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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주고 어르고 현혹하는 게 보험마케팅의 본질
  • 정종호 헬스오 대표
  • 등록 2012-08-17 10:37:11
  • 수정 2021-06-24 18: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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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 불안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해야

“보험회사는 사람들이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성향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번다. 보험사는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따위의 재난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내기를 걸었다. 그들은 이것을 도박이라 하지 않고 보험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평균율의 법칙을 밑받침으로 하는 도박인 것이다.”


철강왕 카네기는 당시 영국의 로이드 보험사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이런 시각이 틀리지 않았음은 국내 보험업계의 영업형태에서 다각도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정작 보험에 든 것은 보험가입자(보험소비자,피보험자)가 아니라 보험사(보험자)인 게 틀림없다. 보험 구조와 업계 행태상으로 볼 때 보험사는 절대 망하지 않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손해나면 보험가입자에게 손벌리는 무책임한 보험사들

 

보험사들은 흔히 손해가 나게 생겼으면 보험료를 올려 적자를 메꾼다. 예컨대 금융당국은 2009년 10월부터 실손의료보험(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 중 건강보장 상품)이 불필요한 진료를 남발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건강보험 비급여치료와 본인부담금을 100%까지 지불하는 보험상품의 판매를 금지시키고 그 비율을 90%로 일괄적으로 낮추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손해보험사들은 “지금처럼 의료비를 100% 지원하는 상품에 미리 들어놓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손해본다”는 이른바 절판마케팅(시한부마케팅,공포마케팅)에 열을 올려 전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수를 2008년 939만명에서 2009년 1502만명으로 무려 약60%나 늘렸다. 2007년에는 613만 5207명이었고, 2011년에 2023만7922명 수준이었으니 엄청난 절판마케팅 효과를 본 셈이다.


하지만 2009년 중 수입보험료는 4920억원으로 늘어난데 비해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은 6076억원으로 증가해 1156억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 보험사들이 적자를 줄이려 머리를 쓴 결과 지난 6월말 현재 2135만명에 달하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보험료는 평균 44% 인상됐다(보험사 통계를 취합한 조선일보 보도). 50~60%나 오른 보험가입자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정보 비대칭성으로 불완전마케팅·공포마케팅 횡행


더욱이 보험가입자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위험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소비자 12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310명(26%)이 중복 보상이 안 된다는 설명을 듣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감사원은 지난해 이 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청구한 10만8038명 중 80% 정도가 중복가입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많은 보험소비자가 여러 개의 실손의료보험을 동시에 들 경우 중복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기본적인 사실도 안내받지 못한 채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여러 보험사의 비슷한 보험상품에 보험료를 납부하고도 보험금 혜택은 그만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보험 계약자의 이익을 위해 중복가입 여부를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거의 대부분 갱신형이다. 3~5년 단위로 보험료가 바뀐다. 대개는 3년 갱신형이다. 그러나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중 12%는 가입시 갱신형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또 보험료가 갱신된다고 설명을 들은 650명 중 36%는 “인상률이 10% 미만”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 보험의 보험료 평균 인상률은 44%에 달했다.


실손의료보험이 모든 질병을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응답자의 40%는 보상해 주지 않는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고 소비자원은 밝혔다.

 

유배당 상품 싹 없애고 무배당 상품만으로 배불리는 생명보험사


보험상품에는 유배당 상품과 무배당 상품이 있다. 보험사가 이익을 냈을 경우 가입자들에게 일정 배당금을 지급하는 보험이 유배당 상품이고, 보험사가 이익을 냈더라도 가입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는 보험이 무배당 상품이다. 보험 도입 초창기에는 유배당 상품만 있었다. 1990년 3월만해도 무배당 상품은 외국계 보험사가 취급하던 한 개밖에 없었는데 점차 유배당 상품의 보험료가 비싸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1990년대 후반 생명보험사 상장시 이익(주식지분) 배분 문제가 논란이 되자 보험사들은 무배당 상품 판매에만 주력했다.


그 결과 2000년 무배당 상품 점유율이 50%를 돌파했고 2007년 이후에는 아예 유배당 상품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12년 4월 16일 현재 984개 생명보험상품 중 유배당상품은 17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13개는 배당이 거의 없는 ‘무늬만 유배당’ 상품이다. 또 현재 판매되는 유배당 보험 4개는 모두 올 3월 출범한 NH생명보험이 농협중앙회 공제상품으로 팔던 보험을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유배당상품이 무배당상품위주로 바뀌었으나 보험료가 싼 것도 아니고 생명보험사들은 주주배당을 늘리는 반면 가입자배당을 줄이는 정황이 농후하니 보험소비자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겁주고 얼르고 현혹하는 게 보험마케팅의 본질


보험의 모럴해저드와 비논리적 마케팅은 대표적 3가지 사례 외에도 무수하게 많다. 필자가 보험의 전문가도 아니지만 기성언론에 나오는 비판성 기사는 너무 적고 오직 상품 소개와 광고스폰서(보험사)의 마케팅 전략을 담은 것이어서 열마디 백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늙어서 자식에게 눈치보거나 손벌리지 말라”며 빨리 보험에 가입하라고 유도하는 광고문구가 서글프다. 사실 중·장·노년에게 교육비 결혼비용 등 현재 자식에 들어가는 지출을 줄이고 노후에 대비해 저축액 늘리기, 임대소득 등 안정적 소득원 확보, 귀농·귀촌 준비, 돈도 되고 재미도 있는 취미생활 준비 등을 권장하는 게 더 현명한 방책일 것이다. 최고의 옵션은 자식교육을 잘 해 결코 늙고 돈 떨어진 부모를 외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언론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믿지 말고 개인연금에 가입하라는 투의 글을 내는 사람도 한심하다. 국민연금은 강제보험이다. 안 들 도리가 없다. 더욱이 공직에 있거나 공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성실히 내야 한다. 공공기관을 믿지 말라고 언론이 부추기는 모양새도 어째 이상하다. 국민연금에 들어가는 돈조차 아깝고, 가계 형편이 나빠 허덕허덕하는 사람이 개인연금에 들 여력이 있을까.


