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만 간호사(2021년 기준)의 오랜 염원인 ‘간호단독법’ 제정이 올해도 주요 정책과제로 선정되며 실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료법에 간호사 업무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만을 위한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2018년 11월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8 간호정책 선포식'에서 “고령화, 질병구조 변화에 대한 보건의료전달체계를 혁신하고 의료비 절감을 실현하는 가장 실효성 있는 정책대안은 간호법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신 회장은 “이는 전문간호사, 간호사, 간호보조인력을 포괄하는 것이다”라며 “의료기관 적용에만 제한된 낡은 의료법 체계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모든 지역에 적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커뮤니티케어의 법률적 기반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보건의료패러다임은 치료 중심에서 질병 예방, 만성질환 관리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라며 “간호법은 이러한 보건의료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간호협회는 지난 1970년대부터 현행 의료법과 별도로 간호단독법 제정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 왔으며 매 집행부마다 주요 추진과제로 선정했다. 신 회장은 2018년 11월 “현대 보건의료에서 간호부문은 지속으로 전문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 마취·노인 등의 13개 전문간호분야 업무를 체계화해 낡은 의료인력 업무체계를 전문간호사 업무체계 법제화로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간호 중심의 입원료 수가체계, 상대가치 개편도 중점과제에 포함시켰다. 간호인력의 장기근속과 고용이 촉진될 수 있도록 수가체계, 상대가치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신 회장은 “간호관리료 차등제 입원료 중 의사에 대한 보상은 40%인 반면 간호인력에 대한 보상은 25%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또 “ 간호사의 법적 인력기준을 위반한 의료기관에 처벌은커녕 인센티브를 부여해왔다”며 "사람, 지역 중심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반드시 보건의료인력을 중심에 둔 건강보험 지불체계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3차 상대가치 개정을 통해 입원료 보상체계는 간호사의 노동가치가 반영되도록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라며 “현행법과 원칙을 무시한 간호관리료 차등제를 전면 개편해 간호사 고용확대와 처우개선이 이뤄지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보건복지부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을 통해 입원병동 근무 간호사의 야간근무 수당 추가지급을 위한 수가를 신설했다. 2018년 3월에 정책 시안이 수립됐고, 2019년 8월에는 간호사 처우개선 가이드라인이 고시됐다. 이에 따라 간호등급 상향에 따른 입원료 추가 수익금의 70% 이상을 간호사 처우개선에 투입해야 하고, 간호관리료 차등제 산정기준이 기존 병상수에서 환자수로 바뀌었다. 야간간호료가 신설됐고 야간전담간호사 관리료도 증액됐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8년 보건복지부 차관 시절에 “많은 인재들이 간호대학에 입학하지만 절반 정도의 인원만 의료현장에 근무하고 있다. 간호분야 종사하면서 초기 이탈률이 높다”며 “장기근속을 위해 사회적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야간근무수당을 도입해 처우 개선을 추진하고 있고, 간호사 근무 여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간호단독법 제정’과 관련해 권 장관은 “간호단독법 제정은 보건복지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관련 전문가들과 좋은 대안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의료행위 내에서 간호사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려는 입법 시도가 재현, 의료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2005년 등장한 간호사 단독법은 매 회기마다 국회에서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보건의료직역 간 갈등 유발하며,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번번히 무산됐다.
이번에는 간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여당과 야당에 법안 발의를 압박하면서 성사됐다. 더욱이 신경림 간호협회장은 제32대, 33대 협회장(2008년 3월부터 2012년 2월)에 이어 16대 국회의원(2016~2020년)에 이어 제37대, 38회 협회장(2018년 3월부터 현재까지)을 맡으며 간호사법 입법을 평생의 숙원사업으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추진의지가 강고하다.
보궐선거에 앞서 여당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보건복지위원장)과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간호법 제정안을,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간호·조산법 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끝난 보설 결과에 따라 국민의힘 측은 국회 공청회를 밀어붙이는 등 입법을 위한 준비 절차에 힘을 쏟고 있지만, 간호사법이 제정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지역의사회 등 보건의료직역의 강한 반대는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이고,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눈치보기와 힘 겨루기가 벌써부터 시작돼 간호법 제정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회원이 46만명(실제 현업종사자는 26만명 추정)이라고 주장하는 간호협회의 정치권 압박이 어느 정도 먹힐지가 변수다. 20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정무위원회)·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은 '간호법안 전문가 좌담회'를 공동 주최한다.
배 의원은 "코로나19 대유행 등 신종감염병 사태를 겪으며 보건의료인력 특히, 간호인력의 역할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간호인력의 전문성과 간호서비스 역량 강화, 선진국형 간호인력 체계 구축,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 등 간호계체 및 제도 전반에 대한 다각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좌담회 주최 이유를 밝혔다. 특히 "소외받는 노동자가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보건의료문제가 아닌 노동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시각을 나타냈다.
간호사협회는 여야를 막론한 관심에 그 어느 때보다 고무돼 입법 추진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보건복지부에 오랜 숙원인 간호정책과까지 신설되면서 간호계의 기대는 어느때보다도 커졌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현행 의료법이 다양화·전문화되고 있는 간호의 영역을 적극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간호법은 양질의 통합적 간호서비스 제공과 간호의 질 격차 해소를 위해 꼭 필요한 법이며, 의료기관은 물론 지역사회에서의 건강권 실현을 위한 기초가 돼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그러나 간호사를 제외한 범 보건의료계는 밀접한 직무연관성이 있는 직역단체들과 아무 협의 없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과 별도로 간호단독법을 제정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의협은 "단독 간호법안은 현재 통합적 보건의료체계를 전면 부정하고 특정 직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직역별로 독립법이 제정되면 해당 직역에 유리한 입법추진 사례가 늘어나고 개별법 간 상충으로 인한 의료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간호사 업무 범위에 관한 조항은 의료행위에서 간호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으며 △임금·근로조건 지침 및 간호사 확충 의무화 규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에 반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관련 조항 및 요양보호사 포함 여부는 의료체계에 적용할 사항이며 △의료관계법령 체계의 일관성 측면에서 간호사 업무 일체는 의료법에서 규정해야 한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 역시 간호법 제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있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의료계의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나섰다. 간호조무사협회는 특히 유관 직종인 자신들과 협의 없이 제정안을 발의한 것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보건복지부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법 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지부는 "협업 및 연계성을 중시한 의료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의료인의 자격·업무범위 등이 통합적으로 규율되는 게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적용 대상이 요양보호사까지 확대되는 것이 적절치 않고, 직역 간 업무범위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더 했다.
그러나 법 제정에 찬성하는 측은 코로나19로 간호인력 부족을 경험했고, 급변하는 의료환경에 따라 간호업무의 전문화와 세분화가 시급하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2005년 이후 지난 17년간 간호단독법 입법 논의가 지속해서 불거졌지만 찬반 입장에선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결국 이번 간호계와 범의료계의 입법 전쟁은 결국 정치권의 선택에 따라 향배가 갈릴 전망이다.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며 한 발 빼고 있고, 신설된 간호정책과장은 시급한 현안으로 간호사 처우 개선을 꼽고 있어 여당도 이를 무시할 없는 상황이다.
야당도 막무가내로 법 제정을 밀어붙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예측이다. 다만 무시할 수 없는 변수는 10개월 여 앞둔 대선, 이미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 여야 대권 주자들의 정치적 셈법이 간호단독법 제정을 놓고 어떤 판단을 내릴지 보건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