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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젊은 대동맥 판막 환자에 자가 폐동맥 판막 이식하는 ‘로스(ROSS)’수술 성공
  • 정종호 기자
  • 등록 2024-11-14 10: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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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혈전제 복용 않고 재수술 가능성 낮아 …임신 고민 젊은 여성 등에 치료 선택지 넓혀
  • 2000년대 초반 시행됐다가 대체판막 발전으로 중단, 해외 장기 추적결과 좋아 재 주목 … 서울아산병원 20년만에 재개

대동맥 판막이 좁아지는 협착증으로 어지럼증과 호흡곤란을 앓던 40대 남성 환자 박 모씨. 대동맥 판막 질환을 앓는 젊은 남성 환자의 경우 기계판막을 이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박 씨는 기계판막 이식 후 혈전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 평생 항혈전제를 복용해야 하는 점을 극도로 꺼렸다.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으로 수술 자체를 고민할 정도였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김호진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환자 자신의 폐동맥 판막을 이용한 ROSS수술을 제안했다. 박 씨는 지난 8월 29일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김호진 교수의 주도 아래 ROSS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국내 성인심장외과 분야에서 약 20년 만에 시행된 ROSS 수술이었다. 

   

수술 후 약 2개월이 지난 현재, 환자는 별다른 합병증이나 이상 증상 없이 건강을 회복 중이다. 환자는 항혈전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되며, 재수술 가능성도 낮아 삶의 질이 향상됐다.

   

ROSS수술은 1967년 영국의 Donald N. Ross라는 의사가 개발한 대동맥 판막 질환 수술법으로, 환자의 폐동맥 판막을 떼어내 대동맥 판막 자리에 이식하고, 비어 있는 폐동맥 판막 자리에는 폐동맥 동종판막조직(pulmonary homograft)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공판막의 사용과 관련된 항혈전제를 복용할 필요가 없고, 재수술 가능성도 낮아 젊은 환자들에게 특히 적합한 치료법이다. 

   

대동맥 판막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그동안 기계판막 혹은 소·돼지 등의 동물 조직을 이용한 조직판막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치료해왔다. 

   

기계판막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혈전 발생 위험으로 인해 평생 항혈전제 복용이 필요하고, 조직판막은 수명이 10~15년으로 짧아 젊은 환자에서는 재수술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게 단점이었다. 최근 많이 시행하는 대동맥 판막 스텐트 시술 역시 조직판막이기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재시술이 필요해 고령 환자 중심으로 시술해왔다.

   

ROSS수술은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미국심장학회지 저널인 ‘JACC’에 2017년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ROSS수술 후 20년 장기생존율이 95%로, 기계판막으로 수술한 그룹의 68%보다 월등히 높게 나오는 등 ROSS 수술의 우수성을 밝혀주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많이 발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부 메이저 병원을 중심으로 ROSS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 환자들의 경우 임신을 고려해 항혈전제를 3~6개월만 복용하면 되는 조직판막을 우선 사용한 뒤 10~15년 후 기계판막으로 재수술을 시행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ROSS수술의 도입으로 재수술 확률이 낮은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다. 

   

ROSS수술은 폐동맥 판막과 대동맥 판막을 동시에 수술을 진행하기 때문에 의료진의 숙련된 기술과 조직 관리가 필수적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극소수 병원 의료진이 성인 ROSS수술을 시행했지만, 당시에는 동종판막 획득 후 보관하는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 감염 우려가 있었고, 기계판막과 조직판막 등의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수술이 중단된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기증받은 동종 판막조직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됐고, 환자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재수술에 대한 부담이나 항응고제 복용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수술 방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내 조직은행을 통해 심장이식 수혜자로부터 기증받은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을 정해진 처리 과정에 따라 안전하게 보관하고 환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조직 처리 과정은 약 8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항생제 첨가 및 냉동 처리 과정 등을 통해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진다. 매 과정마다 미생물 검사를 시행하며, 검사에 문제가 없다면 최대 10년 동안 보관할 수 있다.

   김호진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서울아산병원이 20년간 멈춰왔던 ROSS수술을 국내에서 재개한 데에는 김 교수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는 2021년부터 2년간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병원(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임상 전임의로 근무하며 ROSS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크리스토퍼 말레이즈리(Christopher Malaisrie) 교수에게 직접 수술 절차를 배우며 심화된 기술을 습득했다.

   

2023년 국내로 복귀한 뒤 심장이식 수술을 시행할 때마다 수혜자의 심장에서 온전한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을 확보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직접 조직 처리 작업을 진행해왔다.

   

또 수술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돼지 심장으로 ROSS수술 시뮬레이션을 다섯 차례나 진행하며 첫 수술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철저한 준비 과정과 학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크리스토퍼 말레이즈리 교수의 지원으로 지난 8월 말 첫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환자는 수술 후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부작용이나 합병증 없이 건강한 상태다.

   

ROSS수술이 미국과 유럽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성공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의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심장이식 수술 건수가 제한적이고, 기증이 적합한 심장 선별 또한 까다롭기 때문에 조직을 획득하고 이를 안전하게 보관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다.

   

기증된 동종판막조직은 면역거부반응 최소화 및 안전한 보관을 위해 세척 및 항생제 처리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감염이 발견되면 동종판막조직을 폐기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기증자의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을 제품화하고, 각 병원들은 이를 이용한 ROSS수술을 시행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제품이 고가인데다 인체조직으로 분류돼 수입 절차조차 확립되지 않아 아직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과거 한국공공조직은행에서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수요가 부족해 현재는 제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체조직에 대한 기증이 활발하지 않고 조직 획득 및 처리 과정이 쉽지 않다보니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의 확보 및 보관이 국내 ROSS수술 보급 및 확대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는 “ROSS수술이 재도입됨에 따라 젊은 대동맥 판막 질환 환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며 “폐동맥 동종판막조직의 확보를 포함한 ROSS수술의 안정적인 시행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 최상의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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