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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전공의 모집 … 분노하는 신경과, 말 못하는 소청과, 체념하는 흉부외과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12-02 17:42:02
  • 수정 2020-12-04 22: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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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정원 발표, 2일 전공의 접수 마감 … 감축된 신경과 항의, 소청과· 흉부외과 등 인력부족에도 잠잠
2021년도 레지던트 모집인원은 총 3399명으로 예년에 비해 2주가량 발표가 늦어졌다.
지난달 26일 내년도 전공의(레지던트)의 병원별 정원이 최종 발표됐다. 올해는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거부 등 인턴 수급난 우려 문제로 예년보다 2주 가량 늦춰진 11월 말에 발표됐다.

이를 놓고 대한신경과학회 등은 의료 현실과 괴리된 정원 배분이라며 항의했다. 전공의 배분이 너무 작아 의료 인프라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적은 정원도 채우기 어려운 비인기학과에서는 체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인력 증원이 필요한데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진료과들도 있다. 

신경과, 3년 동안 증원 확대 요청했는데 감축 … 노령질환 대비해야
 
올해 전공의 정원은 2021년도 레지던트 모집인원은 총 3399명이다. 정원은 각 병원의 희망모집 인원을 취합해 각 진료과가 세운 수련환경 실태조사 등을 기준으로 최종 인원을 확정한다. 수련병원들은 내년 인턴 수급난을 예상해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학과의 정원을 넉넉하게 요청했으나 배출되는 인력의 한계로 대부분 지난해와 비슷하게 동결됐다는 평가다.
 
지난 26일 정원이 발표되자 다음날 27일 대한신경과학회는 바로 성명을 내고 항의했다. 현장에서 필요한 전공의 수에 비해 정원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학회는 성명에서 “내년 레지던트 전공의 모집에서 주요 지방대형병원 5곳의 신경과 정원이 ‘0명’에 불과하다”며 “응급실과 병실의 중증환자들을 지키는 신경과 전공의 정원을 한 명도 주지 않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신경과 전공의 정원 중 건양대병원, 단국대병원, 삼성창원병원, 연세대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조선대병원 등 5개 병원에 확정된 정원은 0명이다. 모두 1000병상급의 지방대학병원들이다. 5∼10명의 전공의가 필요한 2000명 병상 이상 규모의 대형병원들의 정원도 2명에 불과했다.
 상급종합병원의 전문과목별 의사 수. 자료제공 대한신경과학회
학회는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전공의 증원을 요구해왔지만 보건복지부는 2021년에 오히려 정원을 89명에서 87명으로 축소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복지부는 2013년 이후 5년 동안 신경과 전공의를 89명으로 동결했다. 학회는 인구 고령화 영향으로 치매·뇌졸중·파킨슨병·뇌염·뇌전증·말초신경/척수질환·두통·어지럼증·수면장애 등 노인성 질환의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신경과 전공의가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증원을 요청했지만 내년에는 오히려 2명이 감축됐다.
 
신경과는 앞서 2020년 대한신경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응급실 진료에서 신경과의 진료 부담에 대한 연구결과를 게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2018~2019년 23개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응급실 내원 환자 수, 각 전문진료과별 의사 수, 전문진료과별 응급실 진료 건수를 조사했을 때 전문의 수는 25개 진료과 중 7위(225명), 전공의 수는 14위(198명) 였다.
 
하지만 신경과의 응급진료 건수는 6만9234건으로 24개 전문진료과 중 4위를 차지했다. 전문진료과 평균 건수인 3만5327건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또 전문의 1인당 중증응급환자 진료 건수는 236건으로 소아청소년과에 이어 2위로, 전문진료과 평균인 55건보다 4.3배 많은 중증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학회에 따르면 1000병상을 기준으로 미국(10∼12명), 인도(6명), 일본(5∼10명), 이탈리아(5명) 등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5명에도 못 미친다. 학회 관계자는 이를 기준으로 “현재 전공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향후 늘어날 환자 수를 고려할 때 전공의 정원이 지금보다 늘지 않으면 의료 인프라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청과, 1인당 응급의료건수 1위 만성적 인력부족 … 향후 비전에 증원 요청 못해

신경과가 수련환경 악화 및 진료과 의료인프라의 붕괴를 걱정해 전공의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면 소아청소년과는 비슷한 상황임에도 입도 못 떼고 있다. 향후 소청과 의사들의 비전이 밝지 않아 전공의 증원을 요구하는 게 무색하기 때문이다.
 
