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8000억원대로 추산되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초래한 하나의 원인 제공자로 건강보험공단의 모럴 해저드가 지적되고 있다. 하위직원들에 대한 고액연봉 지급,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호화 청사 준공 추진, 직원들의 기강해이와 근무태만이 그것이다. 포괄수가제 여론을 호도시키려 고의로 건보공단 직원으로 하여금 대한의사협회를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을 달도록 해 여론을 조작한 것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건보공단이 생긴 이래 수십년간 지적된 것으로 폐단이 쌓여 고질화되고 고쳐지지 않는다는 게 국민들을 분노케 한다.
상위직급이 하위직급보다 많은 기형적 조직
건보공단 직원의 고액 연봉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국정감사에서는 인건비 초과지출 등의 문제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당시 정하균 국회의원(친박연대)은 국감에서 “건보공단이 2010년도 퇴직급여비 예산액으로 18억 1900만원을 편성했지만 실제로는 당초 예산액의 23.9배에 달하는 434억7800만원을 지출했다”며 “건보공단이 해마다 퇴직급여비와 명예퇴직수당으로 책정한 예산보다 20배 넘는 금액을 지출하는 형태를 반복하고 있으며 초과집행을 할 때 지켜야 할 법적절차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ALIO)’를 토대로 보건복지부 산하 5개 준정부기관(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연금공단,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경영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직원의 평균연봉이 가장 높은 기관은 보건산업진흥원으로 2011년 결산기준 1인당 평균 연봉은 5661만원이었다.건보공단은 5607만원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심평원(5496만원), 연금공단(5032만원), 노인인력개발원(4187만원)이 그 뒤를 이었다. 건보공단의 평균연봉은 2011년 시행된 간부직 성과연봉제도를 반영한 것으로 신입사원의 초봉은 2443만원 선이다.
직원의 직급 구조를 보면 더 기가 막힌다. 임직원 수는 건보공단이 1만2404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국민연금공단 4622명, 심평원 1743명, 보건산업진흥원 124명, 노인인력개발원 80명 순이다. 건보공단의 직급 구조는 조직 노후화가 우려되는 수준이다. 2011년 결산기준으로 3급(차장급)이 1965명으로 대리급인 5급(1236명)과 주임급인 6급(1048명)을 상회했다. 또 과장급(4급)의 경우 7177명에 달하는 기형적 인력구조를 보이고 있다. 평균 근속년수를 살펴보면 건보공단이 18.49년으로 1위였다. 이어 국민연금공단(17년), 심평원(13.9년), 노인인력개발원(10.9년), 보건산업진흥원(9.3년)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건보공단의 관리 운영비다. 2009년 관리운영비 지출액은 1조388억원, 요양급여비용 규모 대비 3.3%에 달한다. 관리 운영비의 대부분은 건보공단 직원의 급여로 나간다. 공단 직원의 연평균 급여는 약 5359만원,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평균 연봉 2530만원의 약 두 배다. 공단 이사장의 경우 기본급 1억1310만원에 성과급을 더하면 1억5202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민원인 100명인데 지사 건축에 26억원 들여 ‘호화청사’ 논란 자초
대한의사협회의 한 회원은 16일 포털 사이트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당신이 낸 건강보험료로 지은 건물들’이라는 제목으로 건보공단이 국민의 혈세로 신축 사옥을 호화스럽게 짓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건보공단의 호화청사 논란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보공단은 40여명이 근무하는 아산지사 신축에 26억원을 들였다. 아산지사(사진)는 하루 민원인이 100여명에 불과한 한적한 곳이다. 게다가 기존 지사의 위치보다 불편한 곳에 신축돼 민원인들의 불만이 쇄도했다. 또 아산지사에 접근하려면 한쪽 방향의 경우 21번 국도의 중앙선을 무단 횡단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대형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안고 있다. 아산지사 건축 당시 주민들이 접근성이 나쁘다는 이유로 짓지 말라고 청원했는데도 공단은 극구 현 위치에 지사를 신축했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강릉, 속초, 거제, 경주, 김제, 예산, 영동, 여주 등에 지사나 출장소를 신축했고 공주와 서산·태안의 지사는 증축했다. 올해는 사천, 함안·의령, 울진·영덕, 정읍, 괴산·증평, 청양 지사가 신축됐다. 동해와 기장, 이천 지사는 공사 중이며 대전서부지사도 증축을 앞두고 있다.
