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발표된 영국 항생제 내성 보고서는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고,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보인 슈퍼박테리아에 효과적인 항생제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0월 1일부터 건강보험급여 약제로 뒤늦게 등재된 한국MSD의 슈퍼항생제 ‘저박사주’(ZERBAXA 성분명 세프톨로잔·타조박탐, ceftolozane·tazobactam)는 기존 항생제와 비교해 비열등성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다제내성균을 제압할 힘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의료현장의 항생제 내성 문제를 풀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MSD는 27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저박사의 급여등재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저박사의 향후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저박사는 10월부터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복잡성 복강 내 감염(메트로니다졸과 병용), 복잡성 요로감염(신우신염 포함), 원내 감염 폐렴(인공호흡기 관련 폐렴 포함) 치료에 있어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실패한 경우 또는 다제내성 녹농균이 증명된 경우 요양급여를 인정받는다. 급여가는 1병에 6만98원이다.
복잡성 복강 내 감염, 복잡성 요로감염에는 8시간마다 하루에 총 3병이 투여된다. 원내 감염 폐렴 치료에는 8시간마다 하루에 총 6병이 투여된다.
MSD에 따르면 다제내성균에 대한 저박사의 항생 효과가 기존 표준치료에 비해 2배에 달한다. 하지만 보험약가는 기존 약제의 10배에 달한다. 보험약가 등재에 필수적인 경제성 평가에서 2019년 '비용효과성 불분명'으로 비급여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아주 위중한 환자가 아니라면 다른 부작용이 큰 항생제를 투여받았고, 필요에 따라 환자 동의 아래 비급여로 저박사를 투여받았다.
MSD는 지난 6월 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으면서 경제성 평가를 면제받았다. 항생제 다제내성을 해결하는 사회적 비용은 단지 약제의 비용효율성으로 산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으며 결국 심평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항생제 오남용으로 전세계적으로 항생제 다제내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저런 항생제를 써봐도 효과가 없는 위중한 감염증 환자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다양한 항생제 내성 가운데 저박사가 타깃하는 항생제 내성은 카바페넴 내성 녹농균(CRPA, carbapenem-resistant Pseudomonas aeruginosa)와 광범위 베타락타마제(ESBL, Extended-spectrum beta-lactamases) 생성 장내세균이다.
저박사는 항녹농균 효과를 보이는 새로운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인 세프톨로잔과 입증된 베타락탐 분해효소 저해제인 타조박탐의 복합된 항생제이다.
녹농균은 중환자에게 요로감염, 인공호흡기관련 폐렴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의료 관련 감염 원인균으로 국내 중환자실에서 카바페넴계 항생제인 이미페넴에 대한 녹농균의 내성 비율은 50.3%에 달한다. 국내 2차 종합병원 및 상급병원에서 이미페넴 내성 녹농균의 비율은 약 35%였으며, 중환자실에서는 59.2%에 달했다.
카바페넴 내성 녹농균에 감염될 경우 카바페넴 감수성이 있는 녹농균 감염 대비 사망 위험이 약 3배 높아 카바페넴 사용을 줄이고 내성의 증가를 막을 수 있는 치료 옵션의 확보가 중요하다.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카바페넴 내성 녹농균을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병원균 중 하나로 지정했다.
저박사는 임상을 통해 녹농균을 포함한 유효균종에 대해 원내감염폐렴(인공호흡기 관련 폐렴 포함)과 복잡성 복강내 감염(메트로니다졸과 병용 시)에서 카바페넴계 항생제인 메로페넴과 비교해 비열등한 임상적 완치율을 나타냈다.
추은주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저박사는 하기도 감염으로 입원한 국내 중환자 대상 녹농균에 대해 97.1%의 높은 감수성과 카바페넴계 항생제인 메로페넴, 피페라실린-타조박탐에 내성이 있는 녹농균에서도 모두 90% 이상의 높은 감수성을 나타냈다”며 “다제내성 녹농균으로 인해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 옵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즉 기존 항생제와 비열등성을 확인한 저박사가 중증 감염 환자에서 마지막 치료대안으로 고려되는 카바페넴계 항생제로도 커버할 수 없을 경우 최종 게이트 키퍼로 활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는 카바페넴계 항생제 대체제로서 중증 환자에게 선제적으로 투여함으로써 카바페넴계 내성을 원천 차단할 수도 있다.
그동안 국내서는 항생제를 비급여로 쓰는 데 대한 환자의 거부감이 커서 다제내성 녹농균이나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MRAB; Multidrug-resistant Acinetobacter baumannii) 같은 균에는 콜리스틴 (Colistin, 또는 polymyxin E) 같은 저가 항생제를 썼다. 콜리스틴은 1947년에 발굴돼 1970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은 재래식 무기다. 하지만 지금의 개량형 페니실린, 세팔로스포린계, 카르바페넴계, 반토마이신계, 퀴놀론계 등에 두루 내성을 갖는 균종들이 출연하면서 오히려 더 잘 듣는 무기로 통하고 있다. 다만 이마저도 2015년부터 내성이 출현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심각한 것은 신독성이 강해 고령자나 전신건강이 취약한 환자에게 쓰기 부담스럽다는 게 추 교수의 설명이다.
추 교수는 “저박사가 보통의 그람음성균에 대해 카바페넴을 대체하는 것보다 카바페넴의 효능이 떨어지는 녹농균이나 다제내성균에 대해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저박사를 모든 카바페넴 내성균에 대응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중증 녹농균 환자에게 사용할 가능성이 높고.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 균종(CRE, 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e, CRE)을 줄이는 효과와 카바페넴을 일부 대체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중환자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약이 한정된 상황에서 최선의 무기였던 카바페넴을 사용했지만 최근 7년 동안 내성이 2배 이상 증가했다”며 “고령화로 인한 중증 노인 환자의 요양병원 입원 증가, 최근 3년간 코로나19 치료과정에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항생제 내성 증가 등을 감안할 때 의료계의 항생제 적정관리 노력과 저박사의 등장 필요성이 중시된다”고 강조했다. 최신 임상현장에서 평가된 리얼월드데이터(RWD)에 따르면 저박사의 치료 성공률은 70% 이상을 웃돌고, 치사율은 20% 이하로 집계됐다. 환자 대부분이 중증 면역취약 감염환자임을 감안할 때 결코 낮지 않은 수치라는 게 MSD의 설명이다.
저박사는 2014년 12월 19일에 미국, 2015년 9월 18일 유럽연합, 2017년 4월 7일 한국에서 승인됐다. 2018년 5월 1일 국내서 발매됐지만 급여 약제로 환자 손에 닿기까지 무려 4년 5개월이 걸렸다. 보건당국은 항생제 시장 진입 허들을 높여 약제비도 절감하고 신종 항생제를 아껴써야 한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신종 항생제 개발은 더뎌지고 있다. 신약개발에 최소 15억달러와 10년 여의 기간과 5000개의 임상의료기관을 추적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항생제는 1회 치료용이라 만성질환약처럼 장기적인 수익을 올릴 수 없고, 암이나 희귀질환에 비하면 약가가 높은 편도 아니어서 제약사들이 개발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FDA가 매년 30~50여종의 신약을 허가하지만 이 중 항생제는 1~3종에 불과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