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이 정치나 사회활동에 관심을 둔 약사들의 활동 기반을 제공하는 터전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부천을 지역구로 둔 약사 출신 현역 의원이 둘이나 된다. 지난 4월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4명의 약사가 당선됐는데 이 중 3명이 지역구이고 전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이 중 2명이 부천의 4자리 국회의석 중 절반인 2명을 차지했다. 김상희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 경기 부천시병, 4선)과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부천시정, 초선)이다.
김상희 의원은 지난 5월 국회 역사상 첫 여성 부의장으로 뽑혔다. 18대 국회에 여성계를 대표하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제19·20·21대 총선에서 부천정 지역구(옛 소사구)에 출마, 내리 당선돼 부천 지역 첫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과거 김문수 의원과 차명진 의원이 바통을 주고 받던 현 야당의 텃밭에 뛰어들어 표밭을 새로 갈았다.
1983년 최초의 진보적 여성 대중운동 조직인 여성평우회를 시작으로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단체연합 창립에 기여하는 등 여성시민운동을 이끌어왔다. 이후 여성환경연대 대표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를 맡았다.
김 의원은 2006년 참여정부 시절 시민사회 대표로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2007년 시민사회 대표로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장과 최고위원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통합민주당 최고위원과 전국여성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2008년 18대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김상희 의원은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과 20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여가위원장 당시 성폭력 범죄의 친고제를 폐지시켰고, 양육비이행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했다. 2017년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위촉되는 등 국회에서 활약 중이다.
김상희 의원은 충남 공주에서 초중고를 나와 이화여대 제약학과를 졸업했다. 약업과 관련한 일을 한 경험도 거의 없지만 부천에서는 자칭 타칭 ‘소사댁’으로 불리며 친근감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또렷하고 상황에 맞는 유창한 언변, TV토론회에서 현 여당의원으로는 비교적 균형 잡히고 합리적인 논리로 대응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편인 이목훈 호서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비타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부천에서 약국을 운영하면서 생활보건환경운동의 일환으로 폐건전지를 가져오는 아이들에게 비타민을 하나씩 나눠주면서 얻은 별명이다. 그때의 별명이 좋아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지금도 쓰고 있다. 아파트마다 설치돼 있는 폐형광등, 폐건전지, 폐전구 수거함도 그가 발상해서 전국적으로 확대된 시스템이다.
약사 출신 서영석 의원은 1995~2006에 2~4대 부천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007~2010년에 부천시약사회 회장을 맡았고 2014년 9대 경기도의회 의원, 2016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부천오정지역위원회 운영위원장을 거쳐 21대 국회 경기 부천시정 지역구 의원이 됐다.
초선 의원이지만 지역의회와 약사회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서 의원은 21대 국회 입성과 동시에 마약류 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3차 추가경정 예산안 심사에서 복지부 관련 예산을 346억원 늘리고 심사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월 1일 발의한 마약류 관리법 개정안은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원료물질의 수출입 시 승인받은 사항에 변경이 발생할 경우 식품의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변경 승인을 받도록 해 원료물질의 적정한 관리가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이다.
약사사회에서 인상적인 행보는 두 가지다. 첫째는 약사들의 숙원인 성분명 처방을 제도화하기 위한 전초 단계의 하나로 지난 9월 2일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처방전 기재 의약품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물학적동등성이 있다고 인정한 품목으로 대체조제할 때 약사는 환자에 그 사실을 알리고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1일(부득이한 경우 3일)내 팩스나 서면으로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제네릭 활성화, 건강보험 약제비 절감, 약사들의 행정력 낭비, 의사들의 리베이트 등과 관련해 악영향을 끼치므로 대체조제 시 약사가 해당 내용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하는 것만으로 간소화해 대체조제를 보편화하자는 취지다. 당연히 의사들의 큰 반발이 예상되지만 현재 코로나19 상황과 의료계와 정부의 극한 대치로 갈등이 수면으로 떠오르지는 않고 있다.
또 하나는 한약분쟁의 ‘사생아’로 태어난 한약사들의 미래에 관한 얘기다. 서 의원은 한약사를 약사로 대승적으로 편입시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데 아직 약사사회에서는 거부감 내지 반발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일선 한약국에서 일반약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게 관행화되고 있어 교통정리가 요구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불법이라면서도 단속하지 않는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해 약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서영석 의원의 슬로건은 ‘아이들의 비타민을 넘어 이제는 국민을 위한 비타민이 되겠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에 ‘총대 메기’를 좋아하는 서 의원이 미묘한 숙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부천 약사사회를 대표하는 걸출한 인물 중 하나가 김대업 대한약사회장이다. 부천에서 20년가량 대화약국을 운영해오다 2018년 12월 13일 대한약사회 회장이 됐다. 김 회장은 서영석 의원의 성균관대 약대 동문인 동년배 친구다. 서영석 의원이 국회 출마 기자회견 당시 직접 방문해 친구이자 동료인 서 의원을 격려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대한약사회 부회장과 정보통신위원장, 약학정보원장을 역임했다. 대한약사회 정보통신위원장 재직 시 약국 내 의약품 안전관리 및 사용 편의를 위해 표준의약품 정보를 개발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약가조정협의회 위원직도 두루 거쳤다. 보통 대한약사회 회장에 출마하기 전에 시군구 약사회나 광역 약사회 회장을 맡는데 그런 이력이 없는 점도 특이하다.
지금 약사회는 공공심야약국 및 취약시간대 보건의료 서비스 보완, 수의사의 동물약 독점화, 언택트 시대를 맞아 떠오르고 있는 ‘배달약국’ 및 ‘화상투약기’, 대체조제 활성화, 한약사 직역 분리, 첩약 급여화 등 현안이 쌓여 있다. 담담하고 뚝심 있다는 김 회장이 이런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약사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김대업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광민 홍보이사·정책기획실장도 부천과 연관이 있고 성균관대 약대 출신이다. 1970년 소사본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천 토박이. 부천시 성곡동 원종동 사거리에 위치한 오대문약국은 그가 1994년 문을 열고 운영한 것이다. 자녀 셋, 단란한 가정을 꾸려 지금도 부천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6년엔 성곡동복지협의체 위원과 부천시약사회 회장을 맡아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다정다감한 성격에 후배 약사를 잘 이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