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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내 아이가 아니라고?’ 유전자검사의 오해와 진실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3-07-23 00:04:11
  • 수정 2013-07-26 14: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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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NA 지문감식 정확도 99.9% … 검사대상자 동의서 필요, 친자확인 목적 태아 유전자검사는 불법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소해 곤욕을 치렀던 이만의 전(前) 환경부 장관

출생의 비밀은 이제 듣기만 해도 지겨울 정도로 국내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쓰이고 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친자확인을 위해 유전자검사(감식)를 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또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 정치인 등이 친자확인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극이 아닌 현실에서도 성에 대한 개방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친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검사를 의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2년 친자확인 소송 건수는 5050건으로 10년 전인 2002년 2624건에 비해 배 가까이 증가했다.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유전자검사도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검사 업체 대표를 맡고 있는 김 모씨는 방송에서 “월평균 500건, 연간 3만건의 친자확인 의뢰가 들어오며 이중 30%는 ‘남의 자식’인 것으로 밝혀진다”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15개 STR유전자 분석해 모두 일치하면 친자확인

1991년 국내에 친자확인 유전자검사를 처음 도입한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친자확인 유전자검사의 경우 1990년대 초반에는 주로 재산상속과 관련된 게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배우자의 외도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실시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유전자검사는 친자확인뿐만 아니라 범죄수사, 암조기진단에도 널리 사용된다. 예컨대 범죄 용의자를 검거하거나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때, 돌연변이 암 유전자를 발견할 때 활용된다. 애완견을 찾거나 한우육을 판별할 때에도 활용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각각 23개 염색체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총 46개 염색체를 갖고 태어난다. 이 때문에 자식의 유전자(DNA)의 50%는 어머니(친모)와 일치하고 나머지 50%는 아버지(친부)와 일치해야 정상이다.
친자확인 유전자검사는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부모와 자식이 갖고 있는 유전정보를 비교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의 유전자를 추출한 뒤 이를 10만~1억배로 증폭시켜 부모나 형제의 염색체와 비교함으로써 일치 여부를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혈액, 모근이 붙어있는 머리카락, 구강상피세포, 타액, 혈흔, 귀이개 및 칫솔에 묻은 세포 등이 검사체로 사용된다. 보통 15개 이상의 유전자를 분석해 모두 일치(Inclusion)하면 친자 관계, 3개 이상 불일치(Exclusion)하면 친자가 아닌 관계로 판단한다. 만약 1~2개의 불일치가 발견된다면 Y STR, X STR, 미토콘드리아DNA(mtDNA) 등을 대상으로 통해 추가 검사를 실시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DNA 지문감식, 정확도 99.9% 달해

유전자검사는 신체 세포조직의 일부에서 특정 DNA(디옥시리보핵산)을 분리한 후 이를 분석해 동일인이나 친자 여부를 판단하는 첨단기법이다. 최근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DNA 지문감식(DNA fingerprinting)’으로 정확도가 99.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레스터대의 알렉 제프리(Alec Jeffrei) 유전학 교수는 DNA상 특정 부위가 개인마다 고유의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손가락에 있는 지문과 같다는 의미로 DNA지문이라고 명명했다.
DNA 지문감식의 대표적 방법으로는 ‘연쇄염기서열반복(Variable Number of Tandem Repeat, VNTR)’과 ‘단기염기서열반복(Short of Tandem Repeat, STR)’ 등이 있다. 이는 염색체 속의 DNA 염기서열이 일정한 반복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STR은 2~6개의 짧은 염기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VNTR은 9~80개의 염기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차이 때문에 증폭된 DNA 단편 길이는 달라지게 되고 이를 이용해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DNA지문법은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다. 1995년 캐리 멀리스(Kary Mullis)가 개발한 이 방법은 DNA의 특정 부위를 분리 및 추출해 대량으로 증폭시킨 후 증폭된 DNA를 크기별로 분석함으로써 유전자의 일치 여부를 가려낸다. 감수성과 특이성이 가장 높은 DNA분석법 중 하나로 효소를 이용, DNA분자의 선택된 부분을 시험관 내에서 수백만배 이상 증폭시킨 후 그 DNA산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해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드라마처럼 배우자 머리카락 몰래 뽑아 검사 의뢰하면 불법

