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스트레스로부터 모처럼 자유로워진 일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통으로 주말 휴식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사무실만 들어가면 머리가 지끈지끈 통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 실내에만 들어오면 두통이 발생 및 악화되는 이유는 온도차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인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 실내외 온도차는 5~7도 정도다. 하지만 실내에서 문을 꽉 닫고 난방기를 가동하면 평균 실내온도는 20~24도 이상으로 겨울철 평균 실외기온인 0~2도와 20도 가까이 차이난다. 추운 밖에 있다가 따뜻한 실내에 들어오면 뇌혈관 혈류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두통이 생길 수 있다.
찬바람이 들어올까 창문과 문은 꼭꼭 닫거나 아예 밀폐시키기도 한다. 온종일 이러한 폐쇄된 장소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두통이나 코가 막히는 듯한 불편함을 호소한다. 사무실 내에는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오염물질들이 있다. 난방장치의 곰팡이, 바닥 카페트, 복사기 등 사무기기에서 나오는 각종 오염물질, 단열제와 바닥 등 건축자제에서 갖가지 화학물질과 전자파 등이 눈에 보이지 않게 사무실의 근무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상헌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혹은 따뜻한 곳에서 추운 곳으로 이동하면 뇌혈관 압력의 균형이 깨져 두통이 생길 확률이 높다”며 “두통 외에 눈·코·목 등이 건조해져 따가우면서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어지럽거나, 기억력이 감퇴해 업무 또는 휴식의 효율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 증상은 실내에 있을 때 심해지고, 밖으로 나오면 금세 괜찮아지는 양상을 나타내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의학계에선 겨울철 과도한 난방과 이로 인한 실내외 온도차에 따른 두통과 피로감 등 증상을 통틀어 ‘빌딩증후군(building syndrome)’, ‘밀폐건물증후군’, ‘난방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흔히 알려진 새집증후군이나 헌집증후군 같은 ‘병든집증후군(SHS, Sick House Syndrome)’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실내외 온도차 외에 라돈, 포름알데하이드, 석면, 담배연기, 곰팡이, 가스 등이 빌딩증후군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보통 사무실, 아파트, 지하상가 등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장소에서 환기 없이 세 시간 이상 머물면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눈과 코가 따가워진다. 신축 건물일 경우 건축자재, 가구 접착제, 단열제 등에서 나온 휘발성 물질이 호흡기와 신경계를 자극해 증세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빌딩증후군의 가장 흔한 증상인 두통은 보통 긴장형 두통으로 분류된다. 보통 왼쪽과 오른쪽이 동시에 아픈 양측성 통증으로 후두부, 후경부, 측두골, 전두골 등 광범위하게 통증이 뻗쳐온다. 머리를 쥐어짜거나, 내려 누르거나, 머리가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거나, 타이트한 띠를 두른 것 같은 증상이 동반된다.
긴장형 두통은 삽화 긴장형 두통, 만성 긴장형 두통, 개연 긴장형 두통으로 세분화된다. 삽화 긴장형 두통은 정도가 경미해 질환으로 보기는 애매하고 일상생활에서 불편과 짜증을 유발하는 증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주로 머리가 띠로 동여맨 것처럼 조이면서 묵직하게 아프다. 주로 오전보다 오후에 발생하고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만성 긴장형 두통은 삽화 긴장형 두통이 3개월 이상 지속돼 한 달 평균 15일, 1년에 180일 이상 발현되는 상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두통일기를 작성, 통증 발현 빈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개연 긴장형 두통은 긴장형 두통 중 삽화 및 만성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통칭한다.
이상헌 교수는 “현대인 대부분이 하루 중 80% 이상을 집, 사무실, 자동차 같은 실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당장 두통 같은 증상이 없더라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심한 두통과 함께 열이 난다면 일반 긴장성 두통이 아닌 뇌수막염, 뇌염 등 중증 뇌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뇌질환은 대개 심한 두통과 함께 38도 이상의 고열과 오한, 구역, 구토 등을 동반하며 간혹 의식저하나 경련발작이 동반된다. 이밖에 중년 이상에서 새로 발생한 두통, 점진적으로 심해지는 두통, 수 개월간 지속되는 두통은 뇌종양 등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난방기 사용이 위험한 또다른 이유로는 집먼지진드기 창궐을 꼽을 수 있다. 0.3~0.5mm 크기의 이 절지동물은 섭씨 25~30도로 실내온도가 올라갈수록 더욱 활개를 친다. 평소 빨래를 모았다 한 번에 하거나, 햇볕에 잘 말리지 않으면 진드기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먼지 1g에 집먼지진드기가 100마리 이상이면 비염이나 천식 등 알레르기질환, 500마리 이상이면 알레르기로 인한 발작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2013년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국내 일반 가정의 헝겊 소파에는 먼지 1g당 집먼지진드기 403마리, 카펫은 317마리, 담요는 298마리, 이불은 282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어 상당수 가정이 알레르기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진드기가 알레르기질환을 일으키는 이유는 집먼지진드기의 배설물, 사체, 알, 유충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항원)이 많기 때문이다. 집먼지진드기는 하루에 약 20개, 평생 동안 약 2000개의 특이 단백질 덩어리인 똥을 배설한다. 또 진드기가 죽으면 작은 가루로 부서져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코로 들어오거나 눈과 피부에 접촉해 알레르기질환을 유발한다.
빌딩증후군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겨울철 난방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다. 실내온도가 20도를 넘지 않도록 난방기 사용을 조절하는 대신 카디건 같은 겉옷, 무릎담요, 실내화 등 보온용품으로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외부활동을 마치고 실내로 들어온 뒤 빨리 몸을 높이고 싶단 생각에 난방기를 강하게 가동하면 급격한 온도차로 면역력이 약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춥더라도 주기적으로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오후에 잠시 난방 기구를 끄고 창문을 열어두고, 적정 습도인 40~60%를 유지하기 위해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습도를 조절해주는 식물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식물 중에선 인도고무나무, 아이비처럼 잎이 넓은 식물이 실내 환경 개선에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