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병원은 ‘의사수 늘려라’ 찬성 … “지금도 저보상 ‘노동착취’ 심한데” 반발
의사인력 적정성 논란이 의료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의료계 안에서도 한편은 의대 입학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공중보건의 수급, 의료취약지역 보강,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 진료과목 전문의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 연내로 의료인력 증원 방안을 확정해 밀어붙일 계획이어서 증원 반대세력의 투쟁심을 고취시키는 분위기다.
의대 입학정원을 늘려 의사인력을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증원을 주장하는 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인구 대비 의사수와 고령화 등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며 의사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의사인력 증원을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지금 당장은 의사가 부족할지 모르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의사인력이 공급과잉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의대 입학정원을 즉시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병원, 병영경영난 의사인력 증원으로 해결 … ‘의대정원 외 특례입학’ 찬성
중소병원의 모임인 대한중소병원협의회는 의사인력을 증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병협은 △중소병원 의사수 부족으로 인한 경영난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 △수도권 대형병원의 환자 독식현상 등을 근거로 의대 정원 증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 수가 많다고 하지만 중소병원 운영자들이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중병협의 입장이다. 국내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한의사를 포함해 1.9명으로 OECD국가 평균인 3.1명과 비교해 부족했고 이 같은 추세라면 2020년에는 3만4000~16만1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41개 의대에 정원의 약10% 입학생을 따로 선발해 국비로 학비를 지원하고 의대졸업 후에는 약5년의 특정기간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하는 ‘의대정원외 특례입학’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의료취약지역의 공중보건의가 매년 감소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치이다. 공중보건의 수는 2010년 5210명, 2011년 4545명, 올해는 4054명으로 이런 추세로 감소하면 2020년에 3142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병협 관계자는 “현재 지방 중소병원의 인력난은 극에 달하고 있다”며 “의대 정원외 특례입학으로 최소 5%의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병협은 이 제도를 통해 입학한 의대생이 5년간 공보의 생활을 마치면 동네병원과 중소병원 같은 1·2차 의료기관으로 유입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인력들이 중소병원으로 유입된다는 확신은 없지만 의사공급을 확대하다 보면 중소병원의 인력난도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이 함께 가입해 있는 대한 병원협회도 드러내고 중병협의 입장을 두둔하지 않지만 정부 의지와 중병협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되길 바라는 눈치다.
병의협, 의사수 증원 주장 및 연구 결과 ‘근거 빈약’ … 국내 의사수 증가속도 세계 최고
봉직 의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의사수 부족현상으로 의대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료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병의협은 OECD국가 평균 국민 1000명당 의사수는 2004년에 2.9명에서 2010년 3.1명으로 0.2명 증가한 반면 국내의 경우 2004년 1.6명에서 2010년 2.0명으로 0.4명 증가했고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증가율이라고 설명했다.
병의협 관계자는 “이런 증가 속도가 유지되면 15년 후에 1000명당 3.5명 이상으로 의사 인력 공급과잉 상태가 올 것”이라며 “중병협이 중소병원 의사 부족을 절대적인 의사수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중병협은 중소병원 의사 부족의 원인으로 지적한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에 대해 이는 미숙한 국가 정책의 문제일 뿐이고 의사수 부족과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하며, 수도권 대형병원의 환자 독식현상과 중소병원들의 불합리한 병원경영 행태 등을 중소병원 구인난의 원인으로 꼽았다.
병의협 관계자는 “같은 의사 입장에서 중소병원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근원을 제대로 봐야 한다”며 “지금도 많은 의사들이 구직 상태로 대기하거나 개업 실패로 실직하는 게 현실인데 수가인상보다 의사 증원이 손쉬운 경영개선책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사 증원 필요성 운운은 과잉 배출된 후배 의사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해 저수가를 보전한다는 의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의협, 의사수 절대 부족하지 않아 … 의사수 증원은 근시안적 해결책
대한의사협회는 지금 같은 추세로도 의사 공급과잉현상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의협의 주장에 따르면 국내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OECD 평균보다 낮지만 1985~2009년 의사수 증가율은 216.7%로 같은 기간 OECD 평균 증가율인 40.9%보다 5배 이상 높았고, 최근 10년간 인구 10만명당 의사수 증가율은 40%로 같은 기간 인구증가율인 7.5%보다 높아 2030년에는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의협 관계자는 “국내 의사수 및 접근성이 OECD 평균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통계의 착시효과를 이용해 의대정원을 늘린다는 주장은 향후 의사인력 공급과잉에 따른 사회적 비용 낭비를 예상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의대 정원외 특례입학에 대해 ‘의학전문대학원 급감을 고려하지 않은 졸속정책’이라며 도입을 반대했다. 이혜연 의협 학술이사는 “정부가 적절한 의사인력에 대한 지표도 없이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며 “복지부의 의사 인력증원 방침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취약지의 공보의 배치를 늘리기 위해 공공의료 정책 준수와 장기 정규근무자 자원 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앞으로 부족할 것이라고 얘기되는 공중보건의 전체 인원 2500명 중 900명이 공공의료와는 무관한 검진기관과 지역병원 등에 배치되고 있다”며 “공중의 제도의 운영취지에 맞는 배치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대생·공보의, 의사증원 반대 … 공보의 착취·부실 의대 해결 선행돼야
의대생과 공보의(공중보건의)도 의사 증원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보다 공보의 복무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12년 동안 부실 의대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의대정원을 늘린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남기훈 의대협 의장은 “부실의대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도 정부는 법적 책임을 운운하며 12년 동안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게 의사수 증원을 정치적 수단으로 판단한 것 아니냐”며 “의사수를 쉽게 늘릴 수 있다면 부실대학 먼저 해결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의사인력 증원의 근거로 공보의 부족을 든 사항에 대해 반론했다. 대공협은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군미필자가 늘었기 때문이고 일시적인 공보의 감소현상이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이영하 대공협 고문은 “2020년 의학전문대학원이 의대로 전환되면 공보의 수는 다시 늘어날 것”이라며 “지금도 넘치는 공보의 자원이 민간병원 등 영리활동에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이지 의료취약지역에 결코 공보의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런 이유로 공보의 감소를 주장하며 의사수를 늘리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