친자확인 검사는 이르면 1~2일, 늦으면 일주일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비교 대상인 부모가 죽고 없을 경우에는 조부모, 삼촌, 이모 등 친척들의 DNA를 통해 부계혈통 혹은 모계혈통을 분석할 수 있다.
드라마와 다른 점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때에는 대상자의 검사동의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자고 있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몰래 뽑아간다든지, 칫솔통에 꽂혀있는 칫솔을 몰래 훔치는 것은 불법이라는 의미다. 이를 어긴 검사기관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많은 민간업체에서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게 아닌 개인의 의문을 풀기 위한 검사의 경우 대상자의 신분 확인이나 동의서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에 100% 완벽한 게 없듯이 유전자검사도 친자가 아닌데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등 잘못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검사의 정확도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친자확인 유전자검사의 경우 법에 명시된 절차를 거쳐 검사를 진행하면 오류가 날 확률이 거의 없으며 친자가 아닌데 유전자 정보가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수백억분의 일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인 김병수 박사는 “2005년 생명윤리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정확한 기준과 절차가 미비해 검사의 정확도가 다소 떨어졌으나 최근에는 이같은 문제가 해결됐다”며 “친자확인 검사는 학부생이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며 논란이 많은 다른 유전자 검사와 달리 정확하다”고 말했다.
황적준 고려대 법의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식, 세 사람이 함께 검사를 받는 경우엔 확률 계산이 간단하다”며 “그러나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와 아이의 경우처럼 비교 분석대상이 2인만 있을 때에는 검사 대상 유전자 수를 늘려야 정확도가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민간 유전자검사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렴한 시약을 쓰거나 대상자의 검체를 몰래 채취하면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직원이 직접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이 가장 정확하다”고 덧붙였다.

태아의 유전자검사는 불법, 해외업체 이용은 위험부담 커

현재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신고된 유전자 검사기관은 약 190개로 늘었으며, 10년전 80~100만원 정도이던 검사 비용은 20만원 수준으로 저렴해졌다. 이는 친자확인 검사 건수가 급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또 성개방 풍조로 혼전 성관계를 당연하게 여기는 젊은층이 많아짐에 따라 결혼 전 임신한 태아의 친자확인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태아의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가 불법이기 때문에 보통 해외업체에 의뢰할 때가 많다.
해외업체에 의뢰하면 검사비용은 200만원 정도로 국내보다 10배 정도 비싸다. 더욱 큰 문제는 신뢰도나 안전성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 업체가 홍보하고 있는 유전자검사법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융모막검사, 산모혈액검사법 등이다. 하지만 융모막검사의 경우 산모에게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융모막검사는 임신 초기인 9∼12주에 이뤄지기 때문에 출혈 및 염증의 발생 가능성이 존재하며 심한 경우 아이를 유산할 수 있다”며 “이 검사는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유전질환 및 기형아를 진단할 때에만 한정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에 의뢰해 실시한 ‘2012년도 유전자검사 기관별 검사 정확도 평가’ 결과 117개의 유전자 검사기관 중 14.5%가 친자확인 검사의 신뢰도가 의심스럽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검사 능력 자체가 현저히 떨어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하는 C등급을 받은 검사기관이 7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원이 친자 확인을 의뢰할 경우 B·C등급 기관에는 검사를 맡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유전자검사를 의뢰할 때에는 해당 기관이 A등급을 받았는지 복지부 홈페이지(www.mw.go.kr)나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 홈페이지(www.kigte.or.kr)에서 미리 확인해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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