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갑작스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 사회와 국민들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의약계도 최근 핫이슈로 부상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14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 방안 공고’를 냈다. 이에 따라 감염병 심각단계 이상에서 비대면 진료를 허용, 의사의 의료적 판단에 따라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 전화 상담·처방을 실시하도록 했다. 국민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감염에 노출될 것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한시적 특례를 인정한 셈이다.
당시 대한약사회 등에서는 자칫 비대면 진료와 처방이 편리성만을 앞세운 나머지 국민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예컨대 편의점 판매 약품이 시간이 경과할수록 종류가 증가하는 것처럼 원격진료·처방 플랫폼 역시 하나가 자리 잡으면 계속해서 생겨나고 이로 인해 국민건강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이후 불과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요즘 당초 우려했던 대로 비대면 진료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폐해들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기업규제 챌린지(규제 철폐)’ 시행 의지 발표 이후 우후죽순처럼 의약품 배달앱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배달중계 앱을 이용한 신종 의약품 배달기업도 탄생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 방침을 돈벌이로 활용하고자 몇몇 업체는 지하철 역사 안에 광고까지 내는 등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통해 아예 상시 체제로 자리 잡으려는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한 업체는 지난달 18일부터 ‘감기부터 피임까지 모든 처방약 배달됩니다’ ‘약 배달까지 30분’이란 문구의 광고를 지하철 승차장에 걸어 대한약사회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또다른 업체는 비대면 진료 병원을 알선한다며 공공연하게 해당 병원을 홍보해 사실상 승인받지 않은 의료광고를 하는 위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이러한 공격적 마케팅은 모바일 원격진료·처방약 배달 앱으로 비대면 원격진료 후 처방전을 내려준 뒤 약 배달까지 해주는 ‘닥터나우’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앱의 월 평균 이용자는 9만명, 현재까지 국내에서 닥터나우를 통해 원격진료를 받은 건수는 211만 건을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 배달중계앱의 진료 및 약의 처방체계가 허술하다는데 있다. 앱 접속 후 진료를 원하는 병원을 고르고 주민등록번호와 간단한 증상을 적어 보내면 ‘진료접수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뜬다. 그로부터 몇 분 후 해당 병원 의사로부터 전화가 오면 자신의 증상을 말하면 된다.
증상에 대해 얘기하면 4∼5분 남짓 짧은 시간 내에 약물을 처방받을 수 있다. 다른 병원에 같은 증상으로 진료 문의를 접수하고 동일한 약물을 곧바로 중복해서 처방받는 것도 가능하다. 전화 상담 후 앱에 저장된 모바일 처방전을 인근 약국에 보내면 약을 처방 받을 수 있다. 신청자의 3km 이내에 있는 약국으로부터 배달을 통해 약을 받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또는 SNS 등에는 “원격진료 모바일 앱을 통해 단 몇 분만에 진료와 함께 졸피뎀을 처방받았다”, “여러 병원에서 졸피뎀을 중복해서 처방받았다”는 등의 이용 후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졸피뎀(zolpidem) 성분의 약들은 불면증의 단기 치료에 사용되며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강화시켜 수면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복용 시 환각과 두통 증세가 나타날 수 있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회에 28정 이상 졸피뎀을 처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닥터나우 측은 약물 오남용을 부추기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앱에 기명된 의사들은 사업자등록증, 의사면허증 등을 토대로 인증이 완료된 의료인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어 환자의 처방 이력 등이 확인 가능해 오남용 방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운용 과정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본인인증 등 시스템을 고도화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게 닥터나우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당초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폐해가 실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약국가에 따르면 배달앱으로부터 들어오는 처방전 약의 상당수가 수면제, 발기부전 치료제, 탈모약, 응급피임약, 식욕억제제(비만약), 여드름약 등이라는 것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통증이나 증상도 심하지 않지만 병원과 약국을 가기 싫어하는 환자들이 많이 배달앱을 활용할 경우 오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배달앱 도입 초기라 몇 장 안 되는 처방전을 접수해 조제하는 약국도 상당수지만 약사들은 이를 방치할 경우 의약품 오남용이 조장될 뿐만 아니라 동네약국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해 최근 강력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만약 배달약을 전문 취급하는 대형약국이 이 시장을 선점할 경우 동네약국은 살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 지역 약사 커뮤니티마다 이를 경계하고 배달앱의 영업에 동참하지 말자고 촉구하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가장 먼저 서울시약사회는 지난 1일 닥터나우 측에 등록된 서울시 약사회 회원약국 정보에 대한 일괄 삭제를 요청했다. 닥터나우는 그동안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약국 리스트를 업로드하고 비대면 진료 및 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안내해왔다.
