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자 3사에 전량 수입 탓 불안정한 공급 개선 기대 … 2023년 시장점유율 50% 목표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오던 A형간염 백신이 국내 제약사에 의해 본격 공급된다. 보령바이오파마는 내달 3일 ‘보령A형간염백신프리필드시린지주’를 출시한다. 지난해 12월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산 첫 A형간염 백신으로 승인받은 제품이다.
이에 따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하브릭스주’, 미국 머크(MSD)의 ‘박타주’, 사노피의 ‘아박심주’ 등 3개 수입 제품에 전량 의존해 외화 유출은 물론 글로벌 공급 상황에 따라 국내 공급이 종종 중단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외자사들은 팔고 남은 잉여물량을 폐기 처분해야 하는 손해를 회피하기 위해 최소 적정량만 수입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A형간염은 위생상태가 좋아진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백신 의무접종이 시행된 1997년 이전에 출생한 2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에서 감염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공중보건의 취약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현재 신생아 접종률은 95%가 넘고, 군 복무자들은 입대와 동시에 A형간염 백신을 맞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7090세대를 중심으로 접종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2015년부터는 국가필수예방접종(NIP)로 지정돼 이후 출생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A형간염은 주로 늦은 봄철 또는 초여름에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으로 마시는 물이나 식품 등으로 전파된다. 집단발생 위험이 커 1군 감염병으로 분류된다.
A형간염은 높은 전염력 탓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 유행성 간염으로 불린다. 좁고 밀집된 장소에서 단체생활을 할 경우 발병률이 높아진다. 보통 감염자의 대변에 오염된 물, 음식, 조개류 등을 먹으면 감염된다. 봄철에 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는 야외활동 및 해외여행이 많아지면서 바이러스와 접촉할 기회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
어릴 때에는 가벼운 감기 정도로 지나가지만 성인이 된 뒤 감염되면 증상이 훨씬 심해지는 게 특징이다. 평균 2~4주의 잠복기를 거친 뒤 증상이 나타나며 초기에는 감기처럼 열이 나고 전신피로감과 근육통이 동반된다. 식욕이 떨어지고 구역질이 나와 감기몸살이나 위염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다. 소변 색깔이 콜라색처럼 진해지면서 눈 흰자위가 노랗게 황달을 띠기도 한다. 심하면 간부전에 의한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성화는 극히 드물며 대개 급성으로 회복 또는 치사하게 된다.
A형간염은 철저한 개인위생과 백신 접종으로 막을 수 있다. 낮은 산도와 열에 상대적으로 저항성이 강해 70도에서 4분 이상, 80도에서 5초 이상 가열해야 사멸된다. 대부분 분변을 통해 구강으로 감염되는 경로를 보이므로 배변 후 개인위생과 하수도 개선이 중요하다.
국내에 도입된 3개 외국 백신의 1차 접종 1개월 후 항체 양전율은 93~98%이며, 2차 접종 1개월 후에는 모두 100%이다.
보령바이오파마의 A형간염 백신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등 10개 기관에서 12~24개월 유소아를 대상으로, 경희대병원 등 13개 기관에서 16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중국 시노백스가 개발한 TZ84바이러스주를 항원으로 하는 보령 백신은 기존 백신의 3분의 1이 조금 넘는 항원량으로 유소아의 경우 2차 접종 1개월 후 기하학적평균항체농도(GMC)가 기존 백신(2595)의 3.56배에 달하는 9248를 보였다. 성인은 대등소이했다.
이에 대해 보령바이오파마 차성호 BR센터장은 “항체의 역가는 양적 지표 외에 질적 지표도 봐야겠지만 적어도 유소아에서만큼은 빠르고 강력하게 항체가 형성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의사나 부모들이 백신을 선택할 때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서는 2019년에 예년보다 8배 가까이 A형간염 환자가 증가했고 그 원인은 오염된 조개젓이 유통됐기 때문인 것으로 그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분석했다. 당시 유통된 조개젓의 32%가량에서 A형간염바이러스가 검출됐으며 조개젓 검출 바이러스의 87.5%, 인체 검출 바이러스의 76.2%가 동일한 유전자 군집(cluster)으로 확인된 바 있다. 당시 환자군의 조개젓 섭취 비율은 대조군의 59~115배에 달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4~2015년 북유럽에선 불가리아·폴란드에서 생산된 혼합냉동베리류를 먹거나, 이집트·모로코 여행 중 현지에서 냉동딸기 식품을 먹고 A형간염이 집단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국내외에서 분변 대 구강을 통한 감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보령 A형간염 백신 임상에 참여한 조혜경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1억명이 A형간염에 감염되고 1만5000~3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저개발국가에서는 80%가 늦은 소년기에 감염되고,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에서는 유행국가로 여행 또는 오염된 식품을 통해 종종 감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록 한국과 일본은 유행국가(풍토병 지역)에 속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아시아·태평양 국가는 유행국가에 속해 방역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조건”이라며 “20~40대를 중심으로 기저질환을 앓고 있거나 평소 면역력이 취약한 편이어서 접종이 권고된다”고 말했다. 한국도 20여년 전에는 풍토병 지역에 속했었다.
국내 A형간염백신 시장은 NIP 접종용 60만도스(30만명이 2도스 접종), 군인과 식품업계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성인용 25만도스, 유행철 특수로 인한 평균 5만도스 등 약 90만도스의 시장이다. NIP 접종용 정부 납품가는 모든 백신이 1만3000원 수준으로 동일하다.
장홍두 보령바이오파마 마케팅본부장은 “보령 백신은 국내 최초로 허가임상을 진행한 백신인데다 진천 공장에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고, 임상에서 높은 소아 대상 항체 생성 효과를 입증했다”며 “외국산보다 유리한 가격정책을 내세워 2023년 전체 국내 A형간염 백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서 성인의 1회 접종(비급여) 비용은 6만~7만원에 형성돼 있으며 가격경쟁력이 시장 판도를 좌우할 여지가 많다.
현재 A형간염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는 없다. A형간염백신은 6~1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한다. 백신의 종류가 달라도 항원의 혈청형은 한가지로 동일하고 유전자형(6종)만 다르기 때문에 교차접종해도 문제가 없다.
어린이를 돌보는 시설에 근무하는 사람, A형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의료진 및 실험실 종사자, 혈액제제를 자주 투여받는 환자, 만성 간질환 환자 등 감염 고위험군은 A형간염백신을 맞는 게 좋다.
유럽, 미국, 대양주 등에서 유행지역으로 여행을 가려면 12개월 이상 소아 성인의 A형간염백신 접종이 의무화돼 있으며 6~11개월의 경우 지난해 미국예방접종자문위(ACIP)는 기존 면역글로불린(항체) 투여 대신 백신접종을 하라고 지침을 변경했다. 그만큼 이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돼 있다.
국내 백신 업계에서 강소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보령바이오파마는 작년 2월 출시한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를 예방하는 기존 DTaP 백신에 불활화 소아마비백신(IPV)을 혼합한 4가 콤보백신, 2007년에 승인받은 IPV 단독 백신을 비롯해 DTaP 백신, 모든 어린이가 맞아야 하는 일본뇌염 사백신, 야전군인·의료종사자·열대지역 여행자에게 필요한 장티푸스 백신 등을 국내서 유일하게 생산하면서 ‘백신 주권’ 확보에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