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삽화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일명 오바마케어, Obamacare)을 놓고 진보 진영의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내용의 시사만화이다. 위쪽 만화에서 지나가는 여자가 묘지를 보면서 “저들은 어쩌다 돌아가셨을까?”하고 궁금해하자 남자가 “안된 일이지만 그들은 이미 앓고 있던 질환(pre-existing conditions, 선재성 질환) 때문에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병원치료를 못 받았다”고 말해준다. 지나치게 제한이 많고 의사, 병원, 제약회사 위주로 운영되는 미국의 현 의료보험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만화는 미국 정부가 복지재원을 투자해 65세 이상 노인에게 제공되는 보험인 메디케이드를 확충해봤자 오바마의 정책대로라면 의료의 질이 떨어져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 메디케이드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제약이 많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미완의 오바마 의료개혁안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수술대에 오른 미국 의료제도 글 싣는 순서
<1부> 미국 의료, 환상이라는 껍질을 벗기면
<2부> 미궁 속 미국 의료, 선진국민이 아프다
<3부> 미국 의료개혁, 일진일퇴의 역사
<4부> 미국 의료제도, 오답 베낀 커닝 페이퍼
백 년 만에 부는 의료개혁 바람 … 진보 VS 보수, 복지 VS 성장 대립 구도
그동안 미국 의료제도는 제약회사와 미국의사협회(AMA)에 의해 좌우돼왔다. 현재 미국 의료자본주의는 재력과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세력과, 이를 등에 업은 의약계 종사자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대 초 산업혁명과 도시화를 거치면서 한창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던 시절 사설보험(민간보험) 중심의 의료제도 기틀이 다져졌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개별적으로 병원비를 조금씩 지원해주던 관행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굳어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국가적인 보험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이미 직장에서 충분한 의료비 혜택을 받고 있다고 여겼던 노동자 계급은 별다른 저항 없이 흘러가는 대로 의료보험 체계를 방관했다. 사설보험 체제에서 보험사들과 제약회사들은 점차 목소리와 세력을 키워갔고, 이들 거대 세력 앞에서 1996년 힐러리 클린턴의 개혁안 등 여러 개혁 시도가 좌절되기에 이르렀다.
오바마의 2008년과 2012년 대통령 당선은 이런 추세를 뒤집을 큰 승리로 주목받았다. 의료개혁 면에서 진보세력이 보수세력에게 대항할 만한 힘을 가졌다는 신호였다. 자본주의 대신 유럽을 참고한 사회주의도 본받자는, 개별적 성장에 힘쓰기보다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복지정책에도 신경쓰자는 국민의 바람을 세계에 드러낸 계기가 됐다.
미국민이 원해온 의료 평등(medical equality)의 신호탄
오바마케어의 공식 이름은 ‘환자 보호 및 지불 가능한 치료 법안’(PPACA;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이다. 이름 그대로 이 법안은 막대한 의료비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고, 의료서비스에 따르는 비용을 환자가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법안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하면서, 독보적으로 세계 1위인 미국의 의료 지출을 대폭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제안한 세 가지 주요 사항은 바로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 △보험료를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세금공제 도입 △질환을 가진 사람의 보험 가입 허용 등이다.
오바마는 모든 사람이 의료보험에 들기를 원하였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대상자가 아닌 성인 국민도 국가보험 또는 사설보험에 반드시 가입하게 했고, 이를 어기는 이들에게 벌금을 물게 했다. 불법체류자나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국가보험 또는 사설보험의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의료비가 무서워서 병원 가길 꺼려하고 몸을 돌보지 않다가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가고 마는 지금의 의료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 예방적 치료(preventive medical care)로써 미국민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개선시키려 했다.
국가 전체적인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세금공제를 활성화했다. 우선 50인 이상의 사업장의 고용주는 반드시 풀타임 근로자(full-time worker)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어 피고용자들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소기업의 고용주에게 미칠 부담을 덜기 위해 중소기업에는 세금공제를 적용해 보험료 지출액의 일부를 환급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미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험의 혜택을 받아 적은 의료비로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조항도 담았다.