앞서 신경과학회가 추계대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연간 응급진료건수가 가장 많은 것은 내과(경증 4만7803건, 중증 19만6452건)지만 전문의 1인당 연간 응급진료건수는 소청과가 경증 136.4건, 중증 213.7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문의 1인당 응급진료건수. 자료제공 대한신경과학회
소청과 관계자는 “아동 환자는 성인과 달리 응급도 많고 입원 환자에서 눈을 떼기 어려워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턱없이 부족하다”며 “어지간한 종합병원의 어린이병동에서도 인턴이 아니라 스태프(전공의,전문의)가 당직을 서며 버텨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신경과학회처럼 학회 차원에서 증원을 요청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청과 자체의 위기 상황 때문이다.
 
소청과는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입은 진료과로 꼽힌다. 올해 소아청소년과의 1분기 요양급여수가 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23.2%이었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대로면 내년에 상당수 소청과 병의원들이 폐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만성적인 출산율 감소, 급여 진료에 의존해야 하는 수익 구조 등으로 소청과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한 소아청소년 의사는 “지금 증원을 늘리자는 요구를 누군가 한다면 후배들에게 양심없다고 욕을 먹을 것”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흉부외과 등 비인기학과, 만성적 전공의 부족에 지방병원부터 존폐 위기
 
흉부외과, 산부인과, 병리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비인기학과는 그나마 할당된 정원도 채우지 못해 한숨이다. 이어지는 정원 미달, 전공의 부족에 이젠 목소리도 내지 않는 체념의 분위기마저 감돈다.
 
지난 4년간 지원율 100%를 채우지 못한 진료과는 핵의학과(26.5%), 병리과(40.2%), 방사선종양학과(45.1%), 흉부외과(61.3%), 비뇨기과(65.5%), 진단검사의학과(77.7%), 외과(90%), 산부인과(90.8%), 가정의학과(95.7%) 등 9개 학과다. 소아청소년과 역시 적은 정원을 간신히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9개과는 상대적으로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직률로도 상위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핵의학과(6.1%), 흉부외과(4.1%), 병리과(3.8%), 방사선종양학과(3.7%), 산부인과(3.4%), 외과(3.3%), 진단검사의학과(2.9%), 가정의학과(2.4%) 순이다.
 
대표적으로 흉부외과는 몇 시간이 걸리는 고난도 수술을 해내야 한다. 고생스러운데 수가는 낮아 지방병원 등은 투자하기를 꺼린다. 이로 인해 수련 환경은 날로 열악해져 고생스러운 흉부외과 전공의 생활을 자처하는 지원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된다고 하더라도 병원에 남아있지 않고 개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자원통계 ‘지역·종별 전문과목별 전문의 현황’에 따르면 총 1137명의 흉부외과 전문의 중 종합병원 이상급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전문의는 26.4%인 30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개원해 하지정맥류, 치질, 성형수술 등으로 주요 진료내역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흉부외고 전공의 만성적인 부족난은 문제가 제기된 지 오래됐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수련 기간 중 다른 진료과에 비해 높은 급여가 지급되도록 지원하고, 흉부외과 수술에 가산점을 주는 등 인센티브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지방종합병원은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드는 흉부외과에 투자하길 망설이고 있어 별 소용이 없다는 진단이다. 
 
흉부외과 관계자들은 “이미 지방의 많은 종합병원에 흉부외과 의사가 없거나 한두 명만 간신히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지방 흉부외과는 조만간 명맥이 끊기고, 서울의 몇몇 대형병원 위주로 간신히 운영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2021년 전공의 모집 원서 접수는 2일 마감됐다. 이후 13일 필기시험, 15~17일 면접을 거쳐 18일 최종 합격자가 발표된다. 국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인턴이 부족해질 경우 비인기학과의 인력난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병원관계자들은 “전공의 지원자 중 원하는 인기과에 떨어지면 재수를 선택해 올해 의사 국시 거부로 경쟁자가 줄어들 내년에 기회를 노리겠다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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