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오면서 크고 작은 마라톤대회가 줄을 잇고 있다. 마라톤 때문에 자전거족이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퇴출돼 울상이란 소식도 들린다.
마라톤은 악마의 유혹이라고도 불리는 ‘런너스 하이(runner’s high)’와 같은 극한의 쾌감을 느끼게 해 스트레스와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또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근육을 키우고, 뼈를 튼튼하게 하며,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2009년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는 1년에 두 번 이상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남성은 마라톤을 하지 않는 남성보다 고혈압 위험은 41%, 고지혈증 위험은 32%, 당뇨병의 위험은 87%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드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즐기는 가을 마라톤은 자연을 만끽하고 건강도 다지는 좋은 기회다. 마라톤은 그러나 무리한 달리기는 척추나 무릎, 발바닥 등에 부상을 입힐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평소 운동량이 적은 중년이나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 등은 근력운동을 함께 하면서 기록보다는 과정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뛰어야 한다. 준비없이 갑작스레 결심한 초심자라면 유해한 위험요인에 대해 곰곰 살펴보고 나설 필요가 있다.
발바닥에 찌르는 듯한 통증 느껴지면 족저근막염 의심해야
최소 5㎞,최대 42.195㎞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 참가는 평소 꾸준히 달리 연습을 해온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된다.초보자라면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갑자기 오래 걷거나 뛰면 발바닥에 과도한 충격이 누적돼 족저근막염이 발생하기 쉽다. 족저근막은 발뒤꿈치부터 앞쪽 발가락 뼈까지를 연결하는 일종의 섬유끈으로 발이 아치 형태를 유지하며 걸을 때 충격을 완화하고 탄력을 주는 역할을 한다.
족저근막염은 족저근막 인대에 염증이 생겨 발바닥 뒷부분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질환이다.마라톤 등 무리한 운동을 하거나 농구나 배구 등 딱딱한 바닥에서 점프하는 운동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다. 평소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다녀도 발생하기 쉽다. 증상이 가볍다면 1∼2주 안정을 취하고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좋아진다. 더 심하면 물리치료나 스테로이드제 주사요법, 체외충격파 요법으로 치료하며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봉주와 황영조같은 유명 마라톤 선수도 족저근막염 때문에 수술을 받을 만큼 장시간 달리기를 하면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기에 초보자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무리하게 달리면 아킬레스건염증도 생길수 있다. 발뒤꿈치와 종아리 사이로 연결되는 힘줄인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나타나는 것으로 과도한 운동이 원인이다.
발목이 삐는 염좌는 달리기 도중 발을 헛디뎌 발목이 꺾이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보통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1∼2주 가량 생활하다가 통증 때문에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때 병원을 찾는다. 가벼운 부상이라면 1∼2주 동안 찜질을 하거나 파스를 붙이면서 안정을 취하면 자연스럽게 낫는다. 그러나 심하면 쉽게 낫지 않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인대가 손상받았거나 늘어난 경우 반드시 증상의 정도에 따라 압박붕대를 감거나 석고고정 등을 해줘야 한다.
족부질환 다음으로 흔한 마라톤 부상은 ‘런너스 니(runner’s knee)’라는 별명이 붙은 무릎 부상이다. 달릴 때에는 몸무게의 2∼3배에 해당하는 하중이 관절과 근육에 지속적으로 실리면서 무릎이 부상을 입기 쉽다. 처음엔 근육이 욱신거리는 정도이지만 심하면 인대나 연골이 손상될 수 있다.
마라톤에서는 드물지만 운동 중 점프나 급정거, 갑작스러운 방향의 전환이나 미끄러짐 등으로 발생하는 무릎 부상은 때로 무릎 내부 ‘반월상 연골’의 손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월상 연골은 무릎관절 내부의 완충작용을 하는 반달모양의 연골을 말한다.
