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 환자 수 제약 등 규제 많아 지원자 부족 예상 … 근무 탄력성 및 독자적 진료권 확보돼야
4년 동안 시범사업으로 진행되던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내년 1월부터 본사업으로 전환되고, 이를 위한 수가모형이 발표됐다. 하지만 수가모형이 현실적이지 않고, 입원전담전문의를 수련의‧전공의를 대처할 인력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되려면 인식의 재고가 필요하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이에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개선책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3가지 수가모형, 의사 1인당 환자 25명 이하 제한 … 의료계 “현장과 동 떨어진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의 본사업 전환을 결정하고 수가모형을 발표했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입원 환자의 안전문제 및 전공의 특별법 시행에 따른 인력 부족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의 ‘호스피탈리스트’제도를 본따 2016년 9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시행됐다.
시범사업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환자들은 △의사와의 만남 증가 △설명 충실도 향상 △처치 전문성 제고 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보냈다. 의료계도 △업무량 경감 △협업 강화 등 만족감을 나타냈다.
또 응급실 평균 대기기간이 감소하고 병원 재원일수가 짧아졌으며 ‘합병증, 폐렴, 욕창, 요로감염, 낙상, 골절, 병원관련 감염’ 등 입원전담전문의 병동 환자의 병원 관련 위해도 유의미하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정심은 이에 따라 본사업 전환 및 입원환자 전담전문의 관리료 신설안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또 의사 배치 수준에 따라 수가모형을 구분하고 환자당 의사 수를 제한하는 인력기준을 마련했다.
수가모형은 의사 배치 수준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환자당 의사 수를 제한하는 인력기준도 마련됐다. 구체적으로 의료수가는 1일 1인당 △주 5일형(주간) 1만5750원, △주 7일형(주간) 2만3390원 △주 7일형(24시간) 4만4990원 등이다.
의사 근무시간은 주 40시간 기준으로 오래 근무할수록 더 많은 수가를 지급하며 입원 환자의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입원전담전문의 당 환자 수가 최대 25명을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이밖에도 1의사 당 1병동만 돌보도록 제한하고, 외래진료를 금지하는 등 세부적인 지침들이 마련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료계는 적정수가와 인력기준 등 복지부의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 1일 대한내과학회·대한외과학회·대한가정의학회·대한내과학회 입원의학연구회·대한외과학회 입원전담전문의 연구회는 공동성명을 내고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의 실용적인 운용과 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조속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의 안정성을 제고하는 조치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의료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운영구조 및 적절한 수가 수준 등이 마련돼야 하는데,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어 “입원전담전문의 본사업 전환의 의미는 입원전담전문의들이 자율성과 긍지를 가지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하는 것”이라며 “결국 그 혜택이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함에 있다”고 강조했다.
1병동 1의사, 근무시강 고정 등 규제로 경직성 … 탄력적으로 인력운용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수가모형이 규제 위주로 책정돼 근무의 자율성을 떨어뜨리고 탄력적이고 유연한 운용을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동호 대한내과학회 입원의학연구회 회장(세브란스병원 통합내과 교수)은 “제도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지원자가 많아 인력이 지속적으로 제공돼야 한다”며 “이번 수가모형 등은 규제 위주로 책정돼 경직성이 심하고 자율성이 떨어져 입원전담전문의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까지 지방병원은 물론 서울 주요 대형병원도 입원전담전문의 채용에서 미달을 기록한 바 있다.
신 회장은 “미국은 2주 일하고 2주 쉬거나 주말에만, 혹은 야간에만 일하는 등의 탄력근무가 가능하지만 현재 나온 수가모형은 의사 근무 형태의 자율성이 떨어진다”며 “복지부가 전담의의 근무시간까지 규제한 지금 구조대로라면 전담의는 휴가 한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내놓은 수가는 5명이 한 팀을 이뤄 24시간 병실을 담당하는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이 경우 낮 시간을 두번으로 나눠 2명씩 근무하고 야간에 1명이 근무하면 시간이 꽉 차서 인력 여유가 전혀 없다. 휴가도 쉽게 쓸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한 반발이 나오자 복지부는 ‘5명’이라는 예시 문구를 지우고 인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여유 인력을 고용하려 하기보다는 빠듯한 인력으로 팀을 운영하려 할 공산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탄력적인 근무를 허용하고 규제를 완화해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근무 자율성을 주고 주말 및 야간 근무에 대한 수가 체계를 마련해 인력 공백이 우려되는 야간과 주말에 입원전담의들이 더 근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의견이다.
또 1병동 1의사로 규제하지 말고 가까운 거리의 2개의 병동을 모두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면 현장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신 회장은 지적했다.
외래진료, 독립적 팀운용 등 보장돼야 지속적인 정착 … 급여 조건만으로 해결 안 돼
입원전담전문의가 외래를 볼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 회장은 “입원실을 돌보는 동안은 외래를 보지 않는 게 맞으나, 그 외 시간에도 외래를 일절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며 “퇴원 후 회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두 번의 외래가 진행되는 데, 이를 다른 전문의가 맡기보다는 전담의가 맞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입원실을 전담하지 않는 기간을 마련하고 퇴원한 환자의 가벼운 외래를 입원전담의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입원전담전문의로 이뤄진 독자적인 팀이 운용이 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신 회장은 “시범사업 중 전담의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병원들은 기본 구조에 전담의를 끼워넣은 게 아니라 독자적인 팀을 꾸려 운용한 곳”이라며 “만약 독자적인 팀이 없다면 독립적인 진료 권한을 매우 섬세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원전담의가 진료에 대한 충분한 권한이 없는 경우 다른 과 전문의의 지시를 받는 수련의‧전공의의 대우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기존 전문의들과 갈등이 커지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서 발표된 대한내과학회 입원의학연구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과계 입원전담전문의 59명 중 64.4%만이 계속 근무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며,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28.8%, 사직하고 다른 진로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자는 6.8%였다. 또 당직수당과 성과급, 교육연구비, 연구실 등을 제공받고 있을수록 지속 근무할 의향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