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헌(陶軒) 윤대원 학교법인 일송학원(한림대학교) 이사장이 25일 오후 4시 20분 경기 안양시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타고난 외과의사, 국내 최초 췌장이식수술 성공 … 의학발전에 공헌
고인은 1945년 6월 23일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윤덕선 일송학원 설립자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뒤 가톨릭의과대학에서 의학 석·박사를 마치고 1979년 미국 콜롬비아대 외과학교실에서 장기이식과 첨단의학 연구를 섭렵했다.
1980년 귀국 후 그는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외과에서 환자를 돌보며 1985년 한림대의료원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1987년에는 국내 최초로 췌장이식수술에 성공해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한국 의학 발전에 공헌했다.
‘한림대의료원’의 완성 …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안양 성심병원 설립 추진
그는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장, 한림대의료원장을 거치며 의술보급에 매진하다 1989년 일송학원 2대 이사장에 취임하며 한림대의료원, 복지관,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를 본격 지휘했다.
그는 아직 의술 보급이 원활하지 못한 국내에 더 많은 환자를 돌보기 위한 대형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1996년 3월, 선친인 윤덕선 설립자가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하자 이런 드라이브는 가시화됐다. 1997년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꿈을 좇으며 1999년 안양시 평촌에 한림대 성심병원을 개원했다. 2013년엔 당시 미개척 신도시인 화성시 동탄에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을 열었다. 이로써 일송학원 산하 한림대의료원의 5개 대학병원 체제(성심병원, 한강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동탄성심병원)가 완성됐다. 현재 성심병원이 본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배움이 국력과 인류 행복 추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론 하에 1990년 한림과학원 설립, 1997년 한국컨벤션산업경영연구원 개설, 2004년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설립 등을 통해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그의 국가 공헌에 대한 노력은 1992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 제 15927호 수상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 내실을 챙기며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경영신념인 ‘정직’에 있었다. 그의 경영을 함께하던 능력자들과 뜻을 모으고 그들을 설득할 때 적용하던 그만의 원칙이었다. 생전 윤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자주 말해왔다. “내가 정직하면 된다. 자신에게 엄격해지도록 정직하면 스스로 자유롭다.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에는 어떤 방패나 울타리도 필요하지 않다. 거짓없는 정직만이 나를 자유인으로 만들어준다. 결국 정직은 행복을 불러온다.”
‘한없는 인간애’ 기반으로 의료사회복지 대폭 확장
어렸을 때부터 생물과 자연에 경외심을 느끼고 인간을 포함한 생명에 깊은 애정을 느꼈던 그는 경영기간 동안 의료사회복지 확대에 특히 집중했다. 1974년 성심자선병원이 개원했을 때 부원장으로서 영세민을 위한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1991년부터 한국노인보건 의료센터, 성심복지관(현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안양복지관 등을 설립 및 개관했다. 또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화성시 나래울종합사회복지관, 동탄노인복지관 등을 위탁운영했다. 이들 기관은 일송학원 품에서 20년 넘도록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IMF외환위기 당시에는 노숙자, 영세민, 결식아동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2000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민을 위해 2000만원을 희사했는데, 이 금액이 종자돈이 돼 ‘SOS 기금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는 2006년 정부가 ‘긴급복지지원법’을 제정해 긴급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 시행에 초석이 됐다.
적자에도 인술 기반으로 화상치료 지속… 해외화상환자 무료진료비만 18억2430만원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은 국내 화상치료의 메카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화상 전문병원이며 입체적 치료를 시행하고자 화상환자만을 위한 화상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화상은 경제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발생률이 낮아지는 질환이다. 우리나라 환자도 점차 줄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당하면 그 흉터가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으며 회복을 위한 수술 및 치료가 수십 년간 필요할 수도 있다.
