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호한 증상으로 진단 늦어져 병세 키워 … 대한피부과학회 ‘대상포진 제로 캠페인’ 시작
포토그래퍼 최 씨(29)는 최근 스튜디오를 확장하면서 갑자기 늘어난 업무로 몸살 기운이 느껴져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왼쪽 등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단순한 근육통으로 여기고 놔뒀더니 통증은 잠자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졌고, 등에는 띠 모양의 오톨도톨한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병원을 다시 찾으니 ‘대상포진(帶狀疱疹)’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에 따른 면역력 약화로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대상포진 환자가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8년 41만6216명이었던 환자수는 지난해 57만7157명으로 4년 새 약 40%나 증가했다.
대상포진이란 수두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가 소아기에 수두를 일으킨 후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주로 면역력이 저하된 경우에 나타난다. 이름 그대로 ‘띠 모양의 발진’이라는 뜻으로 신체 한쪽에 발진과 수포가 생기는 게 특징이다. 수두에 걸린 적이 있거나 수두 예방접종을 한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데 보통 50대 이상 환자의 비중이 커 대표적인 노인성질환으로 여겨진다.
대상포진은 증상이 다양해 빠른 진단이 어렵다보니 환자들이 뜻밖으로 이런 저런 고생을 겪게 된다. 열이 난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전신쇠약감·근육통 등 몸살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이도 있다. 최 씨처럼 단순 몸살로 여겼다가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질환을 확진할 수 있는 증상으로는 발진이 몸의 한쪽에만 발생하고, 발진이 척추를 중심으로 띠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들 수 있다. 만약 몸살기가 느껴지고 피부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피부과를 찾아야 한다.
대상포진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대한피부과학회가 대상포진 환자의 통증에 관해 조사한 결과 환자 중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통증을 느끼는 사람은 56.7%에 달했다. 또 통증과 합병증으로 입원치료까지 받은 환자는 1368명으로 전체의 약 7%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년간 전국 20개 대학병원에 내원한 대상포진 환자 1만988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박영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피부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라며 “피부 병변 발생 72시간 이내에 치료를 시작하면 치료 경과를 단축시키고, 합병증 발생 빈도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장기간 대상포진을 앓는 환자들은 수면장애, 피로, 우울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대상포진 치료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통증억제, 바이러스 확산과 세균감염 억제, 합병증 예방 등을 목표로 한다.
대상포진은 완치될 수 있는 질병이지만 2차적 합병증의 우려가 있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대상포진은 피부의 어느 곳에나 침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서운 질환이다. 침범하는 피부 분절에 따라 눈, 귀, 안면, 배뇨중추 등에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얼굴이나 눈에서 시작된 대상포진은 시력과 청력에도 영향을 준다. 홍채가 손상될 경우 영구적 실명의 우려도 있다. 항문 주위에 생긴 물집은 대·소변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후유증도 유발한다. 대표적인 증상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전체 환자의 10%선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피부, 감각기관, 신경 전반에서 통증을 유발한다. 조사에 참여한 환자의 경우 90.9%가 이를 겪었을 정도로 심각하다. 또 각결막염 등으로 인한 안구손상, 청각이상, 어지러움증, 대소변이상, 안면마비 등의 후유증이 있다.
대상포진은 흔히 노인성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젊은층에서도 많이 발병하는 추세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40대 이하 환자 수는 2007년 11만2304명에서 지난해 6월 13만4594명으로 늘어났다. 계영철 고려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젊은이들은 과도한 업무나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고 생활패턴이 불규칙해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가 늘어나면서 대상포진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송해준 고려대구로병원 피부과 교수는 “대상포진 통증은 환자의 삶의 질을 감소시켜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고 노동력을 손실시킬 뿐 아니라 의료자원의 이용을 증가시키게 된다”며 “심각한 수준의 질병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한 예방대책과 초기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상포진의 증가세에 심각성을 느낀 피부과 전문의들은 제11회 피부건강의 날(매년 5월 15일)을 맞아 ‘대상포진 제로 캠페인’에 들어갔다. 대한피부과학회(이사장 계영철)는 ‘대상포진’을 널리 인식시키고 ‘빠른 진단의 중요성’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또 조만간 국내에 시판될 예정인 미국 머크(한국MSD)사의 대상포진 예방백신인 ‘조스타백스’(zostavax)의 접종 필요성에 대해서도 알릴 방침이다. 학회 계 이사장은 “대상포진은 피부과 입원환자 중 20% 이상을 차지하는 발생 빈도가 상당히 높은 질환”이라며 “피부과에서 대상포진에 관심을 갖고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