건보공단은 올해 사옥 신축 및 증축에 441억14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252억7800만원(집행률 57%)을 사용했다. 또 의성·군위와 안산지사를 짓기 위해 2건의 부지를 사들이기도 했다. 부지매입에는 76억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75억8600만원(99%)을 집행했다.
이와 별도로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라 건보공단은 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본사를 원주로 이전할 예정이다. 원주 본사 신사옥 이전을 위한 부지 매입에는 165억5400만원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4회차 중도금을 납부했다. 부지 매입비는 당초 173억8400만원보다 8억3000만원 줄어든 것이라고 건보공단은 설명했다. 본사의 원주 이전에는 781억2589만4000만원의 예산 중 7%인 54억6828만8000원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는 본사 및 전국 지사 사옥관리에만 680억2822만4000원의 예산을 잡았고 1분기까지 총액의 9.39%인 63억9038만원을 집행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패션 커뮤니티 카페의 회원은 “건보료가 부족한 이유에는 정말 많은 원인이 있지만 방만한 건보공단의 운영도 한 몫 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며 “혹시 공단의 건물이 노후하다고 민원을 넣은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인건비 등 건보공단이 관리운영비 명목으로 사용하는 금액의 실제 쓰임새를 면면히 뜯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시중의 반응에 공단 측은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공단 홍보실의 A 관계자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지사의 규모와 건축하는 마감재 등이 달라지는데 공단의 직원들이 호화스러운 건물에서 일하는 것처럼 비춰져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협 비난하는 악성 인터넷 댓글…조직에 대한 충성, 아니면 근무태만
2007년 당시 김선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건보공단 국정감사 자료에서 공단 내부의 공익근무요원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며 소속 일부 직원이 시간 외 근무수당을 받기 위해 근무대장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 직원이 근무대장에 접근할 권한이 없는 공익근무요원에게 사번과 비밀번호를 넘겨주면서 시간 외 근무 수당을 받기 위해 시간 외 근무를 한 것처럼 시간 외 근무 대장을 조직했다는 것이다. 공익근무요원은 내부감사가 나오는 경우에도 미리 알고 방송을 통해 대비할 것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포괄수가제 논란으로 ‘아고라’ 사이트에서 의사들과 건보공단 직원간의 댓글싸움이 보험공단의 근무태도와 관련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 윤창겸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한문덕 건보공단 급여이사와 비공개 회동을 갖고 아고라 등 포털사이트에서 의사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공단 직원 32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이날 윤 부회장은 “최근 건보공단 직원들이 포털사이트 포괄수가제 관련 글에 악성 댓글을 다는 등 의사를 매도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며 “업무시간에 본업은 뒷전인채 의사 죽이기에 나선 이들의 작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음이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지속적으로 의사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게시한 72명을 조사한 결과 32명이 공단 직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들이 10대처럼 업무시간에 인터넷에만 매달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건보공단 직원이 일하는 사무실에 가보면 창구직원을 빼고는 대부분 인터넷 쇼핑이나 연예뉴스 검색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5시30분만 되면 ‘칼퇴근’을 준비하는 풍경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김태백 건보공단 홍보실장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보험자로서 제도운영에 매우 중요한 진료비 지불제도인 포괄수가제의 시행취지와 내용을 국민에게 올바로 알리는 것은 공단의 의무”라며 “의협에서는 공단 직원이 일반인으로 가장해 글을 게시했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의협이 말하는 포털사이트는 모두가 익명으로 의견을 올리는 자유토론방으로 공단이 조직적인 대응을 한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의협은 건보공단 및 심평원 등 준공무원들의 인터넷 악플 게재 등을 근무태만으로 간주하고 국민감사를 청구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