윤대원 이사장은 지속 적자를 기록하는 중에도 인류의 행복과 인술을 위해 꾸준히 투자와 관심을 쏟았다. 고인은 생전에 한강성심병원의 존재 이유로 “생명을 방치할 수는 없다. 생지옥 같은 화상치료를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화상환자는 급한 치료 후에도 일상회복까지는 재활 등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당연히 생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고인은 2008년 화상환자 사회복지만을 위한 한림화상재단을 설립했다. 환자의 치료비 후원은 물론, 소아 환자가 흉터와 치료 탓에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해 학업을 이을 수 있는 화상병원학교를 운영한다. 화상병원학교 이용자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1만2755명에 달한다. 현지 의료기술 및 장비의 한계로 치료받지 못하는 해외 환자를 위해 현지에서 또는 해외 환자를 국내로 초청해 무료치료를 시행하기도 했다. 2018년까지 베트남 등 8개국 화상환자에게 지원된 진료비는 18억2430만원에 달한다.
‘응전자’ 윤대원, 병원 스마트화 및 대학 글로컬화 실현
인류행복과 인간애를 최우선 가치로 삼으면서도 윤대원 이사장은 ‘시대의 강력한 응전자’로서 기능할 것을 지속 추구했다. 2003년 ‘마이티 한림’(Mighty Hallym)을 선포하고 최고의 진료, 연구, 교육기관으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세부 프로젝트를 다수 시행한다.
2019년에는 4차산업혁명 아래 디지털 전환 시대에 부응키 위해 법인 산하 기관별 10년간의 발전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병원의 ‘스마트화’(smartization)를 통해 시대 변화를 선도했다. 그의 가치 아래 일송학원은 각종 의료 예측모델을 개발하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을 이용한 미래 의료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또 한림대는 21세기 대학 교육의 대변혁을 주도하며 지역과 대학이 함께 발전하는 K-고등교육모델을 선도해 2023년 교육부의 ‘글로컬 사업’에 최종 선정, 1000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2022년 10월에는 한림대 개교 40주년을 맞아 인문사회학과 의과학, ICT, 바이오첨단과학을 통섭하기 위해 도헌학술원을 개원했다.
세계로 눈을 돌린 ‘마이티 글로벌 플레이어’
동시에 세계화 시대를 선도하고 혁신하기 위해 윤 이사장은 차별적 수월성으로 전문화 수준을 높여 ‘마이티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리란 비전을 갖는다. 이는 2004년부터 미국 콜롬비아의과대학, 코넬의과대학,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 조지워싱턴 의과대학, UCLA(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일본 나가사키 대학, 이탈리아 파도바대학,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등과 긴밀한 의료학술 파트너십으로 실현됐다. 이후 일송학원은 매년 파트너 대학들과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양국 최신의료지론을 공유하고 기술발전을 위해 협력해왔다.
국제 파트너십 확장에 대한 결과로 윤 이사장은 2023년 웁살라대학교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린네 골드메달’을 수상한다. 이는 스웨덴과 뚜렷한 학술교류가 없던 2000년대 당시 윤 이사장이 이끄는 한림대 및 한림대의료원 팀이 스웨덴과 학술교류의 물꼬를 트고, 그 교류가 단순 협약 차원이 아닌 실제 양국의 의학발전과 국제교류 가교역할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수상이었다.
안데스 하그펠트 웁살라대학교 총장은 린네메달 수여식에서 “우리의 가장 큰 영광 중 하나인 린네메달 수여를 통해 윤대원 이사장이 우리 대학과의 교류뿐 아니라 국가 간의 긴밀한 유대 형성에 큰 공헌을 세운 것을 인정하고자 한다”며 “한 사람의 업적이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 한 사람의 노력과 능력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말했다.
고인의 장례는 학교법인장으로 치르며, 빈소는 한림대 성심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 후 고인은 경기 남양주시 금곡면 선영에 안장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장남 윤희성 학교법인 일송학원 상임이사, 차남 윤희태 도움박물관 관장, 장녀 윤은주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있다.
윤대원 이사장은 생전에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 대학교와 의료원의 활동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자신이 언론에 나서는 것을 신독(愼獨)의 차원에서 삼간 것으로 보인다. 의료경영의 달인이면서 학술을 숭상하고 인간애를 담은 인술을 적절하게 베풀다가 세상을 하직한 것을 가치 높게 평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