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마련한 청라의료복합타운 우선사업자 협상권자 선정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에서 서울아산병원이 경합 중인 5개 컨소시엄 가운데 최고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실상 아산이 이 사업의 운영 주체로 선정됐다.
이번에 청라의료복합타운 공모에는 서울아산병원 케이티앤지(KT&G) 하나은행 우미건설 컨소시엄(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인하대국제병원컨소시엄(인하대병원), 한국투자증권컨소시엄(순천향대 부천병원), 메리츠화재 현대건설 롯데건설 금호건설 컨소시엄(차병원), 한성재단컨소시엄(세명기독병원) 등 5개 대형병원이 신청했다.
이례적으로 서울아산병원은 6일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피력했다. 우선 경제자유구역청이 무료로 제공하는 병원 부지와 500병상 건설비용 외에도 약 3500억원 규모의 자체적인 예산을 추가로 투입키로 했다. 더욱이 공모 요건이었던 500병상보다 300병상을 더 늘려 총 800병상으로 짓기로 했다.
3500억원은 300병상 증설과 그에 따른 의료장비 구입 비용으로 대부분 충당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이 안정화되면 ‘꿈의 암 치료기’ 중입자치료기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비용은 별도로 산정되는데 서울대병원이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건립되는 중입자치료센터에 들어갈 중입자기기의 경우 구입가격만 1260억원(일본 도시바) 수준이다. 아산병원은 여기에 더해 미래형 첨단의료센터와 교육센터, 연구센터도 구축할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서울아산병원과 동급 수준의 의료진과 병원 경영시스템을 그대로 청라에 접목해 인천, 부천, 시흥 등에서 서울 등으로 이탈하는 환자를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서해안벨트권역의 ‘4차병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국내뿐 아니라 중증 치료를 받기 위해 온 해외 환자와 인천 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중증 환자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라며 “특히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고령 친화적인(Age-Friendly Healthcare System) 의료 환경을 만들어 고령의 환자들이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은 청라의료복합타운에서 발생한 의료이익을 의료와 사회복지사업을 위해 재투자할 계획이며, 동참한 컨소시엄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초과이익을 병원시설 확충에 재투자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아산병원은 보도자료에는 없었지만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중동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50병상 소화기 전문병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두바이 민간투자사와 15년간 파기 불가하고 수익 일부를 아산병원이 가져가는 조건으로 계약이 맺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산이 성공하면 대박이 나지만 운영이 부실하면 큰 손실을 안을 수 있음에도 의료기술과 시설, 운영에서 넘치는 자신감으로 소화기병원 설립과 위탁운영 계약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바이 파견 의료진은 병원장 포함 의사 5~6명, 간호사 8~10명 규모이며 이들의 인건비는 현지에서 아산병원이 직접 지급된다. 서울대병원이 UAE 왕립병원에서 위탁 운영 중인 SKSH는 UAE 정부 측이 운영비와 인건비를 전액 부담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산의 두바이 진출은 잠재적 위험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아산은 중동국가의 장기이식 및 난치성질환 환자를 청라에 유치함으로써 경영에도 도움되고 청라의 국제적 위상도 올리는 두 가지를 노리고 있다.
이번 청라의료복합타운에 도전했다가 탈락한 병원의 한 관계자는 “오일머니를 청라로 끌어올 수 있다는 논리가 실질적 외국인 환자 유치에 조직의 성패를 걸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크게 어필했을 것”이라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서울아산병원의 급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청라동 1-601 일원(26만1635㎡, 7만9145평)에 병원과 의료지원시설(메디컬호텔 등), 연구단지, 상업시설 등을 지어 3조원의 투자 가치를 창출할 계획이다.
2014년 인천시와 차병원그룹은 2018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이와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가 특혜 시비에 휘말리면서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모로 바꿨고 차병원은 일대 도약할 기회를 놓치게 됐다.
차병원은 현 정권과의 거리감을 생각해 표면적으로는 이번 공모에 응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미련이 남아 경합에 뛰어들었다. 차병원과 차바이오텍, CMG제약 등을 연계해 의료 바이오 관련 산학연병(産學硏病) 첨단 바이오클러스터를 구축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실상 병원 부지의 땅(평당 248만원)을 무료로 받고 병원도 공짜로 지어주는 사업에 마다할 병원이 없다. 더구나 한국 대형병원은 생존을 위한 분원 늘리기를 통한 규모의 경쟁에 혈안이 된 상태다.
이에 탈락한 병원들은 ‘거대 자본의 완승’이라며 점수를 공개하라고 불만을 토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서울아산병원의 경쟁력을 의심할 의료인은 한 명도 없다. 일부 진보 환자단체는 서울아산병원이 담배를 제조 및 판매하는 케이티앤지와 손을 잡은 것은 문제이며 의료자본을 통한 ‘먹튀’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오는 2027년 출범할 청라의료복합타운에 중증 해외 환자와 인천 지역 환자들을 각 질환별로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장기이식센터, 뇌심혈관센터를 구축하고, 항공기 사고에 대비한 응급의료센터를 특화할 계획이다. 해외 및 인천 지역 의료진에게 서울아산병원의 풍부한 임상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센터도 만든다.
또 클라우드 기반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외 의료진과 실시간으로 소통해 자국 내에서 치료가 어려워 국내로 입국한 중증 외국인 환자가 원스톱으로 진료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아울러 서울아산병원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등 최고의 기초연구 및 임상연구 인프라를 갖춘 기관들이 협력해 산학연병 바이오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청라의료복합타운 내 라이프사이언스파크(Life Science Park)에 입주할 의료 바이오 스타트업 벤처기업들과도 협력해 곧 다가올 비대면 진료 환경에 대비한 정보통신기술(IT)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현대로보틱스와의 의료용 로봇을 공동 연구개발해 앞으로 조성될 청라 로봇랜드 산업의 활성화에도 일조할 계획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청라 진출로 의료시장을 빼앗길 것으로 우려하는 인천 지역 1, 2차 의료기관과 올바른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 지역 의료기관과 상생해나가겠다며 다독이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료의뢰협력센터(ARC)를 만들어 전국의 6600여개 병의원과 협력해 진료 의뢰 및 회송에 적극 나섰고 협력병원 의료진 연수교육, 벤치마킹 지원, 심포지엄 개최 등을 통해 상생 발전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국내 종합병원 중 처음으로 ESG(친환경,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투명화)위원회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음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청라지구와 가까운 인천 서구의 한 정형외과 전문병원 원장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이 인천 서구에 들어온 것을 놓고도 지역 병의원 위축이니 침탈이니 하는 말이 나왔는데 메가폭탄 급인 서울아산병원이 들어오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아산으로 이탈할지 걱정이 태산 같다”며 “우리 지역 병의원 원장들도 한결 같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의 대표적 스탠더드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이 해외환자유치, 디지털 의료, 중개의학 발전 등을 통해 의료산업화의 황금 모델을 보여주는 것은 전 국민이 바라는 모습이지만 그에 밀리는 대학병원과 지역 병의원이 어떻게 생존을 모색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