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에 신장질환의 위험 요인이 늘어나면서 환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초기에 아무런 증상이 없어 인지하기 어려운 데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신장질환에 대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고혈압과 당뇨는 만성신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이러한 기저질환이 잘 치료되지 못하면 신장 기능이 점차 떨어져 말기신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불어 신장 기능이 떨어져 혈압을 조절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처방받은 약을 거르지 말고 꾸준히 복용하면서 수시로 혈압과 혈당 수치를 점검해 고혈압과 당뇨병을 잘 조절하는 것이 신장 건강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신장 기능이 나쁘면 약물도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약물은 신장을 통해 배설된다. 이 중 신장 기능을 해칠 수 있는 약물이 있는데, 종합감기약이나 근육통약에 흔히 포함되는 진통소염제가 대표적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장 기능이 나쁘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 외에 감염증에 사용하는 항생제 중에서도 일부 약제에 신독성이 있고, CT 같은 검사에 사용하는 조영제 역시 신장 기능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신장 기능이 크게 떨어졌다면 이 같은 약물을 사용하기 전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신장은 정상 기능의 50% 이상 감소해도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조기에 발견하거나 진단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정기검진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에도 신장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소변검사 시 단백뇨가 있거나 혈액검사 시 사구체 여과율 감소 소견이 보인다면 반드시 신장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심장에 병이 생기면 신장이 위태롭다
심장과 신장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듯 하지만, '부부'와 같은 장기다. 두 장기 모두 우리 몸의 혈액순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심장에 병이 생기면 신장이 위태롭고, 신장에 병이 있으면 심장이 위험하다.
두 장기 모두 병이 생긴 것을 '심신(心腎)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 개념은 2004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김명규 고려대안암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심장과 신장은 함께 망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초기에는 증상이 없고 각각 다른 진료과에서 환자를 보기 때문에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심장병 환자는 언제든 신장이 나빠질 수 있고, 신장병 환자는 언제든 심장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장-신장 서로 영향 미치는 관계심장은 펌프질을 통해 온몸의 장기로 혈액을 보낸다. 신장은 대부분 혈관으로 구성된 혈관 덩어리로, 심장에서 박출된 혈액의 25%를 공급받는다. 심장의 기능이 떨어져 펌프 작용이 잘 안돼 신장으로 혈액이 충분히 안 가면 신장 기능이 떨어진다.
심장과 신장은 혈액순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두 장기는 서로 영향을 미쳐 한 장기가 병들면 다른 장기도 병들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대비해야 한다.
신장은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내 혈액을 깨끗하게 한다. 신장이 망가지면 노폐물이 걸러지지 않아 요독증, 고인산혈증 등이 생길 위험이 있다. 이는 모두 심장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신장에서는 적혈구를 만드는 호르몬, 혈관을 수축하게 해 혈액 순환을 돕는 호르몬이 만들어진다. 이런 호르몬 분비가 제대로 안되면 역시 심장에 부담을 준다.
실제 급성 심부전 환자의 약 30%에서 신장 기능 저하가 동반되며, 만성 신부전 환자의 사망 원인 절반이 심혈관계 질환이라는 대한의학회지 보고가 있다. 또한 심장·신장을 나빠지게 하는 원인 질환이 고혈압과 당뇨병 등으로 같다. 증상 없어도 정기 검진 필수심장이나 신장 둘 중 한가지 질환이라도 앓고 있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나머지 장기의 검사를 해봐야 한다.
심장병으로 진료를 보는 사람은 소변이나 혈액을 통한 신장 기능 검사를 해보고, 신장병이 있는 사람은 심부전이나 허혈성 심장질환 유무를 가리기 위해 심전도 검사나 심장 초음파를 해볼 것을 권한다. 신정호 중앙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특히 신장은 간이 소변검사에서 단백뇨, 혈뇨가 나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심장병을 앓고 있다면 신장 정밀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현재 심신증후군에 좋은 명약은 없다. 다만 흔히 쓰는 혈압약 중에 신장 보호 효과가 있는 약들이 있다. 이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 등이다. 김명규 교수는 "최근에 SGLT2억제제 같은 당뇨병 약 중에 심장뿐 아니라 신장 기능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나온 약이 있지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정기 검진과 함께, 심장과 신장에 좋은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한다. 신정호 교수는 "식사를 싱겁게 하고, 고단백·고지방 음식보다는 채소·과일 위주로 식단을 짜라"며 "운동을 통해 체중 관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콩팥병 환자 물 과일 무작정 마시고 먹으면 毒
건강한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여름 무더위는 신장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는 더 위협적이다. 특히 덥거나 목이 마르다고 해서 물, 과일 등을 무작정 섭취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여름철 갈증을 느낄 땐 수박, 참외, 멜론처럼 단맛 도는 시원한 과일 생각이 절실하다. 하지만 만성 콩팥병 환자는 과일에 함유된 칼륨을 배설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고칼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나나, 자두도 칼륨 함량이 높아 최소화하는 게 좋다. 혈중 칼륨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근육의 힘이 약해지면서 무기력증이 동반되고 심할 경우 부정맥과 심장마비이 유발된다.