올해 미국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는 현재 미국 비보험자 2명 중 1명은 보험 가입을 거부당할 만한 ‘선재성 질환’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2009년 미국 워싱턴 의료정책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인 국민의 37%가 의료비 때문에 병원 방문 또는 치료를 미루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특히 만성질환자의 경우 이 비율은 42%로 더욱 높다. 오바마케어 하에서는 만성질환자나 이미 질병을 진단받은 사람도 의료보험에 가입해 할인된 의료비를 지불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치료 및 복약을 미루고 병원 방문을 두려워하는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보험 강매는 ‘위헌’ 비난, 고용주는 보험료 부담 줄이려 시간제 근로자 고용 선호
2009년, 2012년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가장 주목받는 정책은 의료개혁안이었다. 미국 역사상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는 의료개혁이기에 더욱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는 비판의 불길은 지금까지도 거세다.
가장 많이 들리는 불만은 바로 오바마케어가 ‘의료 보험 강매’라는 주장이다. 역사상 의료자본주의를 가장 충실히 이행해 왔던 미국에서 보험 강매는 기존 의료제도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는 보수파들에게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위헌’인 것이다. 의료 개혁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벌금으로 통제한다는 점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보험료를 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일 텐데 이를 또 다시 벌금으로 통제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입장이다. 보험료를 낼 현실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물리는 것은 적절한 처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선재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무조건적으로 보험에 가입시키면서 그렇지 않은 건강한 사람과 의료비용, 대기 시간, 혜택의 범위 등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규정도 공격받고 있다. 국민 모두가 쪼들리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질환을 가진 보험가입자를 위해 일반 보험자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불만이 크다.
병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가 질환이 발견되면 그때서야 보험에 가입해 보험료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미국의 의료보험 재정은 금방 바닥나고 다른 국민들에게 가중되는 경제적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케어의 부작용으로 오히려 서민들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5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의무적으로 직원들에게 보험을 들어줘야 하니 중소기업에서는 인재 채용을 꺼린다. 풀타임 근로자가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므로 비교적 큰 규모의 회사는 풀타임 대신 파트타임(part-time) 직원을 많이 채용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올해 버지니아(Virginia) 주는 파트타임 직원들은 주당 29시간 이하로 근무하도록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 30시간 이상 일하면 의료보험을 들어줘야 한다는 오바마케어 조항에 대응한 것이었다. 애플비(Applebee’s), 파파존스 피자(Papa John’s Pizza), 웬디스(Wendy’s), 타코 벨(Taco Bell) 등의 유명 프랜차이즈도 이런 규칙을 제정했다고 한다.결국 의료보험료에 대한 부담이 고용의 질적 저하와 근로자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지고, 풀타임 정직원 대신 파트타임 임시직만 양산해 사회 전반의 직업 전문성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극빈층 보험료 부담, 불법체류자, 인디언 등 의료사각지대 해소에 갈 길 멀어
처음 오바마가 의료개혁안을 들고 나왔을 때 한국 내에서도 ‘오바마케어’가 미국 의료의 만병통치약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현재 미국 의료는 지나치게 민영기업에 의존하며 대기업에 편파적인 실정인데, 오바마케어가 적용되면 이런 문제점은 모두 일소될 것이라는 시각이었다. 그동안 AMA와 제약회사 중심으로 돌아갔던 미국 의료현실에 비춰 보면 오바마의 개혁안과 같은 진보적인 정책의 도입은 확실히 신선한 변화의 시작이며 발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하지만 지금 오바마케어는 겨우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오바마케어가 계획대로 시행된다 하더라도 비보험자로 남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미국은 의료보험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불법 이민자들, 메디케이드 대상자이지만 메디케이드 비용조차 지불하지 못해 국가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메디케이드 대상자가 아니지만 의료보험을 신청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쪼들려 차라리 벌금을 물겠다는 젊은 독신층, 오바마 의료개혁안의 대상이 되지 않는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 등 현 제도가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바마 의료개혁안의 적용 범위나 시행 여부에 관해서도 극심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지금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복지예산을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결집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공격으로부터 개혁안을 방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양당을 지지하는 여론도 꽤 오랫동안 양분된 상태다. 미국의 대중적 일간신문인 유에스에이투데이(USA Today)는 2010년에 대부분의 고연령층은 오바마의 개혁안을 반대하며, 40대 이하의 청년층은 대부분이 찬성하는 추세로 오바마케어에 대한 입장이 나이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눠진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10년 3월 23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의료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확 바꿔 놓을 PPACA 법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보와 보수간에 뜨거운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소모적 논쟁이 어떤 방식으로 종식될지 미국민뿐 아니라 전세계는 오바마의 의료개혁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