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성희롱·사무장병원·강력범죄에 의사면허 정지·박탈 입법 움직임에 선제 대응 ‘꼼수’ 의심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20일 발표한 ‘대한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 추진과 관련, 의료계 내에서도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의협은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 추진과 관련 “국가의 올바른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의사면허제도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중요함에도 우리나라의 경우 면허는 정부에서 발급하지만 면허의 유지·관리는 단계별로 공공(보건복지부)과 민간(의협)에서 분리, 운영하고 있어 면허관리 체계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비효율적이어서 체계적이고 일원화된 독립적인 관리체계를 위해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배경을 밝혔다.
즉, 지금까지 국가가 관리하던 의사의 면허관리를 의협이 주축이 되는 의사면허관리원을 통해 면허관리와 자율규제를 실천, 전문직업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의협은 또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위해 수년에 걸쳐 준비해 왔으며 이를 위해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평가제는 일부 의사의 불법 의료행위, 비도덕적 진료 행위를 지역 내 다른 의사가 모니터링하고 평가해 환자와 대다수 선량한 의사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제도다.
하지만 의협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설립 목적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시민사회는 물론 의료계 일각이 존재한다.
제기되는 의혹은 그동안 의사면허의 질적 관리와 관련, 의료계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게 적잖다는 비판 속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지금껏 의사면허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철옹성과도 같았다. 내원한 여성 환자 성추행 및 성폭행, 몰카 촬영, 불법 사무장 병원 등 일부 의료기관에서 불법적이고 비도적인 의료행위가 적발된 경우에도 의료계는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2019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경찰청에서 국정감사 자료로 받은 “최근 5년간 의사 성범죄 검거현황‘에 따르면 성범죄라는 중대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자격정지를 받은 의사는 검거된 의사의 0.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부가 면허관리를 하고 있는 지금도 의사의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면허정지 또는 면허취소 등 강력한 제재가 이루어지는 않는 현실에서 의협이 주축이 돼 설립되는 의사면허관리원은 의사들에 대한 ‘셀프 징계’ 권한을 부여할 뿐, 제대로 된 의사면허 관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의협은 의료인의 직업(진료행위)과 무관한 위법 행위에 대해 일률적으로 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부당한 이중처벌이며,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통해 자율규제를 강화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의사 상(象)을 만들며, 궁극적으로 독립적인 면허관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의사면허관리원 설립 추진이 최근 국회에서 의사면허 규제에 관한 의료법 개정안들이 봇물 터지듯 발의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을 비롯한 12명의 의원이 살인·성범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의 의료인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항에 의거해 살인·인신매매·강간·추행·강도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의료인 면허’ 취득 결격사유에 추가하는 것과 면허 취소 및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어 10월에는 권칠승 의원이 면허취소 후 재교부 받은 의료인이 다시 면허취소 행위를 할 경우 면허를 영구 취소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1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 및 진료기록부 허위작성 의료인에 대한 면허 처분을 기존 면허 자격정지에서 면허 취소로 상향하는 한편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벌금형을 받은 의료인에게도 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파업에 대한 보복이라며 즉각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더욱이 그동안 주무 부처이면서도 의사면허의 강력 제재에 미온적이었던 보건복지부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적 특수성 및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특정강력범죄를 범한 의료인을 결격사유로 추가하는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고 수용의 뜻을 밝힌 것도 의료계의 반발에 기름을 부었다.
이같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예상되는 예전과 다른 의사면허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의료계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이번 의사면허관리원 설립 움직임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다.
의사면허관리원 설립 추진이 궁극적으로 의료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예상되는 정부와 관련 법령에 의한 의사면허의 강력 제재를 피하기 위한 의료계의 선제적 대응이라는 풀이다. 즉, 의사면허관리원을 통한 자율적으로 면허관리와 규제보다는 강력 제재를 피하려는 속내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한편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과 관련된 의구심을 갖는 눈초리가 많은 가운데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태욱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21일 ‘의사는 의사가 관리한다’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은 의사들에게 대재앙이 될 것이라며 의협을 비난하고 나섰다.
유 회장은 “의사면허관리원은 사회 통념상 이사회 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로 갈 것으로 예상되며, 과거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의 예로 보아 면허관리원은 처음 시작이 어떤 형식으로 출범하던 결국 의협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시원의 경우처럼 의사들의 영향력이 차단되고 모든 결정은 이사회의 소관이 돼 결국은 면허관리원 설립이 정부와 시민단체에게 연수교육, 자율징계권까지 통째로 넘겨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가정의학과의사회의 반발은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에 대한 세간의 의혹들과 달리 오히려 의혹의 대상이 되는 의사들의 자율적인 면허관리와 규제 권한에 대한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에 대해 외부의 의혹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든 의료계 내부에서마저 반발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은 의협의 입장에서는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의협은 전문 직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의 일률적인 규제의 단점 보완을 위해 면허관리와 자율규제를 실천, 전문직업인의 정체성 확보를 가능케 하는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 평가제 사업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분석하고 보완점을 개발, 필요한 법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전문직업인의 자율통제 기능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여 점진적으로 자율권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의협이 제시한 청사진과 달리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과 관련된 의혹이 속속 제기되는가 하면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확산될 기류를 보이는 등 연착륙에 이르기까지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의협이 희망하는 의사면허관리원의 설립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계획의 추진에 앞서 정부 주도의 면허관리가 아닌, 의사단체 자율적 면허관리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 제시와 함께 세간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 의사면허 질적 관리에 대한 대국민 불신 해소, 의료계 내부 반발 종식 등이 선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내부 갈등만 증폭돼 의협의 행보는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는 ‘웃픈’ 희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