김성권 고도일병원 줄기세포센터장(정형외과 전문의)은 “통증을 참고 계속 달리면 손상이 더욱 커져 퇴행성 관절염이 앞당겨지거나 연골판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즉시 운동을 중단하고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급작한 부상엔 ‘RICE 요법’이 효과적
무릎부상을 포함해 근골격계에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부상이나 통증에 대한 응급조치로는 안정, 얼음, 압박, 올림을 뜻하는 ‘RICE 요법(rest, ice, compression, elvation)’이 효과적이다.
우선 손상부위를 함부로 만지지 말고 안정을 취한 뒤 환부를 차갑게 해야 한다.
얼음찜질은 부상 후 10~15분 이내에 시작해 10~30분 가량 냉각상태를 유지한 다음 압박붕대로 감아주고 환부를 심장보다 높은 위치에 올려 염증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게 좋다. 급성 무릎 통증에도 냉찜질이 좋은데, 냉찜질로 수축된 혈관은 혈류를 감소시켜 신진 대사가 둔화되고 부기를 빠지게 한다.
그러나 냉찜질은 혈액순환장애나 국소빈혈 환자, 한랭알레르기 환자에겐 적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며 부상 후 72시간 이내에 조치해야만 효과가 있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앓는 잠재적 위험자, 심하면 달리다가 사망
평소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라톤이나 등산 같은 무리한 운동에 주의해야 한다. 심할 경우는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최악의 경우에 돌연사할 수도 있다. 과도한 의욕이 예상치도 못한 화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돌연사의 원인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90% 이상이 심장질환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선 65%가량이 심장질환, 20% 정도가 뇌졸중이다. 특히 증상이 나타난 지 한두 시간 내에 사망하는 경우 거의 전부 심장질환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돌연사의 사망자 대부분은 평소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 고지혈증을 보인 사람들이다. 과거 이런 질병을 앓고 폭음 흡연 스트레스에 찌들려 살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건강관리에 나섰던 사람에게도 치명적 위험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꽤 많이 발생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심장과 혈관이 어떤 상태인지 면밀히 알지 못하고 기필코 오늘의 운동 목표량을 달성하겠다며 무리하게 운동하거나,하루 일교차가 16도나 되는 새벽과 저녁에는 심혈관이 전반적으로 수축하는데도 이를 간과하고 집을 나섰다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마라톤은 인체가 일시적으로 많은 혈액을 요구하는데 심장의 펌프질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탈수로 수분이 많이 빠져 나가 혈액이 끈끈해지고 혈전이 뭉치면 심근경색을 일으킬 수 있다.
돌연사의 주된 원인질환은 협심증이다. 특히 안정형보다 불안정형 협십증이 위험하다.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심한 동맥경화증이 일어나 동맥의 안지름이 50% 이상 줄어드는 게 협심증이다. 안정형은 주로 운동시에 나타나고 가슴 통증이 2~3분 지속된 후 안정을 취하면 나아지는 경우다. 불안정형은 가슴통증이 평소에 나타나고 지속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빈도도 늘어나는 것으로 응급약인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으로도 흉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상태다. 어떤 종류의 협심증이던지 통증을 느꼈을 때는 바로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협심증이 좀 더 심해지면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혀버리는 심근경색증에 걸릴 수 있다.
유철웅 부천 세종병원 심장내과 과장은 “평소 100m달리기,10층 오르기에 문제가 없던 협심증 환자가 10m달리기,3층 오르기에도 숨이 가쁘다면 안정형이 불안정형으로 바뀌는 증후이므로 이를 간파하고 응급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장질환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급격한 환경 변화다. 갑작스러운 기온 강하나 운동량 증가,흡연,혈중 콜레스테롤 증가,과음,과도한 심적 스트레스가 안정형 협심증을 불안정형으로 전환시켜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협심증 심근경색 심장 돌연사의 단초는 동맥경화다. 유 과장은 “누구든 13세 이후부터 서서히 동맥경화가 시작되나 좋은 생활습관과 건강관리 노력에 따라 심혈관질환이 발병하는 시기에 큰 격차를 보인다”며 “과거에 만성 성인병이나 심한 흡연과 음주로 한번 망가진 혈관은 원상 복구되지 않고 언제든지 균열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런 사람들은 심장에 부담을 주는 급격한 운동량 증가나 기온 변화를 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동맥경화는 처음에는 혈관벽에 콜레스테롤이 침착하고 그 위에 칼슘과 면역세포 등이 엉겨붙어 점점 탄력을 잃는 것을 말한다. 구멍난 하수관을 시멘트로 메우면 또다시 균열이 생겨 시멘트를 덧발라야 하듯 한 번 혈전이 생긴 자리는 갈수록 쉽게 혈전이 생기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동맥경화의 진전을 막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청년층이라 할지라도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작업 등 앉아서 일로 보내고, 항시 스트레스를 받고 과식하고 운동을 게을리하며, 퇴근 후에 음주와 흡연으로 삶의 애환을 달랜다면 동맥경화 진행 속도가 빨라져 심장질환이 조기에 발병할 수 있다.
