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르비에의 표적치료제 ‘보라니고정’(Voranigo, 성분명 보라시데닙 vorasidenib) 10mg·40mg이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생검, 대부분 절제 또는 완전 절제를 포함하는 수술 후 40kg 이상의 12세 이상 소아 및 성인의 IDH1 변이 혹은 IDH2 변이가 있는 2등급의 성상세포종 또는 희돌기교종’의 치료제로 국내 허가를 받았다.
성상세포종(Astrocytoma) 및 희돌기교종(Oligodendroglioma)은 원발성 뇌종양의 가장 흔한 유형인 신경교종에 속하는 주요 아형으로, 신경교종 환자의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 신경교종은 암의 악성도에 따라 1~4등급으로 구분되며, 이 중 저등급에 속하는 2등급 신경교종 환자의 80% 이상에서 IDH1/2 변이가 발견된다.
신경교종의 표준치료는 수술적 절제이지만 뇌조직의 특성상 수술 후에도 국소 재발 위험이 높고, 환자의 약 56%는 수술 이후에도 발작을 경험한다. 저등급 신경교종은 질병 특성상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발작, 인지·언어 기능 저하, 운동장애 등 신경학적 손상이 누적될 수 있으며, 특히 IDH1/2 변이를 가진 환자는 예외 없이 질병 진행을 경험한다.
더욱이 저등급 신경교종은 35~44세에서 가장 높은 발생률을 보여, 직장‧양육 등 사회와 가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청∙장년층 환자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개인을 넘어 가족과 사회 전반에 부담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기능 저하 등 신경학적 증상이나 종양 진행이 명확해질 때까지 적극적인 약물치료 없이 경과관찰(Watch for Waiting)이 권고되는 경우가 많아, 질병 진행을 지연하고 증상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치료 옵션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지속돼 왔다.
IDH 변이 저등급 신경교종 최초이자 유일한 표적치료 신약 '보라니고정'
보라니고는 IDH 변이 신경교종 치료에 허가된 최초이자 유일한 표적치료제로, 저등급 신경교종 영역에서 약 20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기전의 혁신 신약이다. IDH(Isocitrate Dehydrogenase, 이소시트르산 탈수소효소)는 세포의 정상적인 대사를 조절하는 효소로, 돌연변이가 생기면 비정상적으로 많은 2-하이드록시글루타레이트(2-hydroxyglutarate, 2-HG)를 생성해 암세포의 성장과 생존을 촉진한다. 보라니고는 변이된 IDH1/2를 억제해 2-HG 수치를 90% 이상 감소시키고, 비정상적인 종양 성장 환경을 정상화하여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뇌종양 진단 시 IDH 변이를 핵심 진단 요소로 새롭게 규정한 바 있다.
이번 허가는 글로벌 3상 임상 시험 ‘INDIGO’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루어졌다. 중앙 추적 관찰 기간 14.2개월 시점에 보라니고 단독요법은 위약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61% 감소시켰으며(HR=0.39 [95% CI, 0.27-0.56; P<0.001]), 무진행 생존기간(PFS, Progression-free Survival) 중앙값은 27.7개월로, 위약군(11.1개월) 대비 유의하게 개선된 결과를 보였다.
또 다음 치료까지의 개입 시점(TTNI, Time to the Next Intervention) 역시 유의하게 지연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보라니고 치료군은 위약군 대비 후속 치료를 받거나 사망할 위험이 74% 낮았으며(HR=0.26 [95% CI, 0.15-0.43; P<0.001]), 24개월 시점에서 생존해 있거나 후속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의 비율은 보라니고 치료군이 83.4%로, 위약군 27%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와 함께, 보라니고는 주로 저등급 독성 효과와 관련을 보여, 관리 가능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확인했다. 관련 임상연구는 2023년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게재됐다.
장종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성상세포종, 희돌기교종 등 저등급 신경교종 환자는 호발 연령대가 30~40대로 비교적 젊고,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다”며 “현재 경과 관찰 외 수술 후 후속치료로 주로 사용되는 방사선요법이나 항암화학요법은 경우에 따라 업무 능력 저하와 고용률 감소 및 발작에 대한 두려움 증가 등 사회적 어려움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라니고는 글로벌 3상 연구(INDIGO)를 통해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 감소와 함께 다음 치료까지의 개입 시점을 유의하게 지연시키는 임상적 근거를 제시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대조군과의 생존 곡선 차이가 확대되며 치료 효과와 장기적 지속성까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번 허가의 임상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최근 란셋 종양학(The Lancet oncology)에 게재된 6개월 추가 추적 결과에서도 대조군 대비 치료 중 발작 발생률이 감소하고 후속 항암 치료 개입 시점을 유의하게 지연시키는 등 치료 혜택을 일관적으로 유지했다”며 “1일 1회 경구제 복용으로 복약 편의성도 높아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질환을 관리하면서 안전하게 사회 및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올리비에 루쏘 한국세르비에 대표이사는 “IDH 변이를 동반한 저등급 신경교종 환자들은 오랫동안 수술 이후 선택지가 거의 없는 제한된 치료환경에 놓여 있었다”며 “약 20년 만에 등장한 혁신 신약 보라니고의 국내 허가는 신경교종 치료에서 질병의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라니고는 2024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2025년 9월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를 받았다. 이어 2025년 10월에는 혁신성을 인정받아 제약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미국 프리 갈리앵 USA’(Prix Galien USA, 2025)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2024년 8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