제(비타민, 항산화보충제 등)를 복용하면 약물 상호작용에 따른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항암치료도 방해할 수 있어 치료 중 복용을 피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명 과장은 “2007년 미국의학협회지에서 발췌한 47편의 질적 수준이 높은 임상시험 논문을 종합한 결과 비타민 항산화보충제 복용한 사람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히려 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예방 차원에서 비타민 항산화보충제를 먹은 그룹이 사망률이 더 높았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흡연자, ‘베타카로틴’ 보충제 섭취하면 오히려 폐암 발생 높아져
흡연자는 체내에서 비타민A로 바뀌는 ‘베타카로틴(β-carotene)’ 보충제를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명 과장은 폐암을 예방하는데 베타카로틴을 음식으로 섭취하면 예방되지만 이를 종합비타민제 등 보충제의 형태로 섭취하면 폐암발생이 오히려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1994년 핀란드에서 남성 흡연자 약 2만9000명을 대상으로 베타카로틴 보충제와 위약을 각각 동일한 수의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예상과 달리 베타카로틴 보충제 복용군에서 폐암 발생이 약 18% 높았다. 비슷하게 1996년에는 미국인 약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유사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베타카로틴 보충제 투여군에서 폐암 발생이 약 28% 높아 연구가 조기 종료됐다.
명 과장은 “이들 두 건의 대규모 임상시험결과를 근거로 미국 복지부에서는 흡연자가 과일과 채소가 아닌 보충제의 형태로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복용하면 폐암 발생의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절대 복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이런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의사도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음식, 이를테면 당근 시금치 등을 섭취하면 폐암이 줄어드는데 이들 연구에서는 왜 반대의 결과가 나왔는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음식 형태로 베타카로틴을 섭취하면 다른 비타민이나 항산화물질이 함께 작용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 이를 보충제 형태로 단독 섭취하면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할 뿐이다.
비타민C, 하루 1000㎎이상 복용하면 위장장애·결석·용혈현상 등 부작용
비타민C를 과도하게 섭취하면 결석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한다. 경북 포항시에 거주하는 정 모씨(54)는 규칙적인 운동과 절제된 식단 등 평소 건강관리에 철저하다. 그는 비타민C 용량을 늘려 1년 가량 복용하다 지난해부터 복통을 겪기 시작했다. 단순히 비타민C 때문에 속이 쓰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며칠 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병원을 찾은 정 씨는 요로결석이란 진단을 받았다.
지난 2월 스웨덴 캐롤린스카연구소 로라 토마스 박사는 비타민C 보충제를 고용량 복용하는 남성은 신장결석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45~79세의 비타민C 보충제 섭취 남성 907명과 비섭취 남성 2만2000명을 대상으로 11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비타민C 보충제군은 3.4%에서 요로결석이 발병했으나 비섭취군은 1.8%에 그쳤다.
명 과장은 “보통 비타민C 보충제를 200~300㎎ 먹는 경우 혈중농도가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변으로 잉여분이 빠져나가지만 1000㎎ 이상 먹게 되면 3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속이 쓰리는 위장장애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삼투압이 높아지면서 설사나 복통도 잦아진다. 또 아스코르빈산이 몸에서 대사되면 옥살산(Oxalate, 한자명 蓚酸) 수치가 증가해 콩팥에 축적돼 종국엔 결석이 생길 수 있다. 적혈구가 깨지는 용혈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의료인, 일부 연구결과에 의존말고 표준권고안대로 식사 통한 섭취 권유해야
명 과장은 “종합비타민제가 음식에 들어 있는 천연비타민을 대체할 정도의 효능이 있다면 강력히 권유할 것”이라며 “하지만 최근 7년 전부터 발표된 임상시험을 종합한 연구결과는 예방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 권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비타민요법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결과 중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동물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아무리 동물에서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명 과장은 “사람에서 비타민이 반복적으로 긍정적인 효능을 입증해야 하고 부작용도 없어야 하지만 아직 그런 부분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비타민만 권하면 사망률만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 환자는 명 과장에게 ‘암 예방을 위해 주치의의 권유로 비타민보충제를 처방받아 6개월째 먹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명 과장은 “일부 의대 교수와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학문적 영역에서 연구하고 논쟁할 내용을 놓고 혹세무민하지 않길 바란다”며 “반복적인 임상시험 결과를 통해 비타민C 고용량요법의 효능이 입증되면 그때 국민들에게 권장해야 할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양심적인 의사라면 쉽지 않지만 표준권고안대로 다양한 음식을 통해 섭취할 것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