하지만 이는 복지부가 발표한 ‘전화상담 처방 및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 관련 약국현황’ 정보에 기재된 약국을 그대로 올린 것으로 해당 약국의 동의가 없었다면 개인정보를 무단 도용한 개인정보법 위반이라는 게 서울시약사회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서울시약사회는 약국정보 무단 공개 중단과 법적 조치 등에 대해 회원약국들의 위임장도 받고 있다. 서울시약사회가 선임한 법무법인에서 약국들의 위임장을 기반으로 일괄적인 대응을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약사회 관계자는 “최근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의 행태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한시적으로 허용한 규제를 비집고 들어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행위”라며 “대면으로 환자들에게 복약지도를 할 때도 부족한 게 많은데 앱만으로 어떻게 복약지도를 하며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조제만 하는 데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도 힘을 보태고 나섰다.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인 닥터나우 등에 가입한 약국들에 대해 참여 금지령을 내렸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앱)을 통해 접수된 처방전을 통해 환자에게 의약품을 배달하는 행위는 약사법 위반사항이며 이로 인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이 내려질 수 있는 만큼 현재 가입된 약국들에 대해 즉시 탈퇴를 요청하고 있다. 특히 비대면 진료 및 처방과 달리 의약품 배달은 법률적 근거는 없는 상황이므로 약사법 위반이 명백하다는 게 대한약사회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대한약사회는 안전한 투약을 위한 대면 복약지도 원칙이 준수되고 원격의료를 빌미로 일부 업체들의 약권 침탈 및 약사법·의료법 위반 행위가 중단될 수 있도록 복지부에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 조치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등 적극 대처하고 있다.
‘해피드럭’ 오남용, 복약지도 부재에 국민건강 ‘흔들’ … 배달약 독점 대형약국 뜨면 동네약국 붕괴
이처럼 비대면 진료 플랫폼과 약사회 등의 극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공산품이나 식품이 아니고, 아무나 관리할 수 없는 의약품을 지금처럼 배달앱이 처방 및 조제를 유도할 수 있도록 방치하면 자칫 국민들을 기만하고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해피드럭(탈모제, 비만약, 발기부전약 등)과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의약품 오남용이 우려되고 있다.
약사법에는 의약품은 대면 상담과 복약지도가 원칙으로 환자 손에 전달되도록 규정돼 있다. 또 의약품은 원칙적으로 약국 안에서만 전달돼야 한다. 그러나 배달앱을 통한 조제된 의약품이 배송되는 과정에서 분실 또는 훼손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약사들로서는 기업형 배달앱 처방전 독점약국이 등장하면 지역 약국의 인프라를 붕괴시킬 우려가 다분하다는 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한약사회 등은 보건복지부가 고시 공고해 한시적으로 도입 운영 중인 전화상담 또는 처방 및 대리처방에 대한 제2020-177호(2020년 3월 2일), 보건복지부 공고 제2020-889호(동년 12월 14일)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전 국민에 대한 백신접종률이 올라가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방침에 따라 한시적 비대면 진료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이 제도 자체의 순기능이 상실, 변질돼가고 있는 만큼 관련 이들 고시를 폐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혼란과 갈등을 조정해야 할 관계당국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등의 규제완화 또는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눈치를 보며 의약품 규제의 안전장치를 슬그머니 풀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의약품의 안전성보다 편리성과 접근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정책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비대면 진료·처방 플랫폼과 약사회 등의 극한 갈등은 당분간 심화될 전망이다. 그 와중에 국민들의 의약품 선택 및 사용에서 생기는 혼란과 발생 가능한 약화사고 이슈가 한층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민들의 편의성을 위해 즉흥적으로 시행된 비대면 진료와 처방 제도가 기형적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이를 폐지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