허리띠를 졸라매 전체 가계살림 중 생활비 비중을 40%로 줄이고 대신 연금저축이나 변액보험의 비중을 20~30%로 늘려야 한다는 권고성 기사도 우습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를 보다 궁핍하게 살라고 강압하는 꼴이다. 월소득이 300만원도 안되는 가정이 허다한 상황에서 교육비, 가계대출, 혹은 청약부금, 정기적금을 줄이라는 말이 현실에 닿지 않는다. 오히려 월소득 300만원 미달의 가정에서는 보험료 비중을 10%이하로 낮추고 저축을 늘리라고 권하는 게 맞다.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니 미리 암보험에 들어 경제적으로 대비하라는 말도 괴이하다. 보험사들은 암 진단 후 실직한 사람이 85.3%에 달하고 비용 때문에 암 치료를 포기한 사례가 13.7%에 이른다고 겁을 준다. ‘두번째 암’ 보험이라는 게 있다. 원발성암이 다시 생겼든 전이·재발·잔류암으로 암이 재차 도발했을때 보장하는 암이다. 그런데 두번째 암보험의 가입조건은 암 진단 확정일로부터 2년 이후 완치 판정을 받아야 한다는 등 까다롭고 보험료도 일반 암보험료보다 3~10배 정도 비싸다. 암은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백혈병이나 갑상선암 등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오래 살지 못하는 병이다. 예방책이 알려져 있으나 실천하기 쉽지도 않고 또 완벽하게 실천했다고 해서 100% 암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면역력과 정신력이 강하고 치료가 잘 된 몇몇 사람 때문에 나머지 다수의 암환자들이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일 뿐이다. 암을 갖고 장사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바로 암보험이다.


금융감독원은 보험료의 과다한 수익창출이나 보험료 인상 문제가 생길때마다 보험사에게 제지하는 시늉을 한다. 약발이 꽤 먹히긴 하지만 보험업계는 조금 고개를 숙이고 보험사 수익이나 보험료 인상폭을 조금 낮추는 모양새를 취하는데 그친다. 왜 금융당국이 사전에 경고하고 평소에 보험사의 과다이익을 줄이고 소비자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가.


보험사들은 온갖 경영·통계 자료를 마치 암호문처럼 숨긴다. 사업비로 얼마로 쓰는지 공개하길 거부한다. 좋은 통계는 드러내고 불리한 통계는 영업기밀이라며 은폐한다. 보험료 체계가 대폭 바뀌니까 서둘러 가입하지 않으면 손해본다고 보험소비자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실손의료보험에 들고, 자녀를 위해 적립식 펀드에 들고, 자신의 은퇴 후 10년을 버틸 수 있도록 연금보험에 들라는 보험안전 3중망을 튼튼하게 치라고 노래를 한다. 알 수 없이 복잡하고 깨알 같은 보험상품 정관, 케이블방송이나 텔레마케팅 등을 통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속사포처럼 떠들어대는 보험상품 판매광고나 안내 멘트 등이 소비자를 현혹한다. 겁주고 얼르고 현혹하는 게 보험 마케팅의 본질이다.


근원적 불안과 공포를 잠재울 수단 없어 … 의미있는 삶 추구가 중요


보험·마약·중독 등의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의 공포와 삶의 허무함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에 있다고 필자는 본다.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근원적 불안과 공포에 아무리 많은 재화를 쏟아붓어도 안전과 안심에 이를 수 있는가.

 
격한 표현으로 죽으면 다 끝이다. 무덤 속에 가져갈 게 없다. 다만 자신에 대한 평판과 후세의 기억만이 남는다. 살아있는 동안 주위사람에게 보다 잘하고 의미있는 행동과 기록을 남기는 게 현대를 살아가는 합리적 인간으로서의 갈 길이라 생각한다.


10년 이상 보험만 취재했던 어느 선배 전문기자가 14년전 이런 말을 했다. “보험은 자동차보험하고 공공 의료보험말고는 다 쓸데 없어. 모두 다 가입하고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보험이니까”. 그리고 한마디 더, “보험사가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겠니, 사업비 챙기고 남으니까 장사하지. 보험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이나 너무 부자여서 죽으면 손해볼 게 많은 사람이 들어야 남는 장사다. 크게 위험하지도 않고 지극히 가난하거나 부유하지도 않은 보통의 무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갖다 받치는 게 보험”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필자는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개인연금저축(소득공제를 위해 아주 조금) 외에 들은 게 없다. 심지어 주위의 친척이 보험 가입을 권유해도 외면했다. 왜 보험에 이리도 부정적이냐고. 경제적으로는 물론 마음마저 가난한 사람들이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자꾸 쓸데 없는 미래 걱정만 하며 헛돈을 쓰는 것 같기에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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