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그룹사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는 한 방송에 출연해 자폐아동을 키우는 가정에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 그는 자폐증을 앓는 아들을 키우며 겪은 어려움을 고백했다. 김 씨는 “부모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잘하는 부분이 있으면 보통 ‘서번트증후군(Savant Syndrom)’을 생각한다”며 “하지만 그런 것은 특별한 경우일 뿐 대부분 힘든 생활을 한다”고 강조했다.
서번트증후군이란 자폐장애(자폐 범주성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s)나 정신지체와 같은 뇌기능 손상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수학·암기·음악·미술 등 특정 영역에서 천재성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서번트증후군은 자폐장애의 10%, 뇌손상환자 혹은 지적장애인 2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서번트(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 본래 학자를 의미함)는 전세계 약 100명 정도로 굉장히 소수에서만 나타난다.
영화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 최근 방영되는 KBS 월화드라마 ‘굿닥터’의 주원 등이 서번트 역할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자폐아 아이들의 부모는 한줄기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적은 숫자의 서번트 중 한 명이 내 아이가 아닐까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의 부족함을 걱정하며 ‘내가 없어도 이 아이를 지켜줄 사람이 있을까’, ‘한가지 재능이 있으면 혼자 살아가는 게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다 보니 아이에게 다소 강압적으로 ‘재능교육’을 시도하는 부모도 있다. 박가림 명도학교(특수학교) 교사는 “어릴 때 아이의 재능을 찾고 키워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도가 지나친 부모님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지나친 걱정이 앞서 아이에게 한가지를 계속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이를 지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서번트증후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자폐장애를 가진 경우 사회적 능력 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점이다. 자폐장애 전문가인 김영신 미국 예일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일반인은 재능을 갖고 있으면 이를 살려 무언가를 성취해 내지만, 자폐장애를 가진 이들은 능력이 있어도 목표를 이루기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라며 “능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조력자의 도움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자폐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엄마 중에는 “그냥 뒀는데도 한글을 혼자 깨우친 것 같다”, “TV에 나오는 음악을 듣고 곧잘 따라 부르는데 절대음감을 가진 것 같다”며 자녀를 천재 혹은 영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하지만 이는 특정한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는 즉,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에 신경을 꺼버리는’ 자폐장애의 특징 중 하나로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김 교수는 “예일대연구소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 탑승하려는 사람들의 생일을 물어보며 이를 말해주지 않으면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하게 하는 아이가 있다”며 “이 아이는 생일을 듣고 ‘그 날은 무슨 요일’이라고 말하는 등 날짜 등 기계적 계산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서번트가 아니다. 서번트는 소위 천재적일 정도로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야 한다. 김 교수는 “만약 부모님이 보기에 아이가 어떤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것 같다고 느껴지면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의뢰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가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고 또 잘 할 경우 취미동아리에 들도록 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다”며 “한 아이의 경우 수학경시부에 들어 경시대회를 1위를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능력을 전문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부분에만 치우쳐 친구들과 즐겁게 놀기, 상호작용, 의사소통 등 사회성 기르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럴 경우 아이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자폐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잘 하는 것을 살려주는 것에도 신경써야 하지만 부족한 능력을 키워주는 게 더욱 강조된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하루종일 암기만 한다든지, 지하철 노선표만 보고 있다든지 하는 행동은 강박성을 견고히 하기 때문에 완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정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고 해서 모두 서번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재능을 잘 살려주면 장애인이라고 해도 삶의 질이 바뀔 수 있다.
어떤 자폐아든 잘 교육하면 일반인만큼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다. 때문에 의미 없이 그 일을 하게 만들기보다는 자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관건이다.
김 교수는 “자폐장애인은 재능 훈련을 사회성 습득 교육과 어떻게 결합시켜 주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며 자폐장애는 조기에 발견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사회인력으로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연구가 활발한 분야 중 하나”라며 “한국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발달장애인은 18만2800명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 16만7000명, 자폐장애인이 1만5800명이다. 전체 장애인 252만 명 가운데 7.3%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