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룡·신동욱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이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을 앓고 있는 시각장애인은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경험하며 자살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2~3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이 질환은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망막의 기능이 소실돼 발병하며 노인층보다 젊은층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최근 종영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극중 인물 오영(송혜교)가 앓았던 질환이다.
연구팀은 2010~2011년 실명퇴치운동본부(RP)협회 회원 187명과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뽑은 일반인 대조군 187명의 정신건강을 비교한 연구결과를 최근 외국 학술지인 ‘검안 및 시각화(Optometry and Vision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절반이 넘는 97명의 망막색소변성증 환자가 중등도 이상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55명을 기록한 일반인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또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한 환자 수는 75명으로 나타나 24명에 불과한 일반인보다 3배나 많았다. 이밖에 65명의 환자가 2주 이상 우울증(depressive mood)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력이 상당히 떨어져 높은 장애등급(1~2등급)을 받은 환자보다 시력이 어느 정도 유지돼 낮은 장애등급(3~6)을 받은 환자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병이 더 진행될 수 있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 낮은 장애등급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비교적 적다는 점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신 교수는 “망막색소변성증은 야맹증을 겪는 젊은층에서 나타날 때가 많으며 너무 늦게 발견돼 치료가 어려울 때가 많다”며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고 아직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환자는 더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또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이 적절한 정신건강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환자와 장애인의 건강권 증진에 앞장서 온 박종혁 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장은 “중도에 실명하는 시각장애인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이들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적응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용어설명 망막색소변성증
망막은 눈으로 들어온 빛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하며 신경을 통해 뇌로 정보가 전달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이런 기능을 하는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망막 기능이 소실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시각세포가 손상돼 점차적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시력을 잃게 된다.
세계적으로 대략 4000명 중 1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으나 대략 1만5000여명이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희귀질환으로 분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