특히 다이어트식품으로 인기가 많은 바나나는 칼륨 함량이 100g당 약 380㎎에 달해 과일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푸른 채소나 해조류 등 칼륨이 다량 함유된 음식을 먹을 땐 물에 살짝 데쳐 칼륨 함유량을 줄일 수 있다. 가지, 당근, 배추, 콩나물, 오이, 깻잎 등은 상대적으로 칼륨 함량이 적다.
줄기보다는 잎에 칼륨이 덜 들어 있다.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도 삼가야 한다.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조절 능력이 저하된 상태여서 땀을 많이 흘린 후 맹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이런 경우 두통, 구역질, 현기증이 유발되고 체중이 늘면서 폐나 뇌 같은 장기에 부종이 생겨 호흡곤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물은 하루 1ℓ 이내로 갈증 날 때에만 조금씩 마시고, 수분 섭취량을 조절하기 위해 저염식 식단을 유지하도록 한다.
소변색이 진한 갈색일 땐 소변이 농축돼 있다는 뜻이므로 물을 마셔 희석시키도록 한다. 반면 옅은 갈색 또는 노란색을 띨 때는 적당량의 수분을 섭취하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물을 더 마시지 않아도 된다. 갈증해소에 도움된다고 알려진 이온음료는 많은 양의 칼륨이 들어 있어 전해질 조절 능력이 부족한 만성 콩팥병 환자는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게 좋다.
기력 보충을 위해 약물을 복용할 때에도 약이 콩팥에 무리를 주지는 않을지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만성 콩팥병 환자는 대다수가 고령층인 데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당뇨병이나 심장병 등 만성질환을 앓아 여러 약물을 동시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약물간 상호작용으로 인해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지 확인하고 복용 방법 및 횟수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신장 기능이 나쁘면 뼈 건강도 빨간불
신장(콩팥)기능이 나쁜 사람은 골다공증 위험이 크므로 뼈(骨) 건강을 신경써야 한다. 신장기능이 떨어지면 뼈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해질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실제로 만성 신장질환자는 골다공증 유병률이 일반인보다 3~4배로 높다"고 말했다.
우리 몸의 뼈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건물을 짓는 과정과 비슷하다. 칼슘, 인 등 무기질이 벽돌과 같고, 이들을 달라붙게 해주는 비타민D는 시멘트 역할을 한다.하지만 신장기능이 나빠지면 칼슘과 인의 재흡수가 잘 안되고, 비타민D가 제 역할을 못한다.
비타민D가 제 기능을 하려면 '활성형 비타민D'로 변해야 하는데, 이는 피부와 신장에서만 이뤄진다. 정병하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활성형 비타민D는 칼슘과 인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며 "신장기능이 떨어져 활성형 비타민D 결핍 상태가 되면 칼슘이 혈액 속으로 흘러나와 두 무기질 간 균형이 깨지고, 결국 뼈 건강이 나빠진다"고 말했다.
만성 신장질환자라면 무기질과 비타민D 섭취량을 신경써야 한다. 정병하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은 인 섭취량이 많기 때문에 칼슘과 인 비율을 1대1로 맞춰 식단을 짜야 한다"며 "일반 영양제보다는 전문의 처방 치료제를 복용하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운동은 일조량이 많은 11~2시 사이에 30분 이상 '빨리 걷기'가 좋다. 안철우 교수는 "뼈에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 골 형성에 도움을 주는 만큼, 일반적인 속도보다는 평소보다 조금 빨리 걷는 게 권장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