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의료계는 원격의료에 줄곧 반대해 왔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막상 전화를 이용한 비대면진료가 허용되자 그동안 무료로 해주던 전화상담의 관행도 바뀌고 있다.
대면진료보다 오히려 후한 전화진료 수가가 신설되면서 2020년말 기준으로 이미 7000여곳의 의료기관(전체의 16.7%)이 참여했고, 병원은 71%, 의원급도 내과의원은 50%가 전화진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이후 원격의료 도입을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줄곧 이어져왔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별 진전 없이 무산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을 틈타 원격협의진찰료(AH51***)가 이미 작년 7월 1일부터 진료수가코드에 등재돼 원격진료의 단추가 하나 열렸다. 도서지역에 대한 화상진료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시행되고 있지만 일상의 의료이용 행태에서는 그동안 변화가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한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원격의료가 의료법이 개정돼 합법화된다면 다방면의 법 개정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원복 교수는 최근 발행된 대한의료법학회 학술지에서 ‘원격진료 실시에 수반되는 법적 쟁점들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현행 의료법상 원격진료는 금지된다고 해석하더라도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다”며 “이미 원격진료를 둘러싼 쟁점은 많이 있지만, 정작 원격진료가 실시되면 발생할 쟁점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격진료가 시행될 때 법적 쟁점이 될 사항들로 △수가 정책 △환자 본인 확인 △의약품 비대면 구매 △진료 장면 녹화 △시설 기준의 법제화 △의료인의 책임에 관한 특칙 △개인정보 보호 등 총 7개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수가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책정되지 않는다면 의료인들은 원격진료를 외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머잖은 미래에 기존의 수많은 직업군이 소멸되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학자들은 젊은이들이 앞으로 평생 3번 이상 직업을 바꾸며 살아야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은 AI의 판단이나 시술이 인간을 능가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의료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변화에 부응해서 수술, 검사, 처방을 기본으로 하는 현행 진료수가체계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테면 전화진료는 과거에 무료로 해줬으나 의료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건강상담’이나 치료를 위해 적절한 진료기관을 소개해주는 ‘알선행위’도 앞으로는 수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대하는 동네 병의원 의사들은 원격진료를 시행하면 서울로, 3차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돼 1차 의료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원격진료 기자재 구입 부담으로 IT 업체만 배불릴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건강상담이나 타 병원 알선에 수가가 붙어 수입원이 생긴다면 마냥 반대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되는 비대면진료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초진환자의 비대면진료 자체가 의료법 위반이다. 환자의 기본적인 정보나 검사치도 없이 약을 처방하거나 어떤 치료지침을 준다는 게 부정확하고 심지어 오진이나 의료사고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더욱이 의사들은 비대면진료의 구체적 기술에 대해 배운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상담을 통해 의료행위를 하고 있으며 수가도 책정받고 있다. 많은 의사나 소비자들이 비대면진료가 손쉽게 처방전과 진단서를 발급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같은 우려 때문에 의협도 그동안 원격의료에 대해 반대로 일관했지만 막상 코로나19 시대 이후 전화진료를 통한 비대면진료 시행 후 아직까지 별다른 부작용은 보이지 않자 머쓱한 상황이다. 치료나 검사가 필요할지 등에 대한 건강상담이나 자가 혈압·혈당 측정 후 간단히 처방전을 리필해주는 일 등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결국 의료계는 원격진료가 무조건 반대해야 할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임을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자인하는 셈이 됐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교포나 이들의 지인, 전세계인 환자의 대상이 된다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해외동포의 수가 790만명이고 해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해외체류자와 주변 지인의 수를 더하면 그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선 비 내국인부터라도 원격진료 도입을 검토해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K의료’의 발달로 200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의료관광 활성화에 나섰다. 코로나19로 중국 성형수술 환자들이 크게 줄긴 했으나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질환을 치료하려 중동, 중앙아시아, 러시에서 해외환자들이 찾아오고 교포나 해외주재원의 한국내 치료 수요가 꾸준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점진적인 비대면 진료 확대를 꾀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는 찬반이 엇갈린다. 보건복지부는 17일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협의체’ 제15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소비자연맹, 한국YMCA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6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석해 비대면 진료 보건의료분야 신기술 적용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했다.
환자・소비자단체는 이날 회의에서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도서・산간지역 등 의료취약지역 또는 중증 장애인 등 거동 불편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시범사업을 통한 효과 평가 후 확대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의료취약지역 대상 공공의료 확충이 우선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의료비용의 불필요한 증가, 의료전달체계 왜곡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대학병원은 차츰 비대면의료 시스템을 구축해나가고 있는데 중소병원 이하 의원들은 이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개인주의적 비대면 서비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는 터질 원격의료의 물꼬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