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주지 못했던 지인들과 송년회를 통해 술잔을 기울이며 아쉬움을 달랜다. 하지만 연이은 송년회로 인한 과음은 직장인에게 만성피로, 수면부족, 지방간, 알코올성 및 바이러스성 간염, 급·만성 췌장염, 고혈압, 당뇨병 등을 초래 또는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술은 간을 비롯해 신장 위장관 심혈관 췌장 뇌 전립선 골조직 등에 광범위하게 피해를 미친다. 한광협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간), 이동기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췌장), 김동빈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심혈관), 김현우 성바오로병원 비뇨기과 교수(전립선) 등의 도움말로 음주가 전신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적인 숙취해소법에 대해 알아본다.
급성 위염에는 최소 3일간 금주하며 부드러운 음식 먹어야
과음 후 속쓰림이 생겼다면 급성 위염을 의심해야 한다. 급성 위염때는 최소 3일간 금주하면서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기능성 위장장애 역시 음주 후 악화된다. 알코올은 위장 운동을 방해하는데다 위점막을 손상시켜 속쓰림과 속이 더부룩한 증상을 악화시킨다. 또 과도한 음주는 역류성 식도염을 불러일으킨다. 위액이 식도로 역류해 식도의 점막을 자극,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역류성 식도염을 예방하려면 과식(특히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식사시 적당량의 물을 마시며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과음 과식후 바로 눕는 습관을 고쳐 수십분간 시간 간격을 두고 잠자리에 드는 게 추천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다면 음주 다음날 복통이나 설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찬 맥주는 피하는 것이 좋다.
알코올로 인한 급성 췌장염 12월에 많아 … ‘폭음 주의보’
급성췌장염은 담즙 등 췌장에서 분비된 효소가 췌장 안으로 역류해 췌장조직 자체를 소화시켜 녹이는 염증이다. 정도가 약하면 가벼운 부종만 일어났다가 쉽게 낫지만 심하면 췌장이 터져서 주변의 장기를 녹이는 위험한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중증이면 사망률이 10∼15%에 이른다. 증상은 상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데 통증이 어깨와 가슴,등 쪽으로 퍼져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심한 경우에는 구토와 발열,식은땀,복부 주위 피부의 피멍 같은 증상을 동반한다.발병 원인으로는 담석증이 30∼75%,음주가 약30%를 차지한다.
만성췌장염은 급성췌장염이 오래 돼서 생기는 게 아니고 발생 과정이 다른 별개의 질환이다.알코올 등에 의해 췌장 조직이 섬유화되면서 췌장 실질이 위축되는 것이다. 마치 간질환이 간경변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알코올이 전체 유발원인의 70∼80%를 차지한다.소량의 술이라도 매일 5년간 마시면 생길 수 있다. 같은 술에 의한 췌장염이라도 평소 술에 약한 사람이 요즘 같은 연말에 폭음하면 급성췌장염, 알코올중독자나 애주가가 장기간 음주해 생긴 것이라면 만성 췌장염일 공산이 크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에 따르면 연중 12월에 급성췌장염 환자가 가장 많고 남성이 약6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말 폭음하는 남성은 급성췌장염을 주의해야 한다.
만성음주, 알코올성 심근증에 고혈압 심장병 위험도 높여
장기간 과음을 하면 심장근육이 약해지기 때문에 ‘알코올성 심근증’에 걸릴 수도 있다. 이는 확장성 심근증의 한 종류로 심장의 수축과 이완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폭음을 하면 고혈압 심장병 등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남성이 하루 70g이상 알코올(소주 8~9잔)을 섭취할 때 비음주자에 비해 혈압, 공복시 혈당 및 중성지방 농도가 현저히 높아졌다. 고혈압과 당뇨병의 위험은 비음주자에 비해 2.2배, 고중성지방혈증 위험도는 1.6배 높았다. 또 남성이 1주일에 4회 이상 음주시 비음주자에 비해 고혈압 및 고중성지방혈증(고지혈증의 일종) 위험도는 각각 1.6배, 2.1배 높았다. 김동빈 교수는 “적정량 음주시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고밀도지단백의 농도가 증가한다”며 “건강에 해롭지 않은 음주량은 남자 2잔, 여자 1잔 정도”라고 말했다.
추운 겨울 폭음하면 전립선비대증 악화 … 급성요폐로 응급실 실려갈 수도
추운 날씨에 연이은 술자리는 전립선비대증 환자들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전립선비대증은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 증상이 더 악화되는데 겨울에는 땀으로 수분이 잘 배출되지 않아 소변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음까지 하면 알코올의 이뇨작용으로 소변량이 더욱 증가해 배뇨증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전립선 비대증의 증상으로는 늘어난 전립선 조직이 전립선내 요도를 좁게 만들어 소변 줄기가 가늘어지는 약뇨, 소변을 자주 보는 빈뇨,자는 동안 소변을 보기 위해 일어나는 야간뇨,소변이 심하게 마려우나 갑자기 소변이 나오지 않는 급성 요폐 등이 있다. 급성 요폐란 방광에 소변이 꽉 찼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소변을 전혀 보지 못하는 증상을 말하는 것으로 평소 전립선비대증을 앓는 환자가 과음 후 잠이 들 때, 추운 날씨에 장시간 노출됐을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급성 요폐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김현우 교수는 “외출 전에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주고, 추운 곳에 장시간 노출되는 것을 피해 몸을 보온하며, 음주 시에는 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소변을 규칙적으로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치료는 약물요법이 기본이며 약물로 효과가 없거나 방광결석,지속되는 진한 오줌,혈뇨,급성요폐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면 내시경이나 극초단파 레이저를 이용한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과음, 지방간 거쳐 간경변까지 … 음주 후 2~3일 쉬어야 간기능 회복
간은 영양물질 대사, 유독물질에 대한 해독, 담즙분비 등 수 백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질환이 발생해도 또렷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피로감이나 쇠약감 등 막연한 증상을 감지하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아 검사받으면 심각한 상황에 도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
술은 간의 여러 대사기능을 저하시킨다. 특히 지방산 산화 분해능력을 감소시켜 간에 지방이 축적되게 함으로써 지방간을 유발시킨다. 알코올로 인한 지방간은 금주를 할 경우 정상화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과음을 하게 되면 알코올성 간염, 간경변증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만성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이 있는 사람의 경우 음주가 간경화증을 가속화시키므로 절대 금물이다.
1주일에 2번 이상 술자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음주 후 2~3일 정도는 간이 회복할 수 있도록 휴식을 가져야 한다. 피곤한 상태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이른 바 음주 후 ‘필름이 끊기는’ 사고가 되풀이된다면 술을 끊도록 한다. 어렵다면 적어도 3개월 이상 술을 아예 멀리하면서 체력을 보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음주 중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black out) 현상을 방치하면 나이들어 알코올성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알코올은 혈관을 통해 우리 몸에 흡수되는데, 뇌는 혈류 공급량이 많아서 다른 장기에 비해 손상되기 쉽다. 처음에는 블랙아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반복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뇌 손상을 일으켜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밖에 만성 음주는 골다공증, 우울증, 알코올중독, 성욕감퇴, 남성의 유방비대(여성형 유방) 등 수많은 질환을 잉태하는 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