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 껌을 씹는 간단한 처방으로 수술 후 자주 발생하는 흔한 합병증인 메스꺼움과 구토를 경감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전체 수술 환자 중 약 30% 가량이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술 후 오심 및 구토감(Postoperative Nausea and Vomitting, PONV)은 환자들의 회복을 더디게 하고 치료비용을 높이는 원인이다. 최근 좁은 수술공간의 시야 확보를 위해 수술 중 복강 안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최소침습수술이 증가하면서 PONV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고현정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교신저자)·채민석(제1저자) 교수팀은 양성 난소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복강경 로봇수술을 받은 여성 환자 88명을 분석한 결과, 수술 직전 15분간 무설탕 껌을 씹은 그룹 44명에서 부작용 없이 항구토제의 필요성이 감소했다고 26일 밝혔다.
수술 후 오심과 구토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합병증은 아니지만 환자를 괴롭히는 불쾌한 증상 중 하나다. 임상적 위험인자(여성, 흡연자, 멀미 경험이 있는 환자)가 있는 경우에서는 발생 비율이 70% 이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위험인자가 하나라도 존재하는 환자들에게는 항구토제 처방이나 프로포폴을 활용한 마취를 비롯한 다양한 예방적 조치가 권장되고 있다.
구토감을 예방하기 위해 이같은 약물 투여 외에 비약물적인 개입도 포함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껌 씹기’다. 의학계에서 권위가 높은 ‘코크란 리뷰’(Cochrane Review)를 비롯한 여러 메타 연구에 따르면, 수술 후 껌 씹기는 위장관운동을 증가시켜 장꼬임을 방지하고 회복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음이 인정돼 왔다.
이에 착안한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이제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던 수술 ‘후’ 껌 씹기가 아닌, 수술 ‘전’ 껌 씹기의 효능을 평가했다. 피험자를 실험군(수술 전 껌을 씹은 그룹)과 대조군(수술 전 껌을 씹지 않은 그룹)으로 무작위 배정하고 실험군에게 수술 직전 통제된 환경 하에 15분간 무설탕 껌을 씹게 했다. 수술 후 결과를 평가하는 모든 의료진들은 환자 분류 상황을 알지 못하도록 ‘전향적 단일 맹검 무작위 대조시험’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팀은 수술 전 껌 씹기의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했다. 실험군은 경증~중등도 PONV 환자에서 구토방지제를 투여한 비율이 20.5%(9명)로 대조군(4.5%, 2명)에 비해 높았다. 하지만 심각한 PONV에서 구토 후유증으로 인한 2차 항구토제 투여 비율은 각각 47.7%(21명), 84.1%(37명)으로 월등하게 실험군이 적었다.
한편 2014년 미국마취학회(ASA, American Society of Anesthesiologists)는 연례회의를 통해 수술 전 금식 기간에 껌을 씹는 게 수술 후 합병증을 증가시키지 않고 안전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23년에는 ‘수술 전 단식을 위한 진료지침’ 개정판을 통해 건강한 성인이 수술 전 껌을 씹더라도 수술을 연기할 필요가 없으며, 특별히 흡인성 폐렴의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연구를 주도한 고현정 교수는 “최소침습수술인 로봇 및 복강경 수술은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복강 내 이산화탄소(CO₂)를 주입하는 수술 방식으로 인해 환자들이 구토를 경험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문제를 비약물적 개입으로 경감하는 게 연구의 주안점이었다”며 “수술 전 금식기간에 환자 자의적으로 껌을 씹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는 아직까지 다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의료진에 의해 잘 통제된 환경에서 계획적으로 껌을 씹는 것은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다양한 후속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Medicina’(IF=9.48)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