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은 회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은 계절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회 신선도가 떨어져 식중독에 걸리기 쉽다’는 말은 통계적인 근거가 부족한 속설로 간주되고 있으나 여름철 회를 먹는 것은 여전히 꺼림직한 게 사실이다.
올해는 특히 비브리오패혈증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며 해산물을 날로 먹는 것은 자칫 몰상식한 행동으로 손가락질 받기 쉽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5일 더운 기온 탓에 일부 바닷물에서 비브리오균(Vibrio vulnificus)이 검출됐다며 어패류 취급 및 섭취에 주의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바닷물에 존재하는 비브리오패혈증균은 ‘그람 음성 호염성세균’(그람염색이 되지 않는 세균의 분류군, 장내 병원성 세균 등 포함)으로 해수 온도가 20~37℃에서 증식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여름철인 8~9월에 발생률이 가장 높다. 해수온도가 18조 이상으로 상승하고 염도가 높아지는 6월부터 증식 밀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주로 하구·갯벌·바다에 서식하는 어패류에 존재하며 전세계적으로 온대·아열대·열대지방 해수에서 검출된다. 통계적으로 국내에서는 여름철에 해수온도가 높고 갯벌이 많은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브리오균에 오염된 해산물을 날로 먹거나 피부에 난 상처가 오염된 바닷물이 닿으면 감염될 수 있다. 음식 섭취로 인한 감염은 28시간, 피부를 통한 감염은 12시간의 잠복기를 거친 후에 발열·오한·혈압저하·복통·구토·설사·피부부종·쇼크 등 증상이 나타난다.
비브리오 감염으로 인한 피부병변은 보통 발병 후 36시간 이내에 발생하고 초기에는 피부에 붉은색 병변이 보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으면서 통증이 동반된다. 홍반 부위가 확산되며 혈성수포가 생기고 괴사되면 혈압이 떨어져 여러 장기의 기능이 저하돼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건강한 사람은 잘 걸리지 않지만 만성 간질환 환자,알코올중독자, 당뇨병·신부전·폐결핵 등에 걸린 만성질환자, 혈청의 철분이 증가하는 혈액질환, 암환자나 위절제술을 받은 환자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발병하기 쉽다. 이들은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리게 되면 치사율이 40~60%에 달하므로 바닷가를 드나들거나 익히지 않은 어패류를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 환자 중 대부분은 만성 간질환 환자와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40대 이상의 남성 환자임을 유념해야 한다. 매년 10여명의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여름철 어패류(생선회, 굴, 낙지 등)를 날로 먹는 것을 삼가는 게 좋다. 하지만 어민들은 “비브리오패혈증에 대한 공포심이 지나치게 조장된 측면이 있다”며 “실제로는 상처 입은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지 않거나, 건강한 사람이라면 패혈증으로 중증 감염에 빠지거나 사망할 위험은 극히 낮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김안나 을지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대전)는 “어패류를 손질하거나 낚시 도중 고기에 찔리고 다친 상처 부위에 비브리오균에 오염된 바닷물이 들어가 병을 유발할 수 있다”며 “잠복기가 짧고 병의 진행이 빨라 조기진단과 치료가 생존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최성호 중앙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비브리오패혈증균에 걸리면 감기·몸살과 함께 다리통증이 나타나게 되며, 병이 진행되면서 하지조직이 감염돼 패혈증으로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다”며 “여름철에는 해산물과 조개류를 잘 익혀먹고, 피부에 난 상처가 아물 때까지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방을 위해서는 어패류를 영하 5도 이하로 저온 보관한다. 어패류를 구입하자마자 신속히 냉장보관하는 게 좋으며 조리시에는 수돗물로 2~3회 충분히 세척한다. 횟감용 칼과 도마는 구분해서 사용토록 한다. 조리 후 조리기구를 깨끗이 세척하고 열탕 처리하면 세균감염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어패류 균체·균독은 56도 이상 열을 가할 때 파괴되므로 끓이거나 구워 먹는 게 좋다. 피부에 상처가 난 상태로 바닷물이나 갯벌에 들어가면 패혈증균에 감염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고위험군 환자는 △6~9월 사이 어패류를 날 것으로 먹지 말아야 하고 △강 하구나 바다에서 낚시나 수영을 자제하며 △만약 어패류를 생식하거나 바닷물 노출된 후 복통이나 발열이 동반되면 즉시 병원을 찾아 진단받아야 한다.
치료는 발병 초기에 적극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하고, 괴사된 조직을 수술로 제거한다.
이런 가운데 요즘 참치전문점들은 “참치회는 덥고 습한 여름철에도 비브리오패혈증을 걱정할 필요없이 먹어도 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46)는 “참치는 영하 40~50도의 급속냉동 상태로 공급되기 때문에 콜레라, 비브리오패혈증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브리오균은 영하 5도 이하 냉장 상태나, 60도 이상 열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참치회는 먹어도 비브리오균에 절대 감염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운재호 식품의약품안전처 농수산물안전과 사무관은 “살아있는 활어를 급속냉동하는 경우 균의 서식환경이 급변해 개체 수가 대폭 줄어들고 감염위험도 낮아지는 게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참치회가 비브리오패혈증으로부터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참치전문점은 참치만 취급하는 게 아니고 다른 해산물도 조리하기 때문에, 칼·도마 등 조리기구를 통해 균이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식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혹은 정말 회를 먹고 싶어서 횟집이나 참치전문점을 찾는 경우에는 생강을 같이 먹으면 비브리오균을 비롯한 세균감염 예방에 효과적이다. 생강의 매운 맛을 내는 진저론(zingerone)·쇼가올(shogaol) 성분이 매운 향기를 내는 정유(精油)성분과 결합해 비브리오균, 티푸스균, 콜레라균 등에 대한 강력한 살균 및 항균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매실즙, 생마늘, 고추냉이(와사비) 등도 항균작용으로 회를 먹을 때 우려되는 감염위험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