동맥경화는 고혈압과 당뇨병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다시 동맥경화가 심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고혈압으로 혈관내벽이 높은 압력을 받고, 당뇨병으로 혈관내벽이 약해지고 잘 손상되기 때문이다. 젊어서부터 혈관이 탄력 있고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년 이후 심장 돌연사를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최근 젊은 층에서도 돌연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부정맥이 증가하는 추세다. 직장·학교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와 음주 흡연 고혈압 카페인이 원인이므로 이를 최소화하는 데에도 신경써야 한다.
35세부터 뼈 약해지고 근육 줄어…허벅지-허리 근육부터 키워야
마라톤이 건강에 유익한 운동이라 할지라도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강도 높은 종목이게 때문에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라면 평소에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뼈는 35세가 넘으면 점점 골밀도가 감소하게 되어 약해지게 된다. 이 무렵부터는 근육도 점차 약화되는데 거의 운동을 하지 않는 사무직이나 저체중 여성의 경우라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다.
따라서 무작정 달리기에 나서기보다는 먼저 계단오르내리기 등을 통해 하체 근육을 발달시켜야 한다. 허벅지 근육 못지 않게 허리와 복부 근육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윗몸일으키기는 상복부, 누워서 다리 올렸다 내리기는 하복부 근육을 단련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고도일병원 고도일 병원장은 “허리와 복부 근육이 강해야 척추와 상체를 지지해 오래 달려도 부담이 적다”며 “특히 허리 통증이 있는 사람은 허리와 복부 근육이 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 부위 운동을 하체 운동과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라톤의 운동효과를 높이고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서 운동전 스트레칭과 뛰는 자세가 중요하다. 스트레칭은 달리기 전과 후에 발목·무릎·허리 등을 풀어주며 약간 땀이 날 정도로 20분 이상 충분히 한다. 스트레칭을 한 뒤 곧바로 달리지 말고 20분 정도 빠르게 걷기로 워밍엄을 해주는 것도 빼먹지 않도록 한다.
달릴 때 시선은 전방 18~20m를 향하고 상체는 엉덩이와 일직선을 유지한 상태에서 지면과 수직을 이루도록 한다. 팔은 자연스럽게 앞뒤로 흔들면서 몸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가정에 런닝머신이 있다면 런닝머신에서 거울을 보며 팔 다리 움직임을 교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달리는 도중에는 물을 조금씩 마셔 탈수현상을 막는다. 신발은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갈 틈이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이 좋다. 신발은 가볍고 바닥의 충격을 흡수하며 내부 소재가 부드러운 것을 택한다.
마라톤 초심자는 시속 6∼7㎞로 20분 정도 달리는 게 좋으며 2주마다 5분씩 운동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수축기 혈압이 160㎜Hg이상인 사람은 운동을 삼가는 게 좋다. 가을엔 혈액이 끈끈해지고 혈관이 좁아져 있으며 지방층이 두터워져 있기 때문이다. 경증 또는 중간 정도의 고혈압 환자는 가급적 실내에서 15분간 몸을 충분히 풀고 분당 최대맥박수(220-나이)의 70% 수준으로 20분가량, 걷기, 런닝머신타기, 자전거타기, 수영 등 유산소운동을 하는 게 권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