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병 신약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이 지난 6월 초 유효성 논란 끝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데 자극받아 릴리도 지난 26일 FDA에 이 약과 같은 메커니즘을 가진 도나네맙(donanemab, 개발코드명 LY3002813)의 신약승인을 요청했다.
릴리는 이날 올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FDA에 순차심사를 위한 자료 순차제출(rolling submission)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릴리는 애듀헬름이 간 길을 따라 가속승인 절차를 통해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허가받기 위한 단계를 시작했다.
릴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아나트 아슈케나지(Anat Ashkenazi)는 “앞으로 몇 달 안에 신약신청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 하반기에 FDA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앞서 지난 1월 릴리는 도나네맙의 2상 데이터를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게재했다. 타우단백질 및 아밀로이드베타가 뇌에 축적된 257명을 대상으로 18개월에 걸쳐 진행한 임상에서 도나네맙 투여군(131명)은 통합 알츠하이머병 평가 척도(Integrated Alzheimer’s Disease Rating Scale, iADRS, 범위는 0~144점, 낮을수록 인지 및 기능 손상 정도가 높음) 점수가 6.86점 감소한 반면 위약 투여군(126명)은 10.06 하락했다.
그러나 평가지표로 선택된 iADRS는 이미 잘 확립된 ADAS-Cog 및 ADCS-iADL의 점수를 결합한 것이었다. 릴리가 개발하다가 경증·중등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EXPEDITION3 대규모 3상 연구에서 2016년 11월 실패한 결과를 내놓은 솔라네주맙(solanezumab)의 경우 ADAS-cog11(범위 0~70점, 점수가 높을수록 중증 인지장애를 의미)라는 평가지료를 충족하지 못했다. 이밖에도 솔라네주맙은 임상치매평가척도-상자점수 합계(Clinical Dementia Rating Scale–Sum of Boxes, CDR-SB) 평가지표도 만족하지 못했다. 솔라네주맙이 오로지 충족한 평가지표는 iADRS뿐이었다. 따라서 도나네맙이 내세운 지표가 신뢰를 갖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 제약사들이 자꾸만 FDA 승인에 도전하는 것은 애듀헬름이 승인을 받자 ‘그보다 나은 우리 약이 승인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정맥주사제인 도나네맙은 2상 임상에서 목표했던대로 환자들의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를 상당량 없앤 것으로도 확인됐다. 릴리는 당초 2023년까지는 FDA에 신약승인신청을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약 1500명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결과가 2023년에 나오면 정식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미흡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FDA 승인을 얻어내자 릴리의 계산도 빨라졌다.
릴리는 이를 의식해 26일 초기 증상이 있는 알츠하이머병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 제거효과를 ‘애듀헬름’과 직접 비교(head-to-head)하는 임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애듀헬름의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더 나은 지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거의 포기할 뻔한’ 도나네맙 신약개발 의지에 불을 당긴 것이다.
릴리, 애듀헬름 모방 ‘드라마’ 연출? … 임상적 유효성은 뒷전, 아밀로이드 제거효과만 평가
2상에서 아밀로이드 제거 입증했지만 유효성 입증엔 미흡 … 투자한 돈 뽑겠다는 ‘상혼’ 만발
릴리의 최고과학 및 의학 책임자인 다니엘 스코브론스키(Daniel Skovronsky)는 만약 올해 안에 FDA가 도나네맙의 가속승인 경로를 허락한다면 2023년 중반까지 이 약의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확증 연구를 위해 9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낸 바이오젠의 애듀헬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스코브론스키는 “확정적인 3상 데이터가 없는 경우 가속승인의 가능성은 희박다”면서도 “도나네맙을 애듀헬름과 1대1로 비교하는 TRAILBLAZER-ALZ 4로 명명된 중추적 3상 시험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바이오젠의 유효성 논란에도 낙담하지 않고 애듀헬름의 승인 사례를 모델로 드라마를 연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스코브론스키에 따르면 이 임상 연구의 초기 1차 평가지표는 결과는 2022년 하반기에는 나와야 한다. 환자 등록은 올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며 시장과 FDA의 예리한 관찰과 비판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젠은 연간 5만달러의 애듀헬름 약값을 책정해놓고 고작해야 최근까지 3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과욕이 화를 부른 것이다.
이를 감안해 릴리가 가격을 낮게 가져간다면 시장성을 확보하겠지만 이 역시 애듀헬름과 같은 유효성 논란에서 자유스럽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스코브론스키는 임상시험이 치매를 개선하는 임상적 효능보다는 플라크 제거에 초점을 맞춘 평가지표로 설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고 짧게’(small and shor) 원하는 정답만 맞추겠다는 속셈이다. 지금 애듀헬름이 유효성 논란에 휩싸인 것은 치매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 축적이 실제로 치매로 인한 인지 및 기능을 개선하느냐에 상관성을 가지냐는 의문 때문인데도 이를 해소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스코브론스키는 “플라크를 낮추는 것이 적절한 대안이라고 믿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년이나 임상 착수 후 18개월 사이에 확실히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치료에는 시원한 슬램덩크 같은 한방이 없다. 희망의 오랜 부재 속에 애듀헬름이 승인됐지만 FDA 자문위원은 사전에 분명한 승인 거절 의사를 밝혔고 이를 무시하고 FDA가 승인을 결정하자 위원들은 줄줄이 사퇴했다. 현재 FDA는 미국 의회의 거센 비판을 받고 혹독한 보건복지부 감사를 받으며 불타고 있는 상황이다.
릴리는 도나네맙이 2상 임상을 통해 애듀헬름을 간접 비교한 결과 이를 능가하는 데다가 이미 3상 임상을 진행 중이어서 잃을 게 없다는 입장으로 관측된다. 도나네맙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가진 ‘계륵’ 같은 존재다. 이미 투자가 이뤄졌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제약사들의 상술에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마음이 다칠까 우려스러운 게 기자의 시각이다.
릴리는 지난 9월 도나네맙이 2상 시험에 실패한 후 거대분자 항타우 항체인 알츠하이머병 2상 자산인 자고테네맙(zagotenemab)의 긍정적인 2상 결과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말했다가 이번에는 자고테네맙이 2상 연구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임상시험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도나네맙 승인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데 ‘이익만을 바라는 감탄고토 같은’ 행태가 섬뜩하기만 하다.
FDA도 문제다. 지난 6월 이후 릴리의 ‘도나네맙’을 비롯해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개발 중인 ‘레카네맙’(lecanemap, 코드명 BAN2401, BIIB080)과 로슈의 ‘간테네루맙’(gantenerumab)을 잇따라 혁신치료제로 지정했다. 애듀헬름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글로벌 제약업계는 이들 치료제도 조만간 FDA에 승인 신청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간테네루맙과 솔라네주맙은 2020년 2월 유전성 알츠하이머병 2/3상 임상에서 1차 평가지표 충족에 실패했었다. 물론 상염색체 우성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긍정적인 임상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으나 아밀로이드 베타를 억제하는 효과가 미진함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